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겸손하고 탈권위적인 품성을 통해 실용주의 경영철학과 리더십 면모를 드러내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이고 전 세계를 주무르는 다국적 기업이다. 국내 임직원 수 만해도 12만1천400여명에 이른다. 55세의 이 회장은 오래 전부터 해외 출장 갈 땐 수행원 없이 홀로 간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도 자주 한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그는 중고 SUV(스포트유틸피티) 차량을 즐겨 몬다. 거기에다 복장은 유행이 훨씬 지난 것들도 마다 않는다.

이재용의 선대인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이나 할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재용의 선대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운전기사에 수행비서가 동승하며 경호차가 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용은 수행원 없이 홀로 나서거나 직접 중고차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권위 보다는 실용성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 박사 과정에 수학하면서 터득한 미국의 탈권위적 실용주의 경영철학과 리더십 영향인 듯싶다.

미국에선 사원들이 대기업 오너에 대해서도 “회장님”이라고 존칭하지 않고 그저 이름만 부른다. 필자는 1960년대 미국에서 수학할 때 네바다 주 리노 시 도박장 식당에서 여름 방학 아르바이트 했다. 필자가 일 하던 ‘해롤드 클럽’은 리노에서 가장 큰 도박 업체이다. 등이 구부정한 70대의 ‘해롤드 클럽’ 회장은 필자가 버스보이(식당 웨이터 조수)로 일할 때 가끔 7층 식당에 올라왔다. 그는 나와 마주칠 땐 나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잘 지내?”라고 묻곤 했다.

그럴 때 나는 “잘 지냅니다”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가볍게 답례 했다. 땀에 젖은 버스보이 필자는 겸손한 회장님과 친구처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이것이 자유와 평등의 미국 속살이구나” 되 뇌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큰 회사 회장이 회사를 순시하게 되면 수행비서 등 줄줄이 따라 붙는다. 그러나 ‘해롤드 클럽’ 회장은 홀로 다니며 말단 중에 말단 버스보이의 등을 치며 인사를 나눈다.

이재용 회장도 사원들 간에 상하 구별 없이 서로 이름만 부르는 걸 장려한다. 그는 회사원들에게 자신을 “회장님” 이라고 존칭하지 말고 그냥 자기의 영어 이름 ”제이와이(JY)“로 불러달라고 당부한다. 원래 그는 2016년부터 직책을 떠나 이름에 ”님“만을 붙여 부르는 수평적 호칭을 사용토록 권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식점에 갈 경우 값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운전기사 및 수행원에게 맛보자며 나눠준다.

이재용의 겸손과 수평적 호칭 권장은 사내 상하 직급간의 경직성을 허물고 유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한데 있다. 그가 지적(知的) 성숙기에 유학하면서 체득한 미국 특유의 탈권위주의적 실용주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삼성에 접목시키려는 듯하다. 실상 탈권위적 실용주의 산물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겸손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신종인루엔자A 예방 백신을 접종할 때 연령순서 대로 지정된 날 짜 까지 기다렸다가 접종했다. 그는 두 딸을 데리고 사립학교에 갈 때는 꼬박고박 교통신호를 기다렸다. 그의 막내 딸 15세 사샤는 여름방학을 맞아 식당에서 서비스 알바를 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은 게 인간”이란 말이 있다. 이재용도 한국 최고의 기업 회장으로서 종 부리고 싶은 마음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회사원들과의 화합과 협력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종 부리기를 거부하고 종이 되고자 한다. 타고난 겸손한 품성이기도 하다. 한국 지도층은 재계나 정계나 할 것 없이 목에 힘준다. “못난 송아지가 엉덩이에 뿔이 난다”는 격이다. 우리 모든 지도층이 수범해야 할 탈권위적이며 실용주의적 경영철학이자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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