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한국인이면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음직한 말이다. 사용 빈도로 보아 역사학자 토인비 정도 되는 분이 한 말 같지만, 놀랍게도 이 말을 누가 처음 했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언제부턴가 대중들 사이에서 떠돌기 시작한 말인 셈인데, 이제부터는 그 출처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2023
53, 민주당 의원 전용기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말도 유명인이 하면 그 사람 것이 되는 게 유명인의 특권 아니겠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저 말을 할 때마다 전용기 의원에 따르면, 역사를 잊은...”이라고 출처를 명기하자. 희한한 것은 저 말이 일본 관련 이슈에만 쓰인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들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다.

최다 침략국은 당연히 중국, 대충 헤아린 것만 20차례가 넘는다. 일본은 단 3차례에 불과한데, 그중 한 번이 35년에 걸친 한반도 침탈이라 이걸 한 번으로 치느냐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을 노리던 그 시절,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도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바 있고, 불과 70여년 전인 1951, 중국이 한국전에 끼어듦으로써 목전에 있던 통일의 기회를 앗아갔으니, 중국도 일본 못지않은 빌런임은 분명하다.

몽골도 빼놓을 수 없다. 1231년 시작된 몽골과의 전쟁은 40년 가까이 계속됐고, 몽골에게 빼앗긴 영토를 완전히 되찾기까지는 125년이 걸렸다. 한민족이긴 하지만 북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6.25로 인해 국군은 물론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지 않은가? 사정이 이렇다면 주변국에게 골고루 저 말을 써야 하건만, 저 좋은 말이 일본에게만 쓰이는 건 참으로 기이하다. 전용기도 이건 마찬가지였다. 저 말을 하고 나서 저와 민주당 청년위원회는 앞으로도 일본 정부의 주권 침탈의 야욕에 맞서 싸우고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용기가 갑자기 독도에 간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 땅이니 갈 수는 있겠지만, 시기와 퍼포먼스가 심히 수상쩍다. 먼저 시기를 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고, 이제 다음 주면 기시다 총리가 온다. 지난 정권 때 해체 상태였던 한미일 동맹이 구축되는 중차대한 시기, 여기서 전용기가 독도를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독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은 일본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일본 내 혐한파가 기시다더러 한국 가지 말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은 유감이다”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일본 외무성 후나코시라는 자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단다. 이게 기사로 나가자 우리나라 국민이 발끈한 건 당연한 수순,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우리나라 땅에 가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냐면서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윤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잖은가? 여기에 전용기를 칭찬하는 여론마저 조성되고 있으니, 나라에 손해가 되든 말든 그로선 해볼만한 일이었다.

이번엔 전용기가 벌인 퍼포먼스를 보자. 그는 이를 문제삼는 일본 측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왜 반발하는지 모르겠어요, 제주도에 가도 반발할까요?” 독도와 제주도가 뭐가 다르냐는 것,

하지만 전용기는 ‘Dokdo in Korea’란 푯말과 함께 태극기를 가져갔다. 그가 제주도에 갈 때 태극기를 가져가 흔든 적이 있을까? 이건 독도와 제주도가 다르다는 걸 전용기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다들 알다시피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는 곳, 이번에 전용기가 독도에 갈 때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던 게 바로 그 증거다. 내 손안에 있는 걸 옆 사람이 탐낸다면, 내가 가졌다는 걸 티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고, 역대 정권에서 독도 문제가 쟁점이 되는 걸 피해 왔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누군가가 난데없이 독도를 방문한다면 그 목적은 나라사랑이 아닌,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한다.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교과서에 수록해 파문이 났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갔던 것도 바로 그 이유인데, 당시 민주당이 냈던 비난 성명을 전용기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이번 독도방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스란히 남는다.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이용될 소지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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