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혹은 평등(equality)과 공정(equity)을 비교 설명하는 그림으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야구장을 구경하는 그림이다. 보편적 복지나 평등을 주장하는 좌파들은, 사람들의 키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디딤돌을 놓자는 자들로 비유된다. 반면 선택적 복지나 공정을 주장하는 우파들은, 각자의 키를 감안해 서로 높낮이가 다른 디딤돌을 놓자는 쪽으로 비교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내세우는 우파정권은 당연히 개인과 기업의 규모와 상황에 맞게 정책과 재정을 차별적으로 집행하는 정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헌법 제119조 제2항 역시 시장경제의 실패를 방지하거나 치유하기 위해,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우파정부로 교체되고 나서 갑()인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고, ()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정부가 새롭게 대기업의 진입장벽을 없애서가 아니라, 갑이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를 감지하고 을에 대한 배려와 상생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정부광고 시장을 한번 살펴보자.

지난 정부에서는 갑인 대기업들이, 을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공공광고 홍보영역 참여를 주저한 측면이 많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광고대행업계 1위 제일기획(삼성), 2위 이노션(현대)도 공공영역 입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홍기획(롯데)HSAD(LG)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대기업계열 광고사들의 정부광고 입찰참여 확대로 과열경쟁과 가격경쟁이 더욱 심해졌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결국 중소광고대행사가 입찰에 참여한다고 해도, 60% 초반의 낮은 투찰율이 아니면 수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운이 좋아 수주를 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된 기업운영도 어렵다는 중소광고대행사들의 호소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대홍기획은 100%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엠허브와 합병한 모비쟆미디어까지 공공 홍보영역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발주금액이 큰 용역은 대홍기획이름으로 참여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입찰 건에는 자회사를 참여시키는 쌍끌이식 입찰 참여로 중소기업간 경쟁시장까지 교란시키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지난 20223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실시한 광고회사 현황조사에 따르면, 광고대행시장 점유율은 이른바 4(제일기획, 이노션, HSAD, 대홍기획)’ 대기업계열 광고대행사가 전체물량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광고대행시장의 83%를 차지하는 대기업 광고대행사가 정부광고 대행시장까지 과점하면서 사실상 중소광고대행사들이 고사(枯死)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미 그동안에도 대기업의 계열광고대행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와 대기업간 경쟁과열로 인해 2013300여 개나 되던 중소광고대행사는 2022년기준 30여 개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광고 입찰에 대기업계열 광고대행사들의 참여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광고시장 과점을 너머 사실상 독점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정부광고 영역의 경우 다른 산업영역과 달리 중소광고 대행사라고 해도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동일한 광고대행 프로세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광고는 사기업처럼 판매촉진이나 시장 신규진입 등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대기업 광고대행사들이 참여할 이유도 명분도 없는 셈이다. 더구나 대기업 집단이 광고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중소광고대행사의 성장여력 확충을 위해서는 정부광고 시장이 성장사다리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나 국회가 법과 제도로 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미 소프트웨어 사업자의 경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일명 대기업) 소속 기업의 공공기업 입찰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정부광고 대행시장 역시 중소기업 참여 확대 특례를 인정하여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AOR(매체대행) 적용대상 80억 원 미만의 경우 중소기업만 참여하게 하는 방안 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에 그들은 우리를 땅에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씨앗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는 속담이 있다. 중소기업은 씨앗이다. 대기업이 씨앗마저 다 삼키면 시장이 황폐해진다. 지금의 과도한 독과점 시장구조를 과감하게 혁신하는 일이야말로, 공정을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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