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급식당에서 최고의 요리를 맛본 사람은, 빈털터리가 되어서도 그날의 맛과 향, 우아한 음악과 유쾌한 웃음소리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한다. 풍요롭던 과거의 기억은 메마르고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환각제와 같다. 한때 뭔가를 가졌거나, 뭔가를 누렸거나, 뭔가를 휘둘렀던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화려한 날들의 기억을 나누길 좋아한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국회의원이란 표식은 마치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결속의 매듭처럼 질기고 끈끈하다.

민주헌정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대의제도 연구와 정책개발 및 사회복지 향상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민국 <헌정회>가 내건 아름다운목적이다. 현재 회원 수는 1,399(전직 1,100, 현직 의원 299). 하지만 헌정회가 연로회원 지원금 주는 일 외에 정말 그 목적에 어울리게 돈값(세금)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헌정회가 만들었다는 대의제도 연구 결과, 개발했다는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국가와 헌정(憲政)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그들이 사회복지 향상에 과연 어떤 기여를 해왔는지 묻고 싶다. 거창한 포장지를 걷어내면, 그냥 동일업종 종사자와 은퇴자들의 친목모임과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그런 헌정회가 전직 국회의장 3인에 대해 월 450만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단다. 경로우대라는 대한민국 미풍양속을 감안하더라도, 공정과 상식, 특권 반대라는 시대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모습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한번 국회의원은 영원한 국회의원이란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사실상 동종업종 친목모임에 불과한 헌정회에 2023년 예산 63억 원. 그 돈은 도대체 왜 지원해야만 하는 것일까? 입법부를 제외한 사법부와 행정부 장차관들이 모임을 만들고, 법까지 만들어 매년 혈세를 지원받는다면, 국회와 국민이 과연 용납할 수 있을까? 왜 전현직 국회의원 친목모임에만 법까지 만들어 혈세를 지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헌정회가 월 450만 원, 연간 5,40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전직 국회의장 3(정의화, 정세균, 문희상)의 재산내역부터 공개하는 것이 옳다. 국가 원로라면 오히려 한 푼의 세금이라도 아끼는 데 동참해야지, 혈세를 탐내면 되겠는가. 그분들이 그런 요구를 했을 리가 없다. 괜히 헌정회 스스로 전직 국회의장들의 품격을 훼손하는 셈이다. 현직 국회의원에 대한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요구인데, 전직까지 세금으로 챙겨주자는 것을 과연 누가 곱게 봐줄 수 있을까. 나라가 처한 위기, ‘이생망외치는 청년들의 절망,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고단한 삶을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쉽게 행할 수 없는 무모한 시도이다.

이런 모습이 처음이 아니란 게 더 문제다. 2009년에는 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게 주는 지원금을 월 100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10% 인상했다. 당시 최악의 경제난으로 사회 각계가 임금 동결·삭감 등 고통 분담에 나선 상황이었다. “재임기간동안 국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는 국회의원들이 근거와 원칙이 불명확한 지원금을 사망 때까지 받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당연했다. 그러자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여야가 한통속이 되어 다음 해인 2010년엔 아예 법으로 지급을 명문화했다. 그뿐인가. 2012년에는 전직 국회의원도 인천국제공항 VIP 주차장을 이용하게 해줄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난 뒤, 의무와 책임은 뒷전인 채 권한만 누리려고 하는 특혜의식이 나라를 망치는 것이라는 지적을 자초한 것이다. 201312일 당시 여당은 국회 쇄신을 위한 5대 약속을 제시하며 헌정회 원로회원지원금 폐지'를 언급했음에도 하루 만에 이를 뒤집었다. 그러나 특권문제에 대한 여론이 빗발치자 결국 2013813일 헌정회육성법이 개정되어 201411일부터는, 18대를 포함한 이전 국회의원 재직자 연로회원에 대하여만 재산과 소득에 따라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2020년에는 전직 국회의장에 차량·사무실을 제공하고 임기 만료 후 4년간 운전기사와 비서 각 1명씩을 지원한다.”는 속칭 문희상 예우법발의를 추진한 국회의원도 있었다.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올해 새로 들어선 헌정회 집행부는 시작하자마자 회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복지기금 100억 원 조성, 헌정회원공제회 설립(수익사업), 국립현충원 내 헌정묘역 설치(장례비 본인 100만 원을 200만 원으로 인상), 연로지원금 인상과 수혜자 확대, 헌정회관의 조속한 건립(··청의 소통 공간, 친목 공간, 연구연수 공간, 의무위생 공간 등 확충)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과연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이 은퇴 후에도 이런 일이나 도모하는지 궁금하다. 베트남의 호치민 주석,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총리, 우루과이의 무히카 대통령의 청렴함을 실천하진 못하더라도, 헌정회원 스스로 왜 본인이 국회의원이 되려 했고, 왜 정치를 했는가를 자문자답 해봐야만 한다. 차제에 5년 임기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특혜 또한 없애거나 축소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무슨 욕심이 더 필요한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