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대표에 집행유예…민주노총 "형사처벌 의미 있지만 처벌 약해"

장옥기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장옥기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에 대한 법원 첫 판결이 지난 6일 나왔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4건 중 1호 판결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이번 판결이 향후 있을 다른 중대재해 사건 재판에도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특히 대표이사가 아닌 회장까지 재판받게 된 삼표산업에 더욱 집중된다.

- 1호 판결 '징역 1년ㆍ집행유예 3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판사 김동원) 이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에 벌금 3000만 원을, 회사 대표에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안전관리자인 현장소장에도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사가 안전대 부착,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며 "이후 유족에게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위로금을 지불하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고양시의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하청노동자 추락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중대재해법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건설 현장은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인 경우에 적용되며 법정형은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이다.

- 솜방망이 처벌 vs 기업경영 부담

이번 판결을 두고 민주노총과 재계는 상반된 반응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원청기업의 대표이사에게 형사 처벌이 선고되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으나,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에 불과한 형량에 대해서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1년 이상의 실형으로 되어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2년 형을 구형한 검찰이나,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한 법원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40대 하청 노동자가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는 현장에서 일하다 16미터 아래 떨어져 머리와 몸통이 으깨져 죽어 나갔는데 원청 경영책임자는  또 다시 거리를 활보하게 됐다"며 "검찰은 집행유예가 예상되는 2년 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공분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망에서도 2년~5년을 양형기준으로 하는 현실에서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는 너무도 낮은 형량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법 시행이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첫 번째 1심 선고가 나오고 있는 현실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종이호랑이로 만들고 있다. 검찰은 신속하고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중앙일보에 보도에 따르면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집행유예라고는 하지만, 징역형의 일종인 만큼 기업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청 업체의 대표이사까지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가중처벌을 한 것인데, 기업인의 경영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선 ‘사업을 접을 고민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사업주와 원청에게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했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비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으로 처벌이 강화된 부분은 노동안전에 대한 사법적 진전이라 할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을 경영계가 엄중히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번 판결이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조치를 무겁게 인식하고, 노동현장에서 책임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장옥기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장옥기 전국건설노조 위원장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술렁이는 재계, 다른 재판 영향 미치나

한편 이번 판결을 계기로 '중대재해 1호 사건'인 삼표산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표산업은 대표이사가 아닌 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중대재해법으로 기소된 상태다. 지난달 검찰은 삼표그룹과 정도원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이에 중대재해법상 경영 책임자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법원의 판단에 경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고 기업의 대표가 아닌 그룹 회장에게 직접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를 표명한다”며 “회장이 그룹사 개별 기업의 안전 보건 업무를 직접 총괄하고 관리하는 것은 아니기에 개념 정의가 모호한 중대재해법 개정을 정부가 시급히 추진해달라”고 했다.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올해 초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오는 26일에는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한국제강 대표 B씨 등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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