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을 이끌어갈 육해공군 사관생도는 올바른 국가관과 역사관이 바탕 되어야 한다. 지난 3월 2일 임관한 육사 79기 중 ‘6·25 전쟁사’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생도들(280여 명 가운데 75%인 210여 명)이 작년 가을부터 보충수업으로 이수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적이다.

육사는 지난 2월 13일 “2024년 교육과정에서 ‘6·25 전쟁사, 전쟁과 전략, 북한학’ 등 안보관·역사관·대적관 관련 3개 과목을 ‘공통 필수’ 과정으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좌파 정부에서 2019년 선택과목이 된 이들 3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수많은 학도병이 자원입대해서 조국을 지켰다.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요충지인 포항·안강·장사·영천 전투 등에 참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산화한 학도병들의 애국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창학 이념으로 설립한 경주중고등학교 학도병은 1950년 7월 7일 1차로 170여 명, 2차로 50여 명, 3차로 100여 명 등 합계 320여 명이 참전했다. 전몰학도병은 현재 59명의 영령이 추념비 명판에 각명되어 있지만, 총 139명이 순국했다.

연전에 타계하신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필자에게 “대구·경북에서 대통령이 다섯 분 나온 것은 학도병들의 피값이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새롭다. 필자는 ‘학도병정신’의 근원은 삼한일통의 바탕이 된 신라의 ‘화랑정신’과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의 ‘충군애민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구한말 역사학자 박은식은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라고 했다.

곽재우(郭再祐, 1552~1617)는 1552년(명종 7) 곽월과 진주강씨 사이에서 경남 의령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조식의 외손서이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불렸다.

곽재우는 33세 때 과거에 2등으로 합격했지만, 지은 글이 왕(선조)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효가 되자 평생 은거할 결심을 했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자 40세의 곽재우는 “나라를 지키는 일을 관군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기치로 의령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노비 10여 명에 불과했는데, 그 수가 2,0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곽재우는 단기(單騎)로 적진에 돌진하거나 위장·매복 전술 등의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적을 교란하고 무찌르는 유격전을 구사했으며, 심리전·기만전술까지 능했다. 1592년 5월 하순경. 곽재우는 정암진(鼎巖津) 도하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정암진전투’), 경상우도를 보존해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해 10월. 김시민의 ‘1차 진주성 전투’에 휘하의 의병을 보내서 승리에 조력하였다.

임란이 끝난 뒤 의병장들은 대체로 공훈에 합당한 포상과 예우를 받지 못했다. 곽재우는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거듭 고사하여 은거의 결심을 꺾지 않았다.

곽재우는 필체가 웅건, 활달했고 시문에도 능하여 저서로 <망우당집>을 남겼으며, 향년 65세로 망우정(忘憂亭)에서 별세했다. 일세를 풍미한 의병장이 남긴 것이라고는 단벌옷에 거문고, 낚싯배 한 척이었다. 벽곡찬송(辟穀餐松, 익힌 곡식을 끊고 솔잎만 먹음)과 은거로 탈속의 자유를 누린 망우당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江山依舊忘憂亭(강산의구망우정) 옛날과 변함없이 비슬산과 낙동강 사이 망우정 있고

失落灰心出仕寧(실락회심출사영) 과거에 잘못 낙방해 벼슬 나가는 뜻 접고 은거했네

壬亂危邦初倡義(임란위방초창의) 임진왜란의 국가 위기에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고

鼎巖大捷繼功銘(정암대첩계공명) 정암전투에서 크게 이겨 계속해서 공을 새겼네

無時調息登仙道(무시조식등선도) 때가 없이 호흡을 조절해 신선이 되는 도를 닦았고

不禁彈琴羽化形(불금탄금우화형) 그침 없이 가야금을 타서 몸에 날개가 돋았네

百戰悠悠單騎隱(백전유유단기은) 수많은 싸움을 유유하게 승리했지만 홀로 은거했고

紅衣耿耿久明星(홍의경경구명성) 홍의장군은 빛나는 모양의 샛별로 오래 회자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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