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국가를 위한 ‘절의(節義)정신’ 실종이 정치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미국의 청교도, 영국의 기사도,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에 비견할 수 있다. 붓(선비정신)과 칼(사무라이 정신)은 ‘사(士)’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고 공통점이 많다.

세종대 호사카 교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평화로운 에도시대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선비정신”이며, 조선 유학자들의 공로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강항(姜沆)이 주자학 이념을 일본에 전수하는 스승이 됐고, 사무라이들은 이 이념을 가지고 주군을 섬기는 것이 신하의 도리로 받아들였다.

3월 8일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김기현 후보가 내년 4월 총선을 이끌 당 대표가 됐다.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는 몰락했다. 경선 기간 내내 ‘윤심’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김 대표는 대승적 입장에서 경선 후유증을 깔끔하게 털어내야 한다.

김 대표는 당원 중심의 100년 보수 정당의 초석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당정 조화로 국정 에너지를 극대화하여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총선 승리를 통해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최고위원에 당선된 태영호 의원은 지난 2월 제주 4·3평화공원에서 “‘4·3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로 자행된 만행”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북한은 ‘조선대백과사전’에서 4·3사건을 김일성의 호소에 호응해 촉발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김달삼 등 4·3사건 주동자들을 ‘통일애국열사’로 받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존 F. 케네디의 저서 ‘용기 있는 사람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국가를 위해 소신 발언한 태영호 의원의 용기가 국가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고려의 대표적 ‘절신(節臣)’인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정운관과 영천이씨 사이에서 1337년 경북 영천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일(포항),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이색의 제자인 포은은 23세에 과거의 삼장(초·중·종장)에서 장원을 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는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개성에 5부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했다. 〈단심가〉로 대표되는 시문과 서화에도 뛰어났다.

포은은 유능한 장군이었으며 외교관이었다. 1363년 여진족 토벌전에서 이성계와 처음 만난 후 왜구 토벌전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일본에 사신으로 가 수백 명의 포로를 구해왔으며,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세공을 감축하고 미납된 세공 5년 치를 면제받으며 국교를 재개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1390년 포은은 이성계와 공동 수문하시중이 되었다. 포은은 친명파로 이성계와 뜻을 함께했으나, 마지막 선택은 역성혁명 대신 ‘고려의 존속’이었다. 포은은 왕권강화와 부국강병을 주장한 온건개혁 보수주의자였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단심(丹心)으로 국가 리모델링을 통해 ‘고려 부흥’을 시도했지만, 조영규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되었다.

포은은 이방원의 손에 죽었으나, 이방원에 의해 되살아났다. 포은 사후 1405년, 태종은 포은을 영의정에 추증하고 익양부원군에 추봉했으며,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세조는 단종 복위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벌했지만, 단 한 명 포은의 손자는 용서했다.

이색은 정몽주를 ‘동방이학(理學)의 조종(祖宗)’이라 하였고, 정도전 또한 그를 ‘도덕의 으뜸’으로 평가했다.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절의의 사표(師表)’인 포은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祖宗理學理深幽(조종이학이심유) 동방이학(성리학)의 조종은 학문이 깊고 그윽하고

一片丹心擧國修(일편단심거국수) 나라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을 온 나라가 배우네

出將赳赳伸妙策(출장규규신묘책) 전쟁에 나가서는 장수로 용맹하게 묘책을 폈고

入朝納納展懷柔(입조납납전회유) 조정에 들어서는 포용력으로 어루만져 달래네

乾坤沈水無驚動(건곤침수무경동) 천지가 기운을 다해도 놀라서 움직이지 않았고

邦運西山各與猶(방운서산각여유) 나라의 운명이 위험할 지경이라 각자 꾀를 냈네

不盡飄風孤善竹(부진표풍고선죽) 회오리바람 없어지지 않아 선죽교는 외롭고

千秋節義孰圖謀(천추절의숙도모) 천추에 빛나는 절의 누가 도모할 수 있을까?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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