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 이후 민주당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특히 친명 vs 비명으로 나눠진 심리적 내전 상황에서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도덕성도 새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과거 80년대 서슬퍼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던 386 출신 주요 정치인들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는 하나같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2422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의식한 지도부 눈치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입문 당시 초심을 잊고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과 기득권에 따라 견고한 진영논리에 선택한 것이다. 특히 운동권 86그룹을 대표하는 유력 정치인들의 낯 뜨거운 행보에는 운동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혹평마저 쏟아지고 있다.

이인영 의원. 뉴시스
이인영 의원. 뉴시스

386운동권, 이재명 체포동의안 사태 침묵하는 민주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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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토착비리에 비겁한 침묵우파, 386 퇴진론 공개 점화
386 기득권화 비판속 22대 총선서 거센 세대교체론직면 예고

현재 86세대로 불리는 386 출신 정치인들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혁적 젊은 인재 발탁 차원에서 9615대 총선과 200016대 총선을 거쳐 정치무대에 발을 디뎠다.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저평가우량주로 평가받았다. 특히 ‘386(30·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애칭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이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휩쓴 17대 총선에서는 대규모로 여의도 무대에 데뷔하면서 야권의 중추이자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386그룹은 486(40·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또는 586(50·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으로 불리며 권력의 핵심 중추가 됐다. 다만 최근에는 세대교체론과 더불어 정치적 체급에 어울리는 도덕성 위상을 갖춘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국힘, 체포동의안 부결놓고 386운동권 몰락 맹공

보수진영은 이재명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와 관련해 386출신 야권 정치인들의 부도덕한 행태에 맹공을 가했다. 정치적 대의명분과 기득권 타파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막상 정치적 현실 앞에서는 침묵하는 민주투사로 꼬리를 내렸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86 의원들의 행태에 융단폭격을 쏟아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둔 비대위 회의에서 386의 표리부동한 형태를 정조준하면서 야당의 주축인 운동권출신 386정치인 가운데 누구 하나 이 대표의 토착비리 부정부패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비겁한 침묵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위원장은 이어 “1987년 체제를 탄생시킨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집단 망상에 사로잡혀있다라면서 오늘 우리는 기괴한 선택을 향해 달려가는 386 운동권 세력의 초라한 몰락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민주화에 헌신한 386 의원들을 추켜 세우면서도 체포동의안 부결 입장에는 뭇매를 가했다. 정 위원장은 “386세대는 19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고 때론 목숨까지 희생했다. 민주화투쟁에 함께하지 못한 국민들은 386운동권에 빚을 진 느낌이었다"고 언급한 뒤 민주주의 핵심은 주권재민이다. 국민을 등친 토착비리 부정부패를 눈감아주는 건 주권재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오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다면 우리는 한 세대 이상 이어져 온 87년 체제의 종말, 386운동권 세대의 몰락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 위원장의 강력 경고에도 변화는 없었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가까스로 부결됐다. 여야 안팎의 후폭풍은 여전한 가운데 386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기득권화에 대한 비판도 쏟아진다. 2000년대 이후 민주당과 전신정당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민주화운동 세력은 50대 중후반이 되면서 사실상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기득권 집단이라는 불명예를 쓰게 됐다. 정치개혁의 기관차가 아니라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세대교체론에 시달리고 있다.

개혁상징 386->486->586 이르며 기득권 상징

386은 한때 한국정치 개혁의 상징이었다. 5공 시절 전두환정권의 억압을 뚫고 876월항쟁민주화를 이룩한 주도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거목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권 물갈이와 새피 수혈 차원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386 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의 정치권 데뷔는 엄청난 국민적 기대를 모았다. 보수정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진보정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더 적극적이었다. 386 출신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10여년이 흐른 문재인정부 시절에서는 당정청의 주요 보직을 장악하며 그야말로 권력의 핵심 중추로 성장했다. 세월이 많이 흘렸지만 현 민주당 주도세력 또한 386 운동권 출신이라는 비슷한 배경을 둔 친문·친명 성향의 의원들이다.

