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온 ‘얼치기 보수’ 후보가 당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3년 전 CBS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박정희 대통령은 평가할 만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했던 천하람 후보는 지난 2월 23일 강원도 합동연설회에서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고 말하면 종북 좌파인가? 신영복 선생의 베스트셀러 책을 읽은 수많은 국민도 다 종북 좌파인가?”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관해 기사 댓글에서는 “간첩을 존경한다는 걸 종북좌파라 안 부르면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불러야 하나?”라는 등의 비판이 비등했다. 국민의힘의 뿌리인 박정희 대통령을 비하하고, 간첩으로 전향하지 않은 자(신영복)를 ‘선생’이라 칭하는 천 후보의 주장에 동조할 당원들이 얼마나 될까.

천 후보를 포함한 멘토 격인 이준석, 유승민 등은 정통 보수 정당이라는 옷에 어울리지 않는 ‘회색인(灰色人)’이 아닐까. 이준석 전 대표는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탄핵은 정당했다.”라는 주장으로 당원 투표에서는 나경원 후보에게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는 이겼다(좌파 지지).

배신의 아이콘 유승민 전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을 수렁으로 몰아넣는 ‘내부 총질’을 벌이자 보다 못한 홍준표 대구시장은 “같은 보수 진영에서 내부 분탕질로 탄핵사태까지 가고 보수 궤멸을 가져온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냐.”라며 ‘박근혜 탄핵 원죄론’까지 꺼내 들은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잘못된 것이었고, 보수 궤멸을 통해 대한민국의 체제 탄핵으로 이어져 우리 헌정사에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원희룡 후보는 어떤 형식으로든 탄핵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는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탄핵하겠다.”라며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일관했다.

정당은 정체성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결사체이다. 개혁보수로 위장하여 ‘보수의 정체성’을 어지럽히고 ‘우파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는 천하람, 이준석, 유승민은 한패가 되어 조롱성 메시지들로 정치를 퇴행시키고 있다. 이들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대의(大義)를 백제의 충신 성충에게서 배워야 한다.

성충(成忠,?〜656)은 일명 ‘정충(淨忠)’이라고도 하며, 의자왕과 같은 부여(扶餘) 씨로 백제 왕족 출신이다. 논리가 명확하며 언변이 뛰어나고 병법에 밝아 가히 하늘이 낳은 재사라 할만했다.

백제가 멸망하기 4년 전인 656년(의자왕 16) 3월. 좌평(佐平·1품) 성충은 자만과 주색에 빠진 의자왕에 극간(極諫)하다가 투옥되었다. 성충은 “살아서 내 두 눈으로 백제가 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며 단식하다가 옥중(獄中)에서 비장한 상소를 올린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략) 무릇 군사를 쓸 때는 반드시 지세(地勢)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니, 적병이 만약 오거든 육로로는 탄현(炭峴·옥천)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수로로는 기벌포(伎伐浦·금강하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며, 그 험준하고 좁은 곳에 의지하여 방어하여야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삼국사기>)

계백 장군의 5천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패전했다는 전황(戰況)을 보고받은 의자왕은 “후회로다. 내가 성충의 충성된 말을 듣지 않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초심을 유지하면 절대 일을 망치지 않는다(初心不亡·초심불망).’는 철리를 망각한 의자왕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여 오욕을 뒤집어썼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당나라 침공’과 ‘전쟁 대비’의 주장을 펴 ‘선견지명의 충절’을 발휘했던 비운의 주인공. 성충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忠臣炯眼不堪亡(충신형안불감망) 충신은 통찰력으로 나라 망함을 견딜 수 없었고

落日扶蘇苦憶樑(낙일부소고억량) 부소산에 해가 지면 괴롭게 (백제)대들보 기억하네.

慢恃潛龍能護國(만시잠룡능호국) (백마강)잠룡이 호국 신이라고 오만하게 믿었는가?

若依險勢保全王(약의험세보전왕) 험한 지세 의지했다면 왕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上疏耿耿公明策(상소경경무용책) 옥중 상소는 제갈량의 묘책처럼 굳은 믿음 있는데

誤判區區桀紂疆(오판구구걸주강) 보잘것없는 (조정)오판은 하·은처럼 멸망 초래했네.

白馬天寒灃益愴(백마천한풍익창) 백마강 날씨가 차면 파도 소리 더욱 슬프고

奈何破棄佐平方(내하파기좌평방) 어찌하여 성충의 방책을 파기해 나라를 잃었는가?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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