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김준석 언론인] 여야 한일 역사전쟁의 막이 올랐다. 주인공은 20대 대선 맞수였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냉랭해진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승부수에 이재명 대표가 초강경 반발을 유지하면서다. 한일관계는 가깝고도 먼 나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에 얽매이기보다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한일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제3자 변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임 정부에서도 검토했던 사안이지만 민족감정을 고려해 극도로 신중했던 사안이었다. 사법리스크로 정치적 곤경에 내몰린 이 대표는 최악의 굴욕외교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에 또다시 양보할 수 없는 강대강 대치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양측은 사실상 정치적 명운을 건 모양새다. 한일관계 해법을 놓고 정면충돌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정치적 노림수를 짚어봤다.

3.1절 기념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3.1절 기념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대통령 삼일절 기념사·정부 강제징용 해법 놓고 여야 난타전
한일관계 개선 통큰 승부수대표 외교사 최대 치욕 성토
- 강제징용 제3자 변제 카드, 한일관계 현실 고려한 고육지책

윤석열 대통령은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한일관계 복원을 화두로 내세운 이후 6일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이어 16·17일 일본을 방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정상회담까지 속전속결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을 공고화한 뒤 한일관계 정상화에 따른 경제적 실리까지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 대표의 처지는 다급하다. 대장동 의혹 등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 압박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의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이다. 정치입문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인 셈이다. 윤 대통령의 승부수를 외교참사로 규정, 국면전환을 시도한 뒤 정치적 곤경에서 탈출하겠다는 포석으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형국이다.

, 침략자 파트너”vs 선열 앞에 고개못들 심정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파트너로 변했다

윤 대통령의 지난 삼일절 기념사는 놀라운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삼일절 기념사에서 한일 파트너십 복원에 무게를 뒀다. 전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이 삼일절 기념사 때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촉구한 것과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취임 이후 첫 삼일절 기념사에서 가해자또는 반인륜적 인권 범죄와 같은 강도 높은 규탄을 사용하면서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과 대조적이다.

야권은 펄쩍 뛰었다. 삼일절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과 대화없이 악수만 나눴던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3·1절 공식 기념사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선열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이라면서 일제강점의 책임이 조선 스스로에게 있다는 주장을 내인론이라고 한다. 일제침략 정당화에 쓰였던 그 사관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다음날에도 융단폭격을 이어갔다. 매국노, 이완용, 친일파 등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이 총동원됐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매국노 이완용과 윤 대통령의 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이라면서 일제 강점과 지배를 합리화하는 식민사관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본 굴종 외교만 재확인했다고 성토했다.

여권은 야권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윤 대통령에 힘을 보탰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의 기념사가 3·1운동 정신을 훼손했다며 죽창을 다시 들고 나섰다문재인 정권이 초래한 북핵 안보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꼬집었다. 김종혁 비대위원도 일본과 협력하자고 하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일본과 화해를 시도하고 감사까지 표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받지 못할 매국노냐 아니면 토착 왜구냐고 반문했다.

강제징용 해법 정면충돌공동이익”vs굴욕

삼일절 기념사로 충돌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 6일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로 또다시 정면충돌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간 최대 현안으로 피해인원은 약 78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다만 일본 정부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청구권 자금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한일 양국의 교착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내놓았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인식은 극과 극이었다. 윤 대통령은 한일간 미래의 공동이익을 강조했다. 반면 이 대표는 굴욕외교라며 거세게 성토했다. 여야 지도부 역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지원사격하면서 정면충돌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3자 변제방식으로 풀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후 한일간 최대 난제였던 강제징용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전임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문희상 전 국회의장 주도로 유사한 해결방안이 모색됐지만 국내외 반발 여론에 무산된 바 있다. 핵심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배상급 지급을 위한 재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청구권 자금 수혜를 입은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의 기업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불참 논란은 한일 양국 재계가 주도해 미래청년기금을 조성하는 해법이 제시됐다.

