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로공사·토지주택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코레일...다음은?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토교통부 산하기관 수장의 수난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도로공사(EX) 등에 이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해임 위기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사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올해 들어 경영평가에서 낙제 성적을 받은 기관이 늘어난데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고강도 공공기관 혁신을 예고하고 있어 거취가 불투명한 기관장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기관장 물갈이가 본격화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 "정부 인사 개입 심각 수준" 지적...새로 부임한 후임자도 결국엔 정치 낙하산
- 윤 대통령, 공공기관 고강도 개혁 예고...정치권이 합리적 개선대책 내 놔야


통상 정권이 바뀌면 정부 부처 장ㆍ차권이 일제이 교체되 듯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도 줄줄이 옷을 벗고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국토부 산하기관 37곳의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등 임원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전체 21%에 해당하는 69명이 야권 코드인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앞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기관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공공기관 평가는 엄격하게 하고, 방만하게 운영돼 온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개혁을 주문했다.  

이어 "공공기관 부채가 급증하는 지난 5년간에도 공공기관 조직은 크게 늘어났다"며 "엄격한 혁신을 통해 공공기관이 작지만 일 잘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고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화청사 매각'과 '고연봉 자진반납' 등을 주문하며 기획재정부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지난해 윤 정부 출범 이후 국토부 산하 주요 공공기관장들의 사퇴가 줄을 이었고 수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 된 기업도 수두룩하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까지 버틸까]]

대표적인 곳이 도공·HUG·코레일 등이다. 이들 기관 중에는 4~5개월 간 수장이 공석인 곳도 있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난 2월 3일 회의를 열어 한국도로공사 신임 시장에 함진규 전 의원을 내정했다.

함 전 의원은 도로공사 신임 사장 공모가 시작되기 전부터 내정설이 돌았던 인물이다. 함 전 의원은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제19·20대(경기 시흥갑)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당시 윤석열 후보 예비캠프의 수도권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같은 날 HUG신임 사장에 박동영 전 대우증권 부사장을 내정했다. 하지만 박 후보자가 주총에서 일신상의 이유로 돌연 자진해 사퇴했다. 

박 후보자는 지난 2월 27일 부산시 남구 HUG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최종 사장 후보로 결정돼 국토부 장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 재가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박 후보자는 주총에서 최종 후보로 의결되기 전인 지난 2월 8일과 9일 HUG 임원들을 만나 업무보고를 받아 논란이 된 바 있다. 

권형택 전 HUG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토부 감사 과정에서 HUG의 특정 업체 보증료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서 지난해 8월 김현준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짐을 싼 지 석 달여 만인 같은 해 11월 이한준 신임 사장이 취임했다.

국토부 산하 기관 중 가장 먼저 이뤄진 인선 작업이다. 김진숙 전 도로공사 사장은 지난해 9월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값 논란이 불거지고 국토부 감찰이 시작되자 사의를 표명했다. 

또 지난 정부 임기 말에 임명된 나희승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교체가 유력한 상황이다. 나 사장의 임기는 2년 가까이 남았지만 정부는 오봉역 사망 사고와 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 사고 등의 책임을 물어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난 2월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국토교통부가 건의한 나희승 코레일 사장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나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52분께 기재부 공운위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소명했지만 자신의 해임은 막지 못했다.

대통령실도 지난 3일 브리핑을 열고 “나 사장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의결됐는데 국토부 제청을 거쳐서 대통령의 재가가 이뤄질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나 사장은 현재까지도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나 사장은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입장에서 향후 정부를 상대로 법적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김정렬 LX사장도 지난 정부에서 임명됐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LX는 문재인 정부 당시 갑질 논란 등으로 해임됐던 최창학 전 사장이 법원 승소로 복귀하며 ‘한 지붕 두 사장’이라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던 김 사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이 외에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 정기환 한국마사회장, 이인호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등이 지난 정부에 임명된 인사다. 

- "보이지 않는 사퇴 압력에 떨고 있다"

이렇다보니 공공기관 수장이 사퇴 압박에 시달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위원(전북인산시갑, 국토교통위원회)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요구자료에서 국토부 산하 기관장에 대한 사퇴압력 및 처리와 관련해 "공공기관장들이 보이지 않는 사퇴 압력으로 떨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사직서를 제출한 기관장중에는 임기가 절반도 안된 기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장은 국토부 장관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감찰을 지시했다”고 밝힌지 이틀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장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기관장은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에 의거 임기 3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임기를 마치기도 전 기관의 경영혁신이라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기관장의 사퇴압력을 넣거나 사직을 종용하는 것은 구태정치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직한 한 기관장은 사직서 제출에 앞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라는 묘한 사퇴압력이 있었다는 듯한 발언을 했고, 다른 기관장은 국토부장관이 페이스북에서 "강도 높은 감찰을 지시했다”고 밝힌지 이틀만에 전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의원은 국토부장관이 산하 기관장들에 대한 진퇴와 관련된 사퇴성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에 대해 법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데 기관장을 강제로 사퇴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공공기관들에 대해 “공공개혁 및 혁신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방만한 경영을 바로 잡는데는 찬성하나 장관이 전횡을 휘두르거나, 정치권력의 윗선 개입, 외부압력에 의해 중도하차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정치권이 합리적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내려올 낙하산이라면 힘이 있는 사람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힘 없는 낙하산은 오히려 회사에서 이익만 취하지만 힘 있는 인사의 경우 회사에 보탬이 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이 관계자가 소속된 회사는 국회에서 막고 있는 법안이 낙하산 인사가 내려 온 후 거짓말처럼 통과됐다고 한다. 

그는 "내부적으로 우연이라는 직원도 있었지만 그래도 힘 없는 경영자가 왔다면 흐지부지 될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다음 후임도 힘 있는 인사가 섭외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선임이 아니라 섭외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어차피 누가 찍어 내리는 것 아니겠느냐"며 비꼼의 의미를 내포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6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개선이 필요한 산하기관으로 LH, 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꼽았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국토부 산하에는 28개 공기업·산하기관이 있다"며 "기관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와 사연이 다 다르겠지만 누리는 권한이 클수록 개혁의 내용과 강도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6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개선이 필요한 산하기관으로 LH, 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꼽았다.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국토부 산하에는 28개 공기업·산하기관이 있다"며 "기관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와 사연이 다 다르겠지만 누리는 권한이 클수록 개혁의 내용과 강도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한편 현재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은 총 28개로 약 8만2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주거복지·교통 SOC 등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은 지난 5년간 기관의  수, 종사자 수 및 부채 규모가 모두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 매출 규모는 52조2000원, 당기순이익은 2조6000억 원이다. ​

국토부는 지난달 7일 새 정부 중앙부처로는 처음으로 '산하 공공기관 혁신방안 마련' 추진 상황을 발표한 바 있다. ​원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국토부가 산하기관에 대한 강도 높은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 만큼, 수십여곳  산하기관장들에 대한 사퇴 압력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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