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쟁점 법안 직회부 파상공세 돌입...與 ‘尹 거부권’ 배수진 맞불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 하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4일 재의요구권(거부권) 발동으로 다시 여의도로 돌려보내면서, 여야 강 대 강 대치가 심화하고 있다. 내년 총선까지 여야 극한 대치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169석 야당은 각종 쟁점 법안들을 꺼내들며 윤 대통령이 민생법안을 거부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내년 총선까지 당정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여당은 당정 공조를 통해 공동전선을 꾸리는 한편, 윤 대통령이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맞대응책을 마련해 총선 전 야당과의 명분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에 ‘이재명 사법리스크’ 등 사법 쟁점으로 점철됐던 여야 전선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입법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취임 후 1호 거부권 행사에 나서며 야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법안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로 반려된 양곡관리법을 반드시 재의결시킨다며 입법 강행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을 매개로 정부와 거대야당 간 입법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제14차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발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에 앞서 윤 대통령은 “정부의 농정(農政)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무관하게 초과 생산분을 막대한 혈세로 사들여야 한다는 강제 매수법”이라고 야당의 입법 시도에 빗장을 걸어 잠궜다.

이렇듯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법안에 대해선 거부권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민생현안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 수반되지 않거나, 무분별한 집단논리가 녹아있는 법안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응으로 일관한다는 입장이다.  

당정은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거대야당의 중우정치와 입법폭주를 막을 최후 방어선이라는 인식을 폭넓게 공유하며 민주당이 예고한 쟁점 법안 ‘본회의 직회부’ 공세에 공동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점입가경”이라며 “169석을 활용한 야당의 (입법) 폭거로부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할 수 있는 방법은 거부권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같은 당 초선 의원은 “(민주당이) 민생법안을 정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라며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거부권을 남발시켜 민심 역풍을 맞게 할 심산인데, 되려 민심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당정 소통과 공조를 강조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쌀값 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쌀값 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 쟁점 계류법안 직회부 십자포화 예고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에 민주당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다. 예견된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사천리로 다음 수순을 밟고 있다. 양곡관리법 재의결을 비롯해 여당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각종 계류 법안들을 잇따라 꺼내들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민생현안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고착화시키며 내년 총선 민심에서 우위를 다지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를 방증하듯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거부권이 행사되기 전날(3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우리가 준비한 원안 그대로 양곡관리법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복선을 놓은 바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거부권 행사 당일 “대통령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국정 운영이 거부권 행사로 드러났다”며 양곡관리법 재의결에 총력을 쏟겠다고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다만 여당이 115석을 보유한 만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재의결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거부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의결을 거칠 수 있지만, 국회법상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명이 찬성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민주당이 각종 계류안들을 직회부로 돌리며 파상공세를 편다고 해도 결국 대통령 거부권에 실질적 성과를 내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직회부 입법 시도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발동이 중첩될수록 ‘협치 거부’ 이미지가 부각된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에 따르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60일 이상 계류 중인 주요 쟁점 법안으로는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관계조정법 2·3조와 화물운수업법 등이 있다. 이들 법안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직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아울러 각 상임위 개별 의결로 이미 본회의에 직회부된 보건복지위원회 소관의 간호법‧의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과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의 방송법 등 7개 법안도 여야 갈등이 뚜렷한 지점이다.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제외한 17개 상임위 중 6개 상임위에서 민주당 주도로 직회부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의료‧간호법 등을 비롯해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을 한 데 묶은 ‘쌍특검’ 등에 대해서도 입법을 강행하기 위한 실무에 돌입했다. 각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안 직회부를 추진하는 TF(태스크 포스) 성격의 모임도 꾸려졌다. 또 국회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일부는 양곡관리법 연장선상에서 국내 쌀 산업 지위 격상을 골자로 한 특별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양곡관리법 재의결이 쉽지 않다고는 해도 원안과 동일한 법안을 재차 발의할 계획”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재의요구권에 기대 정당한 입법 절차를 회피하지 말고 협상테이블로 나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與 수적 열세에 ‘尹 거부권’ 배수의 진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한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적극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상임위 구성상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주도로 최소 6개 이상 법안이 직회부되며 사상 초유의 국회 입법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정책조정위와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거부권 행사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부심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엔 야당발 법안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대체 법안을 발의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국민의힘 영남권 재선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계류법안들을 대거 직회부한다면 물리적으론 대응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그렇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한데, 우리 여당의 역할은 (거부권 행사) 정당성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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