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세계인들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불안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삶이 불안할수록 세계인들은 공공의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K 의료’로 불릴 만큼 의료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병원에서조차 아이들을 돌볼 소아 전문 의사가 없어 입원 진료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전 세계 최저 출산율로 전공의들은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기피하는 실정이며, 소청과 개원 의사단체가 지난 29일 ‘폐과’ 선언을 했다. 상황이 열악한 건 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 등도 마찬가지다.

공공의료와 지방 의료계는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필수진료 과목 전문의의 태부족과 의료진의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응급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7명에 많이 못 미친다. 전국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17년째 3,058명에 꽁꽁 묶여 있다.

정부는 ‘교육개혁’ 차원에서 의료 인프라의 완성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 소아청소년과 개원 유도, 필수진료 과목 전공자 우대, 지방 의무 근무 지역의사제 도입 등 최소한의 실효적인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의협 등 기존 의료계는 ‘허준의 보민(保民) 정신’을 깊이 새겨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원 확대에 협조해야 한다.

‘하늘이 내린 명의’ 허준(許浚, 1539~1615)의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이다. 아버지는 용천부사를 역임한 허론(許碖)이며, 어머니 영광 김씨는 소실이었다. 서자 신분은 의관의 길을 택하는 데 작용하였지만, 허준은 양반 가문의 배경 덕에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다.

허준은 30세(1569)에 유학자 유희춘(柳希春)의 얼굴에 생긴 종기를 완치한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유희춘은 이조판서 홍담(洪曇)에게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했고, 1573년(선조 6)에 허준은 종4품 내의원 첨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던 중 1590년 광해군의 천연두를 고치자, 선조는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의 벼슬을 내리며 그 공을 치하했다. 임진왜란 중 다시 한번 광해군의 병을 고치면서 동반(東班)에 올랐다.

임란이 끝나자 선조는 자신을 끝까지 호종(扈從)한 문무관 17명을 공신에 책봉하고, 허준에게 종1품 숭록대부 벼슬을 내렸다. 이처럼 허준의 출세는 조선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허준은 30여 년 동안 내의원의 어의(御醫)로 활약하는 한편, 8종의 의학서적을 집필하였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 어의로서 책임을 추궁당해 의주로 유배되었는데, 귀양 기간 중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했다.

중국판 서문에는 ‘천하의 보(寶)를 천하와 함께한 것’이라 하였고, 일본판 발문(跋文)에는 ‘보민(保民)의 단경(丹經, 신선의 글)이요, 의가(醫家)의 비급(秘笈, 소중히 보존되는 책)’이라 평했다.

허준은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한국·동아시아·세계의학사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동의(東醫, 한국 의학)의 위상을 높였다. 1615년 허준은 76세에 타계했고,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가 추증되었다.

신묘한 의술로 박애를 실천해 ‘의성(醫聖)’이 되었고,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구암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杏林春滿顯人才(행림춘만현인재) (조선) 의술의 고명함이 인재(허준)로부터 드러났고

疫襲方知妙術開(역습방지묘술개) 역병이 엄습해서 비로소 신묘한 의술 만개 알았네

立志成名渾破格(입지성명혼파격) 뜻을 세워 명의 명성 얻음은 순수한 파격이었고

飛黃騰達忽鳴雷(비황등달홀명뢰) 지위가 급상승한 것은 홀연히 우레 울음 같았네

家家祕笈華佗技(가가비급화타기) 집집마다 소중히 보존된 책은 화타의 의술 같았고

戶戶丹經扁鵲材(호호단경편작재) 집집의 백성 지키는 신선 글은 편작의 재료였네

寶鑑一時三國寶(보감일시삼국보) 동의보감은 일시에 조선·중·일의 보물이 되었고

烏號至盛泰山嵬(오호지성태산외) 아! 지극하게 이룬 사람이 태산 같은 우러름 받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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