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캠페인을 논의해보자”(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 vs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감옥에 갈 것 같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야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실언 탓에 살얼음판 긴장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 422대 총선에 미칠 여파 때문이다. 지난 연말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점을 고려하면 크고작은 말실수 하나는 여론지형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특히 역대급 막말이나 망언 사고는 유권자의 표심을 완전히 뒤흔든다. 아울러 국민정서와 완전히 배치되는 각종 실언 또한 마이너스 요인이다. 여야 의원들의 말실수가 포털사이트 뉴스화면을 도배할 때마다 우수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탄식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야 모두 신속하게 리스크 관리에 접어들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소속 의원들의 방송출연 및 인터뷰 관리 강화는 물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 활동에도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고 있을 정도다. 선거결과를 뒤흔드는 실언의 정치학을 짚어봤다.

귓속말하는 김기현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 뉴시스
귓속말하는 김기현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 뉴시스

- 조수진, ‘밥 한 공기 비우기캠페인으로 논란
- 안민석, ‘대통령 부부 감옥행발언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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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폄하·이부망천역대급 망언, 선거결과 좌우

여야가 막말과 실언 관리에 들어간 것은 역대 선거에서 가공할만한 후폭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417대 총선과 202021대 총선이다.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은 200석 이상의 대승을 기대했지만 정동영 전 의장의 노인폄하발언 여파로 과반 턱걸이에 그쳤다.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은 미래통합당은 차명진 전 의원의 세월호 유가족 비하발언 여파로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민주당의 180석 대승을 헌납했다. 문제는 여야의 경계령에도 불구하고 크고작은 실언이나 막말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승리를 지상목표로 설정한 여야 지도부 모두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다되풀이되는 말실수

상황이 보다 심각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과 태영호 최고위원의 설화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지도부의 말실수가 터졌다. 조수진 최고위원이 양곡관리법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비우기 캠페인을 제안했다가 당 안팎의 거센 반발을 샀다. 조 최고위원은 지난 5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주도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밥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이 많은데, 다른 식품과 비교해 (밥이) 오히려 칼로리가 낮지 않나라며 밥 한 공기 비우기를 제안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나온 발언이라 파장이 더 컸다. 조 최고위원의 발언이 알려지자 댓글이나 주요 커뮤니티에서 비아냥과 조롱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비윤계 인사들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이준석 전 대표는 갈수록 태산이라고 꼬집었다. 김웅 의원은 먹방으로 정치할 거면 그냥 쯔양(먹방 유튜버)이 당대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고 비꼬았다. 허은아 의원도 조수진 최고위원의 실언으로 농민들 억장이 무너졌다이게 어느 나라 민생 해법인가. 아예 밥공기 그릇 두 배로 만들라 하시지 그랬냐고 비판했다. 지지율 하락에 각종 설화로 마음 고생이 심한 김기현 대표마저도 밥 한 공기 다 비우기'가 무슨 대책이 되겠냐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민주당도 황당무계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논란 확산에 민생을 위한 아이디어를 정쟁으로 몰지말라며 적극 반박했지만 냉랭한 여론을 돌아서지 않았다.

민주당도 못지않다. 대통령 퇴진론이나 철지난 탄핵론을 되풀이한다. 야당의 대정부공세 차원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금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정치불신과 혐오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공격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한동훈 법무장관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지지층을 결속하기 위한 이러한 발언을 내년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과 중도층 외연확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5선 중진인 안민석 의원은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를 전제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감옥행을 언급했다. 안 의원은 요즘처럼 정치 실종의 시기는 없었다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게 되면 레임덕이 있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차기 정권을 야당한테 다시 뺏길 것이다. 그러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무탈하겠나. 아마 감옥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은 발끈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가짜뉴스 아이콘안민석 의원의 막말은 동료의원들조차 부끄럽게 만든다도를 넘은 막말로, 이 정도면 협박에 가깝다고 맹비난했다. 김병민 최고위원도 대한민국 사법 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발언이자 극단적 대결 정치에 기름을 붓는 최악의 망언이라고 질타했다.

한동훈 장관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김의겸 의원은 최근 정말 말싸움 하나는 정말 잘한다. 일부 언론이 '조선제일검'이다, 이렇게 평가를 하는데, 오늘 말하는 걸 보면서 '조선제일혀'라고 새생각한다며 한 장관을 깎아내렸다. 한때 민주당이 한 장관을 조선제일검이라고 추켜세운 것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한 장관은 이에 덕담한 걸로 생각하겠다거짓말이 끊기 어려우시면 좀 줄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과거 김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를 비꼬았다.

