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탐방을 이어가면서 느낀 점이 있다. 여행의 중심이 건물이 된다는 점이다. 여행 디자이너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패키지여행 설계할 때 70% 정도를 건축물 투어로 채운다고 한다. 특히 서양 지역의 설계는 매우 쉽단다. 역사 구역(Historical District)에 고건축물이 모여 있다. 그 주변의 현대적 건물이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그렇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르다. 문화재가 마치 점처럼 흩어져 있다. 급격한 도시화, 6·25전쟁, 그리고 일제의 문화재 파괴 때문에 문화의 장소성이 약화 된 때문이다.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문화재도 적은 편이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높은 문화 수준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어린이 대공원 정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70~80년생 소풍 단골 코스...추억의 장소를 찾다
- 을지문덕, 유관순, 방정환, 김동인, 조만식, 송진우 동상

이번 주 탐방지는 그런 아픔이 덜하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곳이다. 최근 동물원을 탈출해 세간의 화제가 된 얼룩말, ‘세로가 사는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이다. 서울에서 70~80년대 초등학교 다닌 사람이라면 어린이대공원에 관한 추억 한 소절은 다 갖고 있다. 하다못해 소풍이라도 다녀왔다. 당시 초등학교의 소풍 단골 코스였다.

필자에게는 더 특별한 곳이다. 추억의 놀이터다. 몇 달 동안 어린이회관에서 주관하던 어린이 과학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숙명여대 무용과 졸업발표회 때 초등학생으로 유일하게 초대된 딸이 섰던 무대도 여기다.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난다. 아니다. 아직도 어린이대공원은 꿈으로 남아있다. 가슴이 뛴다. 이렇게 설렌 본 일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마침 어린이대공원이 새 단장을 한다는 소식을 들린다. 더 늦기 전에 오길 잘했다.

엄덕문 건축가 설계 한옥 형태 정문과 팔각당

팔각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팔각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7호선 어린이대공역(세종대역)에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왔다. 멀리 전통 한옥 형태의 정문이 보인다. 엄덕문 건축가가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팔각당과 함께 설계한 것이다. 그는 정서에 맞는 기능을 중시하는 건축가다. 그가 설계했다는 게 의심스럽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어떻든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런 마음은 정문을 지나자 더욱 확실해졌다. 동심이 어린이를 반기고 있었다. 어린 왕자, 보아 구렁이, 그리고 사막여우로 꾸민 포토존이 있다.

정문을 지나 분수대 앞으로 왔다. 불과 몇 걸음을 옮겼지만 그사이에 봄이 더 깊어진 듯하다. 벚꽃잎이 진 자리에 나뭇잎이 팝콘처럼 피었다. 잎새에 초록빛 물이 제법 들었다. 사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4월의 명소중 한 곳이다. 명소가 된 이유는 개장 당시 재일교포 변주호가 기증한 벚나무 3500그루 때문이다. 분수대 옆에는 개장 때의 또 다른 흔적을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긴 비석이 있다. 거기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비석을 바치고 있는 돌다리 동판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다. “~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곳 서울컨트리 구락부골프장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공원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다.” 일명 박정희 어록이다. 없으면 나았을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석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석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소설 대지를 쓴 펄 S. 벅은 만약 당신이 오늘을 이해하고 싶다면 어제를 살펴보라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의 어제는 곡절이 많다. 197355일에 개장했다. 올 어린이날이면 48주년을 맞는다. ‘박정희 어록에 쓰인 대로 이곳은 골프장이었다. 국제표준인 18홀 코스(군자리 골프 코스)를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이었다. 볼모로 잡혀간 영친왕은 일본에서 골프를 배웠다. 그는 1927년 모후의 능이었던 이 땅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골프장을 만들라는 뜻도 전했다. 1929622일에 경성골프구락부가 문을 열었다. 그 뒤 이곳은 1927년 총독부 간부와 귀족, 부호, 외교관 그리고 친일파 고관의 사교장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영친왕 지시

그런데 궁금하다. 영친왕은 비록 나라가 망했더라도 황태자였다. 황태자가 선왕의 첫 부인(순명효황후, 생모-엄씨)의 능 터에 골프장을 지으라고 했을까. 정말 자발적으로 왕실의 재산을 기부했을까. 아무리 볼모로 잡혀 사는 신세일지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본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위안 삼는다.

어린이대공원에 아직도 골프장 흔적이 남아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마치 언덕 위에 서 있는 고색창연하고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 ‘꿈마루가 그것이다. 육중한 콘크리트판을 겹쳐 놓은 모양이다. 콘크리트 벽은 부끄러움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수직으로 깊게 파인 홈이 이어지고 있다. 이조차 없다면 짓다가 만 건물로 착각하기 안성맞춤이다. 거기다가 벽은 낙서투성이이다. 금도 가 있다. 그래서일까. 꿈마루은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로 통한다. 이유가 있다. 이 건물은 원래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뀐 뒤에는 어린이 교양관 겸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실(‘새싹의 집’)로 사용됐다. 2010년까지다.

꿈마루.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꿈마루.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철거 후 신축이 기정사실화되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다행히 근현대 건축물에 복원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근현대 건물이 문화자산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클럽하우스의 막힌 벽과 지붕은 철거됐다. 빛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대신 내부 시멘트벽 등은 옛것을 살렸다. 꿈마루에는 최초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 40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모습 안에 현대적 새집을 들여앉힌 방식으로 재생된 건축물이다.

순종 첫부인 순명효황후 민씨 능묘 유강원

군자리 골프장은 원래 순종 황제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순명효황후 민 씨가 안장된 능묘(유강원)였다. 어린이대공원이 소재지인 능동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민씨는 황태자비일 때 이 세상과 이별했다. ‘이 아니라 이 된 이유다. 순종이 죽은 뒤 1926년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유릉에 합장됐다. 그 뒤에 유강원은 버려진 땅이 됐다. 군자리 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뀐 뒤에도 유강원의 흔적은 남아있다. 꿈마루 맞은편에는 순명비 유강원 석물이 전시되어 있다. 순종과 순명효황후가 유릉에 합장하면서 남겨진 유강원 터의 석물 20여 기다.

유강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유강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어린이대공원에는 많은 동상, 조각상, 시비 등이 곳곳에 숨어있다. 동상은 어림잡아도 10개는 될 것 같다. 을지문덕, 유관순, 방정환, 김동인, 이승훈, 조만식, 송진우, 백마고지 삼용사, 벨테브레, 존 비 코올터 미국 장군 등 10개 이들 동상과 시비를 찾는 것도 어린이대공원을 둘러보는 쏠쏠한 재미다.

평일인데도 봄나들이 나온 상춘객들이 적지 않다. 돗자리 펴고 앉아서 나누는 대화는 무엇일까. 동물원와 식물원 그리고 놀이기구가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어린이대공원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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