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이 모씨는 최근 몸이 찌뿌듯하고 주기적으로 숨이 차고 가슴이 뛰며 자잘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고 한다. 퇴근 후에는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지고 약간의 초조한 느낌도 있으며 아내의 행동과 표현이 마치 잔소리처럼 부정적 인식으로 느껴져 타인에게는 호인이었다가도 가정에서는 다소 공격성이 높아지거나 아내에게 충동적으로 짜증을 내는 상황이 일쑤였다. 아내는 남편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공감하고 이해하다가도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이유 없고 뜬금없이 화를 내는 남편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부부가 함께 내원했다. 
   
이 씨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임에도 조금만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짜증이 나며 쉽게 화를 내게 되며 심지어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고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불같아지는 이 느낌을 받는다. 본인은 처음엔 이 기분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화를 내고 나서 홧김에 집을 나와 친구들과 음주와 노래방 코스를 밟고, 스크린 골프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냈더니 조금 전에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냈는지 기억을 못한다. 

그리고 새벽 늦게 들어와 자신에게 아까의 일에 대해 화내고 상처를 표현하는 아내에게 이젠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이 남자는 상처를 기억하며 힘들어하는 ‘우울증’ 이 아니라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이 극도로 과민해져서 인식기능 장애로 인한 자율신경 기능장애로 나타나는 ‘노이로제’ 현상이다. 

자율신경이란 외/내부적 자극에 무의식적으로 신체의 긴장과 흥분을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장치다. 자율신경은 흥분과 긴장을 시키는 교감신경과 이를 억제하는 부교감신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둘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신체의 균형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 중 교감신경이 과항진되거나, 부교감신경이 자기기능을 하지 못하면 최소한의 부정자극에도 과인식이 되어 모든 일이 스트레스처럼 느껴지는 노이로제에 걸리게 된다. 

남자들의 노이로제에서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마다 스트레스 기분을 제거하지 못하고 오래 지속되면 마치 내가 과거에 어떠한 큰 상처를 안고 있는 것 때문으로 생각이 된다. 또한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또 이런 현상을 겪게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불안장애와 공황장애의 증상까지 생긴다. 나아가 도저히 스트레스의 기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심한 경우 분노조절 장애, 충동조절장애, 과대망상(환시, 환청, 환촉 등)으로 빠져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늦기전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는 옛 속담처럼 노이로제 남자는 인식기능에 문제가 생겼기에 인식되는 모든 것들에서 사실 정보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연관된 기억까지 같이 받아들이게 된다. 학교 다닐 때 폭행을 당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비슷한 영화의 장면을 보고 기억이 떠올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거나 군대에서 선임에게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스트레스의 기억이 있다면 군대이야기만 나와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만약 이십대 초반 키 때문에 맘에 드는 이성에게 차였던 적이 있으면 키 이야기만 나와도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인식기능시스템에 충격이 가해졌다면 그와 함께 연관되어 들어오는 모든 자극이 스트레스가 된다. 

또한 이 나쁜 스트레스의 기분이 바로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인식기능시스템 자체가 망가져버려 들어오는 모든 자극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 인식기능과 연관된 자율신경이 이미 과열되고 과민해진 상태이기에 이젠 내 의지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이로제 남성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특정한 환경, 인물, 상황을 벗어나 인식기능시스템에 충격을 주었던 연관대상들이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스트레스 대상들이 차단되면 당장은 부정인식을 피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장기적으로 차단된 상태는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게 되므로 오히려 사회적 고립을 유발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반드시 차단상태는 단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 상태에서 '몰입'을 통해 즐거운 기분으로 스트레스 기분을 전환하여야 한다. 취미생활이든 즐거운 만남이든 스포츠든 건강을 해하는 것을 제외한 어떤 것이든 몰입되어 그 순간만큼은 아까 스트레스 상황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다만 한 가지 행위에만 반복적으로 몰입이 되다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그 행위를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장애, 중독장애로 빠질 수도 있으니 몰입될 수 있는 대상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일수록 좋다. 즐거운 기분에 몰입이 되어 스트레스 기분이 전환 되면 아까의 상황에서 ‘자라’는 ‘자라’고 ‘솥뚜껑’은 ‘그냥 솥뚜껑’ 뿐임을 깨닫고 넘어가게 되어 노이로제는 치유된다.

한의학에서는 노이로제를 수화불교증(水火不交症)이라고 한다. 여기서 수(水)는 물이기 때문에 몸에 불필요한 화(火)을 식혀주는 작용을 한다. 즉, 내분비 체액을 왕성하게 해주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부교감신경을 주관한다. 화(火)는 곧 열로서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며 교감신경을 주관하여 긴장, 항진된 상태를 유발한다. 수화불교증이란 쉽게 설명하면 물이 부족하여 불이 꺼지지 않거나, 불이 물의 양 에 비해 너무 강해 꺼지지 않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수와 화가 조절되지 않고 수화불교 상태가 되면 심리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고 심한 감정기복과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인식되는 것을 정상화하며 노이로제를 치료 및 예방하려면 수와 화가 균형을 이루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학적으로 노이로제인 수화불교증의 치료는 ‘養陰(양음혈)’이라고 하여 혈액을 길러 보충하고 ‘淸心安神(청심안신)’이라 하여 심장과 정신기능을 편안케 하면서 ‘滋水瀉火(자수사화)’라고 하여 부족한 수를 채워서 불을 끄고 헛되이 흥분하는 것을 잡아줘야 한다. 이때 침 혈자리는 백회, 내관, 합곡, 족삼리, 태충, 신문, 심수, 소충 등의 혈을 사용하며, 한약으로는 生地黃(생지황), 茯苓(복령), 天門冬(천문동), 麥門冬(맥문동), 丹蔘(단삼), 玄蔘(현삼), 蓮子(연자), 知母(지모), 黃白(황백), 黃連(황련), 肉桂(육계) 등의 한약재를 활용하게 된다.

노이로제를 위한 생활 관리로는 ▲낮과 밤의 규칙적인 생활패턴으로 신체리듬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충분한 휴식과 심신의 안정이 필요 ▲하루 7~8시간 이상의 양질의 숙면 ▲자극적인 음식절제와 충분한 영양섭취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조성 등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인식의 차단과 휴식 및 생활관리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지만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습관적으로 재발되는 경우에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므로 미루지 말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한동화 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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