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 오후 520, 국민의힘 새 당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후보가 수락연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 순간 국힘 지지자들은 다사다난했던 지난 10개월을 떠올렸을 것이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이기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펼칠 여건이 마련됐지만, 우리 편인지 아닌지 정체성이 의문시되는 당대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었다. 결국 그해 7, ‘내부 총질하는 당대표란 대통령의 문자로 이준석의 난이 시작된다. 두 달 넘게 진행된 그 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물론, 국힘 지지자들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는데, 그 과정에서 당원들이 알게 된 것이 있다. 당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최고위원은 또 얼마나 중요한지. 83만 당원 중 46만명 (투표율 55.1%)이 투표에 참가한 것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지도부를 뽑아 성공한 정부를 만들자는 당원들의 염원을 말해주는 지표였다. 대통령실이 수시로 메시지를 내며 선거에 개입했고, 행정관 한 명이 단톡방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를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당원 대부분이 바라는 후보가 과반수 득표로 당대표가 됐으니, 국힘 지지자들에겐 최고의 피날레였을 것이다.

그런데 김기현 대표가 수락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안철수 의원이 바로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인 이유는 선거 기간에는 서로 물어뜯고 싸울지라도, 선거가 끝난 뒤 결과에 승복하고 서로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과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전과 4범에 대장동 등 온갖 비리에 연루된 분을 대표로 모시는 정당의 대변인이 부도덕한 땅 투기 의혹으로 얼룩진 김기현 대표에게 축하를 보내기는 어렵다는 황당한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정당 사람들은 좀 달라야 했다. 선거 기간 내내 안철수 후보가 김 대표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펴긴 했지만, 대통령실 개입으로 그가 받은 상처를 고려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전당대회 하루 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단톡방 이슈로 김 대표의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고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을 공수처에 고발하는 황당한 일을 벌였지만, 이것 또한 그가 여러 차례 연출했던 기행의 하나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선거에서 2등을 차지한 후보가 새 당대표의 연설을 들어주고, 같이 만세를 부르며 화합의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바로 퇴장해 버렸다니, 이건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전당대회 다음날 우리 당원들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이제 원팀이 돼야 한다는 글을 쓰긴 했지만, 이제 그가 국힘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정치인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인 것 같다.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다음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가 민심을 읽는 능력으로, 정치인 안철수가 거뒀던 유일한 성공이라 할 2016년 총선 38석의 기적은 호남 민심이 민주당에게 등을 돌렸다는 민심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이후 안철수는 단 한번도 그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번 전당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국힘 당원들이 내부총질하는 당대표에게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윤심이 실렸다는 김기현 대표에게 네거티브를 하는 대신, 다음 총선에서 어떻게 제1당이 될 수 있을지를 놓고 정책대결을 펼쳤으리라. 두 번째가 민심을 구현할 청사진을 제시하는 능력, 안타깝게도 안철수는 아직 한 번도 이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가 10년 넘게 정치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정체성이라 할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오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덕분이다. 그는 주야장천 새정치를 말하지만, “새정치는 낡은 정치와 싸우는 것이다는 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이가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지난 대선 때 극적인 후보 단일화로 부활할 기회를 얻었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그가 더 이상 비중있는 정치인이 될 수 없음을 다시금 입증해 줬다. “안 후보님이 앞으로도 큰일을 할 수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영우 전 의원의 말이다. 틀렸다. 응원을 부탁하기보단, 안철수에게 다음을 부탁해야 한다. 이제 제발 뭘 좀 보여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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