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이 어느 때보다 드높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정부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적자원이었으나 국가백년대계와 관련 있는 교육개혁의 역사는 늘 미완의 연속이었다.

교육개혁은 교육에 몸담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개혁이어야 하며, 전교조를 키워낸 이념 위주의 교육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유관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인재양성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부를 해체해야 교육개혁이 된다”라는 일각의 주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교육부가 ‘규제 부처’라는 이유 때문이다. 현재 대학 관련 규제는 126개나 된다. 교육 발전을 저해하는 정부 규제를 혁파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야 하며, 교육부 조직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대학의 규제를 혁파하는 이면에, 대전환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대학 자체의 개혁’이 시급하다. 특히 우리나라 명문인 서울대학교는 ‘순혈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 90%가 서울대 학부 출신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 일류대학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이런 배타적인 환경은 학문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그 결과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국내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40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작년 10월. 영국 글로벌 대학평가기관인 ‘타임즈고등교육’은 2023년 전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세계 1위는 영국 옥스퍼드대, 2위는 미국 하버드대, 공동 3위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올랐다. 중국 칭화대가 16위, 베이징대가 17위인데, 서울대는 56위, 연세대는 78위, KAIST가 공동 91위를 기록했다.

최충(崔沖, 984~1068)은 고려 유학을 꽃피운 ‘교육의 아버지’요, 명재상이다. 본관은 해주, 호는 성재(惺齋), 자는 호연(浩然),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984년 황해도 대영군(大寧郡, 해주)에서 해주 최씨 시조인 최온(崔溫)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세종 때 최만리는 최충의 12대손이다.

최충은 62세에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목종·현종·덕종·정종·문종에 이르는 5대 왕을 섬겼다. 최승로가 ‘시무 28조’의 정치개혁으로 고려 500년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라면, 60년 후 태어난 최충은 교육개혁으로 문종이 ‘고려의 황금기’를 이끌 수 있도록 뒷받침한 인물이다.

문종은 최충에 대해 “시중(侍中)은 여러 대에 걸쳐 가장 뛰어난 유학의 종장(宗匠, 경학에 밝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이었으며, 삼한의 덕을 이룬 사람이다.”라고 극찬했다.

최충은 50년 관료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 후진양성이라는 새로운 ‘교육의 길’을 개척했다. 최충이 세운 ‘9재학당(九齋學堂)’은 사학교육의 원조였고, 문신 배출의 산실이었다.

9재학당이 성황을 이루자 지공거를 지낸 유학자들이 각기 11개의 사학을 개경에 개설했다. 이를 9재를 포함하여 ‘12공도(十二公徒)’라 했다. 이에 따라 관학보다 사학이 교육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최충은 1068년(문종 22) 8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고려의 이제현과 조선의 서거정은 최충을 이렇게 극찬했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더욱 성하고 이로부터 뛰어난 문사가 많이 나와 중국에서조차 ‘시서(詩書)의 나라’로 일컬어져 지금에 이른 것은 오로지 최충의 덕택이다.”

최충은 평소 두 아들 최유선과 최유길에게 ‘계이자시(戒二子詩, 두 아들을 위한 훈계의 시)’라는 유훈(遺訓)을 내렸다. “권력보다는 학문의 길에 종사하라”는 가르침은 이후 해주 최씨 가문의 정신적 규범이 되고 있다. 유학의 종장으로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칭송되었던 성재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經訓隆盛九齋長(경훈융성구재장) 경서 가르침이 크게 번성하는 ‘구재학당’을 세웠고

淸儉銘心仕五王(청검명심사오왕) 청렴과 검소함을 마음에 새겨 다섯 왕을 섬겼네

魏闕元勳臣僚順(위궐원훈신료순) 고려 조정의 원훈으로 모든 신하가 따랐고

儒林宗匠諸生仰(유림종장제생앙) 유교의 우두머리로 모든 문생이 높이 받들었네

高山抑抑景行懸(고산억억경행현) 덕행이 높은 산처럼 아름다워 행실이 높이 걸렸고

春水洋洋氣韻創(춘수양양기운창) 문필이 봄철 물처럼 득의해 풍격과 정취 이루었네

代代孫孫廊廟進(대대손손낭묘진) 대를 이어 후손들이 조정에 나아가 동량이 되었고

其先餘蔭益興昌(기선여음익흥창) 그 선조가 쌓은 공덕으로 자손의 복 더욱 흥창했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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