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김기현‧안철수로 이합집산...野 ‘비명(非明) 솎아내기’ 분주

21대 국회의원 배지 [뉴시스]
21대 국회의원 배지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야 현직 의원들이 자당 차기‧현 지도부에 줄을 서고 있다. 당 수뇌부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으며 22대 총선 공천(公薦)을 담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3.8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에선 차기 공천권을 장악하게 될 유력 당권주자들을 구심점으로 당내 이합집산이 분주하다. 주요 당 대표 후보들이 저마다 ‘상향식‧시스템 공천’ 등 정치개혁 과제를 경선 공약으로 내걸고 있으나 실현 가능성엔 의문부호가 달린다. 169석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를 향한 ‘공천 줄대기’가 한창이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개정된 당헌 80조1항 안전장치와 체포동의안 부결을 확신하는 내부 기류에 이재명 지도부를 향한 물밑 로열티 경쟁이 뜨겁다. 심지어 ‘당원평가제’ 도입설이 도는 가운데, 강성 당원들을 중심으로 공천 배제 대상을 분류한 블랙리스트마저 도는 실정이다. 의정 역량보다 이념 동질성이나 친소관계에 역점을 둔 공천 방식으로 인해 정치권에서 ‘낙하산 공천’ 등의 폐단이 세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야 공천제도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의 요구가 고조되는 이유다.

지난 1월 국회는 그야말로 여야 의원들이 특활비만 챙겨간 ‘빈손 국회’로 끝났다. 본회의‧상임위 개최가 전무했고, 민생과 직결된 쟁점 법안들은 대거 표류했다. 이달(2월) 임시국회 또한 여야의 시선이 3.8 전당대회와 사법리스크 당면과제에 쏠린 상황에서 각종 법안 처리가 순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건희 특검법 등 여야 갈등이 첨예한 사안들이 도처에 깔렸다는 점도 2월 임시국회 난항을 부추기는 요소다.     

국회 개점휴업은 사실상 내년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이 공천을 겨냥한 ‘서바이벌 게임’에 돌입하면서 본격화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대 경선을 전후해 유력 당권주자 눈도장 찍기에 적극 나선 한편, 야당 의원들 역시 공천권을 쥐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엄호에 소매를 걷어붙인 상황. 정당 존립을 위한 소신 행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나, 총선 공천을 의식한 행보라는 게 중평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현직 의원들의 공천 줄대기는 여야 불문 당 대표가 압도적 공천권을 행사하는 정당정치 관례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며 “공천이 어느덧 지역구와 민생 개선을 위한 의정활동에 전념할 일꾼을 선별하는 게 아닌, 당과 지도부에 충성할 인사를 차출하는 개념으로 통용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와 안철수 당대표 후보가 7일 서울 강서구 한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와 안철수 당대표 후보가 7일 서울 강서구 한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공천 셈법’ 분주한 국힘 의원들 金-安 앞으로 ‘헤쳐모여’ 

“낮에는 김기현, 밤에는 안철수. 주현야철(晝炫夜哲).” 최근 국민의힘 안팎에서 종종 언급되는 말이다. 여당 의원들이 대세 당권주자인 김기현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당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안철수 후보와도 물밑 연대를 도모한다는 의미다. 안 후보는 이달 발표된 여론조사 가상 양자대결(김기현-안철수)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김 후보가 본경선 과반 득표에 실패하며 결선투표까지 갈 경우 결과 예측이 어렵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렇다 보니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총선 공천권이 걸린 전대를 앞두고 2강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를 놓고 여전히 셈법이 분주한 모양새다. 이른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후광을 업고 있는 김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친윤 대세론에 올라탈 것인지, 비주류임에도 총선형 리더십으로 주목받으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안 후보와의 ‘이면 연대’를 도모해야 할지 기로에 놓인 상황.

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는 한 여당 의원은 “당정 관계와 내년 총선 경쟁력 등을 생각하면 결정이 쉽지 않다”라며 다만 당 대표 공천권과 관련해선 “그런 사사로운 논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친윤 적자’로 지명된 김 후보를 향한 당내 지지세는 두텁다. 본지 취재 결과 이달 2주 현재 김 후보를 지지하는 여당 의원은 친윤계 초선 50명을 포함해 70여 명 안팎인 것으로 파악된다.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장제원‧이철규 의원을 비롯해 김성원‧김도읍‧김상훈‧김승수‧김영식‧권명호‧구자근‧류성걸‧박덕흠‧배현진‧서정숙‧이명수‧이채익‧이만희‧정운천‧조해진‧최영희 의원 등이 김기현 경선 캠프의 유세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며 일찌감치 노선을 굳혔다.

여기에 아직 친(親)김기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의원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캠프 측 설명이다. 캠프 관계자는 김 후보를 지지하는 당내 의원 수가 “본경선이 임박한 3월 첫 주면 국민의힘 전체 의석수(115석)의 90%에 해당하는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 안 후보를 공식 지지하는 당내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극소수다. 안철수 캠프에 따르면 국민의당 출신 권은희‧이태규‧최연숙 의원 등 20여 명이 안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세부 명단은 비공개에 부쳐졌다. 캠프 한 관계자는 “이른바 친윤계로 불리는 의원들 중에서도 안 의원을 비공개로 지지하는 인사들이 있다”라며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윤심 전대’ 분위기에 대체로 지지 표명을 꺼리는 게 사실”이라고 세부 명단은 확인시켜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이재명 사법리스크 수직상승에 공천 셈법 복잡해진 민주

민주당 의원들도 공천 계산법이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앞서 민주당은 이 대표의 검찰 출석 현장에 친명‧비명 가릴 것 없이 집단 동행에 나서는 등 외형상 단일대오가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구속영장 청구로 국면이 급속 전환되자, 총선 공천을 의식한 비명계를 중심으로 체포동의안 ‘이탈표’가 속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일각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비상시국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다.    

당장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 여부를 놓고도 당내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친명계는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한 반면, 비주류인 비명계는 일단 ‘체포동의안 가결이 쉽지 않다’며 동조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속내는 이와 달리 복잡하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비명계 의원은 본지에 “이미 강성 당원들 사이에서 공천 살생부 리스트가 도는 마당에 당원평가제까지 도입되면 내년 총선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다”라며 “소위 ‘개딸(개혁의 딸, 이 대표 강성 지지층) 공천’이 필연적 수순이라면 어떻게든 퇴로를 열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건넸다. 이는 민주당 비명계가 체포동의안을 매개로 출구전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 갈무리 [정두현 기자]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 갈무리 [정두현 기자]

실제로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을 살펴보면 이른바 ‘수박(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비명계를 지칭하는 은어) 퇴출’을 요구하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일각에선 이들 비명계를 신뢰할 수 없다며 안전장치로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또 일부 당원들은 일명 ‘수박 리스트’를 공유하며 차기 총선 공천에서 반드시 배제돼야 할 인사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강성 당원들이 ‘수박’으로 지목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구 당권파인 친문(친문재인)계 및 이낙연계 출신이다. 최근엔 이 대표의 공천권 포기를 요구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당내 소신파 박용진 의원도 해당 리스트에 오르내린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