박 장관은 외교, 경제, 안보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한일 양국에게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 미래로 가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해법은 사실상 고육지책이다. 한일간 입장차가 팽팽한 가운데 과거사 문제에 얽매여 글로벌 국제협력을 외면하는 것은 국익 관점에서도 손해라는 윤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 도 7일 국무회의를 통해 본인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간의 미래 지향적 협력은 한일 양국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하면서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 "그동안 피해자 입장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미래 발전에 부합하는 방안을 모색해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결단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찬사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에 신기원적인 새 장을 장식할 것이라고 응원했다.

굴욕외교라 반발하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굴욕외교라 반발하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반면 야권의 반발 강도는 삼일절 기념사를 넘어섰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섰다. 이 대표는 삼전도 굴욕 친일 매국정권 전쟁범죄 면죄부 등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한 것을 예로 들며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의 치욕이자 오점이 아닐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입장에서는 최대의 승리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굴욕이자 수치이라면서 친일 매국정권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고 성토했다. 특히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의 상처를 두 번 헤집는 '계묘늑약'과 진배없다고 비판하면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안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최악의 외교적 패착이자 국치라고 꼬집었다. 사법리스크 고조와 민주당 내분으로 최악의 위기에 내몰린 이 대표로서는 역사전쟁프레임으로의 전환을 시도해 윤 대통령을 향한 공세 강화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반발 산넘어 산정상회담후 여론 분수령

윤 대통령의 정면돌파와 이 대표의 초강력 반발이 지속되면서 한일관계 해법을 둘러싼 양측의 진검승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참여가 없는 반쪽짜리 해법에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변수다. 이에 따라 최대 분수령은 16·17일 윤 대통령의 방일과 한일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통큰 결단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통큰 화답을 보낼 경우 한일관계는 그야말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윤 대통령의 승부수가 성공할 경우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거센 민심의 역풍에 시달릴 경우 이 대표는 정치적 반등을 위해 역사전쟁 프레임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단체는 정부의 해법과 관련, “대한민국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킨 사법주권 포기이자 자국민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받겠다. 내가 지금도 밥을 굶지 않고 자식들도 있는데,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며 정부 결정에 반대했다.

피해자 단체의 반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민여론도 부정적인 편이다. 한국갤럽이 10일 발표한 정부의 '3자 변제 방식'에 대한 여론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p)에 따르면 한일관계와 국익 위해 찬성이라는 의견은 35%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의 사과와 배상 없어 반대라는 의견은 59%, 찬성 여론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강제징용 해법의 여파인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같은 조사에서 소폭 하락했다.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4%, 부정평가는 58%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직전 조사 때보다 긍정 평가는 2%포인트 하락하고 부정평가는 3% 포인트 오른 것이었다. KBS9일 윤 대통령의 대선승리 1주년을 맞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일본 전범기업 대신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응답자의 53.1%'잘못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39.8%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으로서는 한일관계 해법 마련을 위한 한일정상회담의 성과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12년만에 재개되는 한일정상간 셔틀외교 복원에 대한 기대감은 적지 않다. 셔틀외교는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한일 정상이 상대국을 상호 교차방문하는 형식으로 시작됐지만 MB정부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중단됐다. 한일정상은 이후 국제 외교무대에서 접촉했을 뿐 상호방문에 따른 양자외교는 성사되지 못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크고작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한일관계 정상화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일본 여론은 호의적이다. 특히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주요 언론은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인 수출규제의 신속한 해제 권고와 더불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위안부 문제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 뉴시스
위안부 문제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 뉴시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한일관계 정상화는 대한민국 외교가의 가장 큰 현안이자 숙제라면서 글로벌 경제안보 협력이라는 국익과 실리에도 일제 식민지 경험과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중첩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가운데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참여는 물론 북핵위기 대처라는 안보 협력 차원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진전은 필수적인 사안이라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반발과 국내 부정적 여론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익중심의 실리적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이 대표의 반발은 부수적 요인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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