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岸全文雄) 일본 총리는 5월7일 서울을 방문, 윤석열·기시다 정상회담에 이어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일본 총리로선 12년 만이다. 지난 3월16일 윤 대통령이 일본을 전격 방문한 후 52일 만의 답방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한·일관계가 최악상태로 치닫던 때를 상기하면 놀라운 진전이다. 두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일과 한·미·일 협력강화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공조방안을 더 구체화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두 정상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기업 간 공조강화를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키로 했다. 

특히 기시다 총리의 방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그가 과거사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 건가에 쏠렸다. 그가 3월 도쿄에서 윤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과거 식민통치 사죄와 관련,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걸로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기시다가 밝힌 “역대 내각의 (사죄) 입장”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5월 일본의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국왕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사죄했다. 같은 달 가이후 도시키 총리의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 1983년 8월 고도 다로 관방장관의 종군위안부 “사죄와 반성”,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이미치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 2005년 8월 고이즈미 신지로 총리의 “다시 한번 반성의 뜻을 표명”, 2010년 8월 간 나오토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 2015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고통 겪은” 위안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 등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5월7일 서울 공동기자 회견에서 과거사와 관련,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다짐했다. 또한 그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제삼자 변제’ 방안 제시가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라며 “많은 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저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서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반성과 사죄였다. 그가 지난 3월 “역대 내각의 입장”만 언급했던 것보다 더 구체적이며 “가슴 아픈” 반성이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의 강선우 대변인은 “기시다 총리의 반성과 사과가 없었고” 징용문제의 “강제성에 대한 인정 또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지난날 8차례에 걸친 “역대 내각”의 반성과 사죄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했다. 반성과 사죄였다. 강제징용에 대해선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서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강제징용 인정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 했을 때 그들에게 북한의 6.25 남침, 울진·삼척 양민학살, 천안함 폭침 등 과 관련, 사죄를 받아내라고 한 번도 촉구한 적 없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사과를 9차례나 거듭한 일본에 대해서만 사과하지 않았다고 몰아가는 건 문재인 전 정권처럼 반일로 선동하기 위한 생트집으로 볼 수밖에 없다. 

기시다 정부는 매번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죄와 반성을 반복했으므로 앞으론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걸로 사과를 가름키로 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를 상호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실용적인 걸로 믿은 듯싶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한·일 협력강화가 절실한 때임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윤석열과 기시다의 5월 서울 회동은 한일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사죄 먼저”와 “외교 복원” 과제 둘을 함께 극복한 걸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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