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안으로 일본을 추월할 거라고 일본의 ‘일본경제연구센터(JCER)’가 지난해 12월15일 발표했다. JCER 발표에 따르면, 올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4505 달러로 일본의 3만3334 달러보다 앞설 거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를 디딤돌로 삼아 일어섰다. 일본의 35년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었다. 1965년 한국은 1인당 GDP 100달러의 최빈국에 속했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로 일본의 앞선 기술과 자본재 도입을 통해 산업화를 시작,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고 일본의 1인당 GDP를 앞서게 되었다. 매우 자랑스럽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 비해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일본과는 달리 노조와 정치권이 부끄럽다. 우리 노조는 ‘정치투쟁’에 매몰돼 노조로서의 제 기능을 벗어났다. 그리고 정치권은 개인 영달을 해 권력자 앞에 ‘줄 서기’로 전전긍긍해 정당인으로서의 제 역할을 상실했다. 노조의 정치투쟁과 정당인들의 줄 서기는 하루 바삐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될 국가적 패악이다. 그러한 패악은 젊은 노조원들과 젊은 정당인들 사이에서 신랄하게 비판되고 있다.

동아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월7일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30세 남녀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결과 노조가 우선시해야 할 분야로 근로환경 개선 46.2%, 직원복지 확대 17.7%, 임금인상 16.2%, 정치투쟁 4.8%로 나타났다. 근로환경 개선이 46.2% 인데 반해 정치투쟁은 고작 4.5%로 그쳤다는 것은 노조의 정치투쟁에 대한 젊은이들의 환멸을 반영한다. 

노조의 정치투쟁에 대한 비판은 노조 측에서도 들렸다. 지난 2월6일 열린 노사정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서종수 한국노동조합 총 연맹(한국노총)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노조에 대한 정부의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오히려 정부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우리 노동계는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국민들이 지지한다는 말이었다. 실상 오늘의 노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군림한다. 노조원들 중에는 연봉 1억 원이 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타협 아닌 대립적 투쟁을 일삼는가 하면, 불법·폭력 시위로 법과 질서를 유린한다는 데서 국민 원성의 대상으로 전락되기도 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2004년 1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 정치가 “민생과 경제현안을 외면”하고 “소모적인 정쟁”에만 매달려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났지만 우리 정치는 소모적인 정쟁에 매달리며 경제의 발목이나 잡는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실권자 앞에 줄 서기 경쟁이나 벌인다. 줄 서기 경쟁으로 국가를 위한 참신한 비전 제시보다는 차기 공천 따내기 위해 당권자에게 맹종하며 과잉 충성할 따름이다. 이동한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민주적인 정당으로 출범했는데, 지금은 (지도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른 수용만을 강조하는 전체주의로 변질됐다”고 개탄했다. 국민의힘은 “친박” “친이” 하며 줄 서기 하다 망하더니 이젠 “친윤” “윤핵관”하며 분열과 갈등으로 내출혈 한다. 

정치계나 노동계가 반성해야 할 대목은 분명하다. 노조는 정치투쟁을 버리고 조합원들의 복지향상에만 힘써야 한다. 그리고 정당인들은 실권자 앞에 줄 서지 말고 국가 도약을 위한 통찰력 제시에 진력해야 한다. 일본에 GDP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도 앞서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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