김민석 의원. 뉴시스
김민석 의원. 뉴시스

가장 유명한 386 출신 정치인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민석 의원이다. 김 의원이 9615대 총선에서 최연소 당선을 거쳐 여의도에 입문한 이후 200016대 총선 이후부터 정치권에 끊임없이 수혈됐다. 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전 문재인정부청와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우상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참여정부 시절 이른바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각각 참여정부를 대표하는 386 실세였다. 이후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대정부투쟁을 주도하면서 야권의 중추세력으로 떠올랐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정부에서는 당정청 전반을 주도하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문재인정부 시절 막후실세로 활약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386 출신 정치인들은 기득권에 물들지 않는 개혁성향 탓에 국민적 기대감이 컸다. 다만 기대를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의 본질인 민생과 경제보다는 지나치게 경직된 이념 위주의 투쟁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와 관련, “386세대가 경제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386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이는 386의 경제현실에 대한 무지와 지나친 이념적 경직성을 꼬집은 것이다. 이후로도 386 출신 정치인들의 실력과 능력에 대한 비판이 수시로 쏟아졌지만 386 출신들의 정치적 위상과 체급이 커지면서 사실상 묻혀버렸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386 의원들은 당정청 주요 포스트에서 최전정기를 구가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다. 송영길 전 의원은 민주당 대표에 오른 뒤 20대 대선을 진두지휘했고 서울시장 선거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우상호 의원은 대선·지방선거 참패 이후 이재명 대표 체제 출범 직전까지 비대위를 이끌었다. 다만 이들을 비롯한 386출신 정치인들은 젊은세대와의 정서적 교감에는 실패했다. 20대 청년들이 거세게 분노한 조국사태가 대표적이다. 386 출신 정치인들이 바라보는 공정과 MZ세대가 바라보는 공정이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한때 386 출신 야권 정치인들의 장기집권에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 역할론이 부상한 바 있다. 사실상 386그룹과 MZ세대와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는 대안세력이라는 강점 탓이었다. 다만 97세대 역시 386 출신의 86세대와 마찬가지로 기득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86그룹을 향한 본격적인 쇄신이나 개혁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386 출신 정치인들은 정권을 거치면서 오히려 더 강고한 기득권으로 작용했다. 다만 대정부 투쟁이나 당내 파워게임에는 능수능란했지만 경제와 민생을 주도하기에는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꼬리표도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규제 위주의 부동산정책이나 시장원리에 역행한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의 급격 인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22대총선 86그룹 퇴진론 분출시 각자도생 연출?

22대 총선을 앞두고 86그룹을 향한 여야의 퇴진 압박은 최고조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20대 대선 이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는 운동권 퇴진론이 터져나왔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보수진영에서는 86그룹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야당의 핵심 중추세력인 386 정치인들이 이재명 대표의 비리혐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진영논리에 바탕을 둔 방탄국회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386 정치인들이 전두환 군부독재의 공포 속에서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수십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386 자체가 기득권이 돼버렸다. 여야의 적대적 대립을 기반으로 한 공생구조에서 진영논리에 기반해 정치적 이익만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은 물론 이후 불거지고 있는 크고작은 사법리스크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독재에 맞서 민주를 평생의 화두로 내세웠던 386이 불체포특권 포기라는 대선공약마저 무시한 채 상식과 여론보다는 정치적 실리를 챙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86세대의 퇴진과 더불어 MZ(밀레니얼+Z) 세대 대체론도 나온다. 민주당이 그만큼 노쇠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천하람 등 MZ세대 정치인을 전국적 스타로 키워냈지만 민주당을 대표하는 젊은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지난해 대선패배 이후 세대교체론의 깃발을 든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 정도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었고 그 역할을 거의 완수했다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공개 주장했다. 해당 발언은 운동권 출신 선배 정치인들이 내부총질이라는 융단폭격을 쏟아내면서 당 안팎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민주당 안팎을 386 출신 정치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상호 의원. 뉴시스
우상호 의원. 뉴시스

문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386 정치인들에 대한 퇴진 흐름이나 여론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최악의 고비에서 벗어나 반등세를 맞이한 가운데 민주당의 자충수는 줄곧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정당 지지율 역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선 지 오래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더구나 4선 또는 5선 의원이 수두룩한 민주당 386 정치인들은 집단적인 불출마 사퇴 압력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보통 4선 이상이면 물갈이 대상에 오르는 만큼 더 이상 버티기도 쉽지 않다. 386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각자도생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으로서는 총선 승리를 위한 읍참마속이 필수적이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16년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 체제가 반면교사다. 당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민심 이반과 총선 승리를 화두로 이해찬 전 총리와 정청래 의원의 공천배제를 결정했다. 내년 총선에서 이같은 충격요법이 도입될 수 있을까. 앞서 연세대 81학번 동기로 86그룹의 맏형격인 송영길 전 대표와 우상호 의원은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다만 이같은 흐름이 86그룹의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386으로 불리며 2000년대를 전후로 여의도에 집단적으로 진출한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한때나마 한국정치의 기대주였다. 헌신적인 학생운동 경력에 여론도 일정 부분 호의적이었다세월이 흐르면서 참신한 이미지는 점차 사라지고 오히려 기득권 정치의 상징이 돼버렸다. 스스로 혁신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 공천 국면에서 거대한 물갈이론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그동안 야권이 주요 국면에서 정치개혁의 핵심 어젠다로 강조해온 것인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과정에서는 이같은 약속들이 철저히 무시됐다“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는 내년 총선 국면에서 혹독한 국민적 심판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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