대화나누는 이재명대표와 안민석 의원. 뉴시스
대화나누는 이재명대표와 안민석 의원. 뉴시스

한 방에 훅 간다 역대급 망언·막말 후폭풍

여야가 극도로 긴장하는 건은 실언의 후폭풍 탓이다. 역대 선거에서는 유력 정치인들의 크고작은 말실수가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역대급 막말로 선거판이 뒤집힌 경우는 한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한 방에 훅 간다라는 표현대로다. 낙승이 예상됐던 선거에서 어렵게 이기거나 역전을 기대했다가 등돌린 민심의 싸늘함과 직면해야 했다. 여야 정치권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는 17대 총선과 21대 총선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절대 반복하지 말아야 할 바이블로 통할 정도다.

17대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대승이 예상됐다. 정치적 불모지인 영남에서도 싹쓸이 전망이 나오면서 최소한 200석 이상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예상이 쏟아졌다. 선거판을 뒤흔든 것은 정동영 전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었다. 정 전 의장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좋다고 언급했다. 20·30대 젊은층의 투표율 제고를 위한 것이었지만 정국은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개헌 저지선인 100석도 어렵다는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원투수로 내세워 121석을 얻었다. 정 전 의원장은 노인폄하 발언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이후 정치적으로도 몰락했다.

21대 총선은 정반대의 사례다. 조국사태 후폭풍과 문재인정부 부동산정책 실패의 여파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우위가 예상됐다. 국정농단과 탄핵사태 이후 보수궤멸론에 시달렸던 통합당은 21대 총선을 통틀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애썼지만 역대급 망언이 터지면서 선거는 그대로 끝났다. 차명진 전 의원은 세월호 유족 비하발언의 여파였다. 차 전 의원은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쓰리섬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여론의 후폭풍에 통합당 지도부는 즉각 차 전 의원을 제명하는 중징계를 내렸지만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후보직이 유지되면서 중도층의 대거 이탈에 따른 수도권 참패가 이어졌다.

앞서 20186월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 대변인이던 정태옥 의원이 일명 이부망천(離富亡川)’이라는 지역비하 발언으로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 ‘서울에서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이혼하면 부천으로,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는 취지의 이부망천 발언으로 수도권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 당 지도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17대 총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대승이 예상됐지만 막판 선거판을 뒤흔든 것은 정동영 전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으로 기세가 꺾였다. 뉴시스
17대 총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대승이 예상됐지만 막판 선거판을 뒤흔든 것은 정동영 전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으로 기세가 꺾였다. 뉴시스

실언 부작용, 총선 캐스팅보트 중도층 외연확장 불가

정치는 말과 글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크고작은 설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총선용 대책의 일환으로 꺼내든 기본대출 1000만원도 비슷한 사례다. 이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인 기본금융을 내세웠는데 2030세대를 비롯한 전국민에게 최대 1000만원을 최대 20년간 대출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천문학적인 재원마련 대책이 불분명하다는 비판 속에서 총선용 퍼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책적 실언에 해당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에서도 선거판세를 뒤흔든 실언이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경선 막판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사과 논란으로, 이재명 대표 역시 조카의 연쇄살인 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표현했다가 정치적 수세에 내몰리기도 했다.

주요 정치인의 설화는 보통 해프닝으로 마무리된다. 워낙 이슈의 변화 속도가 빠른 대한민국 정치구조에서는 대중도 쉽게 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정국 상황에 따라서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킨다. 만일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5.18 발언과 태영호 최고위원의 4.3 발언이 만일 총선 국면에서 나왔다면 이른바 서진정책으로 불리는 국민의힘의 호남공략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었다. 아울러 윤 대통령 내외를 향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지나친 비하 발언 역시 민주당의 동진정책으로 불리는 영남공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사안이다.

문제는 여야의 실언 경계령이 현실정치에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개별 의원들의 단독 플레이를 당 지도부가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야 의원들의 되풀이되는 사소한 말실수는 사실상 통제불능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때로는 여야 지도부의 자체 요청에도 아랑곳 없는 분위기다. 특히 TV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개별적으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활동을 일일이 사전에 체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 출연이나 SNS상 입장 표명 이외에도 국회 대정부질문, 상임위에 이어 당 회의에서도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의 실언이 반복될 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와 선거는 기본적으로 말과 글의 싸움이라면서 역대 선거에서 말 한마디가 선거판을 좌우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내년 총선 역시 말실수를 최소화하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내년 22대 총선은 사실상 20대 대선의 연장전 성격이다. 여야 모두 강성 지지층 팬덤의 영향력이 거세다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역대급 막말이나 실언이 터질 경우 총선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수도권과 중도층 공략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가면서 총선 패배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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