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 지방검찰의 3월31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를 두고 미국 일부 언론들은 한국의 ‘정치 사법화’를 닮아간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수감되거나 보복 주고받기의 양상을 띤다’고 했다. 그러나 금전매수 등 34개 혐의에 달하는 트럼프 기소와 한국의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전혀 다르다. 한국 대통령들의 기소와 사법처리는 그들의 범법행위가 재직 시엔 ‘제왕적 대통령’의 무서운 위압 속에 가려졌다가 퇴임 후 기소되는 특성을 지닌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이명박 등이 그에 속한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임기 중 폭로돼 재임 중에 기소 사법처리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3권 분립과 언론 자유가 보장된 국가로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처럼 재임 중에도 대통령의 범법행위는 낱낱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234년 동안 하나의 대통령도 기소되고 사법처리 된 바 없다. 미국 헌법 제1조 3항은 대통령이 탄핵되고 해임된다 해도 기소되고 재판에 회부돼 처벌받는다고 명기하였다. 그런데도 그동안 대통령들이 기소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범법행태가 트럼프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고 동시에 정치적 협상과 타협을 통해 기소를 면죄받았던데 연유한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면책특권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 없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미국의 법과 규범을 어겼고 법무부와 사법부를 자기 의도대로 주무르며 법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트럼프 기소를 주도한 앨빈 브래그 뉴욕 맨해튼 지방검사장은 재판정의 기소 인부(피고인에게 범죄혐의를 알리고 그것들을 인정할지 묻는 절차)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장할 엄숙한 책임을 지켰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소속이고 흑인이며 하버드 대학 학부와 로스쿨을 나왔다. 공화당의 캐빈 매카티 하원 의장은 브래그가 “정치적 복수를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에서도 전직 총리나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적지 않다. 이스라엘의 전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 이탈리아의 전 총리 실비오 베르루스코니, 프랑스의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스 사르코지 등이 그들이다. 

트럼프 기소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격돌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미국의 주간지 타임(TIME)은 ‘남북전쟁 직전인 1850년대와 유사하다. 내전발발 조건이 충족됐다’고 썼다. 그러나 옳지 않은 표현이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도 반대의 공화당 북부와 옹호의 민주당 남부 간의 지역대결, 공업중심의 북부와 농업위주 남부 간의 이해상충, 공화당의 노예해방 지지자 에이브럼 링컨의 대통령 당선 등이 촉발시킨 내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단지 트럼프 개인의 스캔들과 탈세 그리고 내란선동 등 잡범 혐의일 따름이다. 한국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개인부정비리 혐의와 같다. 또한 2년 전 의회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연방정부의 엄격한 처벌도 그때와 같은 폭력난동을 예방하는데 작용할 걸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에 대한 최종심 결과는 빨라야 2024년 11월 대선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는 데서 그 기간 트럼프의 “미국은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등 선동은 이어지고 민주당 대 공화당의 대결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 기소는 대통령에게 면책특권이 주어져서 아니 된다는 미국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 기소는 한국의 ‘사법 정치화‘를 닮아가는 게 아니다. 프랑스처럼 대통령도 죄를 범하면 쇠고랑을 찬다는 걸 닮아가는 것이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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