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8년 3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자격으로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그때 김과 나눈 대화를 자신의 회고록에 썼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김은 폼페이오 국장에게 “중국인들은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외치며...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 내 미군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폼페이오는 이 말을 듣고서는 김이 미군 주둔을 원한다는 걸 “과소 평가했다”며 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김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그는 2019년 2월에도 김이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김의 거짓 약속도 믿었다. 

폼페이오가 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는 건 그가 얼마나 어수룩하고 북한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실증한다. 폼페이오는 김이 실제론 중국과 러시아를 믿을 뿐, 절대 미국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6.25 기습남침 당시 미군의 반격으로 평양이 점령당했을 때 김일성이 도망친 곳은 중국이었고 미군을 경기도 평택까지 다시 밀어내 김을 복권시켜 준 것도 중국이었다. 중국은 북한에 엄청난 원유와 식량을 지원해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묵인하며 유엔의 대북제재를 가로막고 김을 철통같이 엄호한다. 그래서 중국과 북한은 두 나라 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한 편도 온존치 못하다)의 혈맹이며 “한 집안”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폼페이오에게 중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와 주한미군 철수 내지 축소 언급 등 고립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그것을 간파한 김은 중국을 못 믿으니 미국과 손잡자며 핵 보유를 인정받고자 했다. 미국을 안심시켜 주한미군도 철수시킨 다음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그런 사탕발림을 띄웠던 것이다. 실상 김은 2019년 6월 트럼프가 자신과 가까워지자 판문점 회동에서 둘이만 만나자며 문재인의 참석을 거부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그런 감언이설을 토해냈다. 김은 김대중과의 평양 회담 때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며 김대중을 안심시켰다. 이어 같은 해 10월 김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선 “주한미군이 역내 안정 유지에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때도 김정일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대북유화정책에 편승, 미국과 관계를 개선시켜 한국을 고립시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통미봉남(通美封南) 계략이었다. 그로부터 18년 후 김정은이 미군주둔이 필요하다고 또 다시 너스레를 떤 것도 김정일과 같이 통미봉남해 북의 핵 보유를 인정받으려는 계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오는 김이 중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미군 주둔을 필요로 한다는 걸 “과소평가”했다고 후해했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 목표는 주한미군 주둔이 아니라 철수에 있다. 북한은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 하자 1년 만에 남한을 기습 공격했다. 그 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도 미국을 위협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6.25 때처럼 남한을 점령하자는데 있다.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은 북한이 어수룩한 미국을 속여먹으려 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폼페이오는 황 선생의 경고대로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미국 지도자들 중 하나이다. 그의 상전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은 “괜찮은 사람” “내 친구”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 등 헛소리했다. 불행 중 다행한 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을 “불량배”라고 단정했다는 점이다. 변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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