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향 강우방의 예술 혁명일지] 저자 강우방 / 출판사 불광출판사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예술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강요받던 오류와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신간이 출간됐다. 일향 강우방의 ‘예술혁명일지’다. 책 제목에서 묻어 나오는 향취 그대로 ‘삼무’의 삶을 살아온 미술 사학자가 들여주는 자전적 기록이다. 여기서 삼무란 저자가 삶 속에서 여태껏 자연스레 지켜온 생활 방식이다. 저자는 첫 번째, 학위에 욕심이 없었다. 학부 평점은 C학점이었고 석사학위 과정은 밞지 않았으나 미국 하버드대학 로젠필드 교수와의 인연으로 하버드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돈 욕심이 없었다. 평생 돈에 눈이 멀어 수상쩍거나 남을 속이는 방식으로 물질을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 감투 욕심이 없었다. 이런 성격 탓에 문화재청이나 문화부가 저지른 일에 대해 질타하는 반골 세력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삼무의 삶으로 몸과 정신을 온전히 지켜내며 미술사학에 대한 연구만을 호젓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넓고 심오하다. 그 세계를 알아차리고 보게 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롭고 놀라운 안목이 열린다. 바로 개안하는 감격을 누릴 수 있다.”

세계 미술사에 유례없는 발자취를 남기며 미술사를 사상사로 끌어올린 저자의 거침없는 예술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교과과정 속에서 박제된 예술품을 잊으라’고 권하는 저자의 자전적 미학 에세이집을 접하고 나면 어느샌가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은 오류나 강박으로 예술을 강요당하는 방식에서 미술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가 세계미술사에 남긴 유례없는 발자취와 동행하게 된다. 

전반적인 책의 구성은 저자의 '어린 시절과 독각의 흐느낌'을 전하는 프롤로그에서 수년간 인연의 소중함을 전하는 2장 '껍질을 깨다'를 거쳐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문자 너머에서 찾은 ‘비밀코드’를 통해 불교 미술 연구와 불교 철학을 품은 불교미술 기획전을 통한 50년의 연구 성과의 발자취를 더듬어 간다.

심층적인 연구를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불상 광배의 비밀을 밝혀주고 학문의 대전환을 이룬 강연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회고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세계미술사 정립을 위한 서장을 여는 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문양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던 시간과 그리스 첫 답사의 시간을 공개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자신의 학문의 완성을 다짐했던 시간을 회고하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만난 고귀한 인연의 향취를 들려주기도 한다.

책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에서는 ‘영기화생론’과 ‘채색분석법’을 다루면서 자연의 꽃 밀착관찰 12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했으며 인류 조형언어학 개론 강의를 들려주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문자 너머에서 찾은 비밀코드 부분에서 “무엇보다 불교미술 연구자들이 불교 철학이나 불교 신앙을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불교 미술은 불교 철학이나 불교신앙의 산물이다. 단지 불경을 읽어서 도상과 관계있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불교를 철학해야 한다’ 불교철학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해야 한다”라고 독자에게 당부했다. 

덧붙여 저자는 우리가 알아보는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넓은 알아보지 않는 세계를 알아차리고 보게 되면 우리는 이제야 눈을 뜨는, 즉 개안하는 감격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이 보주이고 보주에서 생겨나는 영기문이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무의식의 세계는 보기 어려운 세계가 아니고 낯선 세계여서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리를 귀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 보아야 한다. 부처님은 문자언어로 설법하셨으나 조형언어로도 설법했음을 아무도 몰랐으니 불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석가여래는 설법하지 못했어도 승려 당인은 불상이나 불화 등 일체의 문양으로 석가여래가 미처 말하지 못한 또 다른 진리를 표현학 있음을 알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1970년대부터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미술사의 굵직한 이슈를 들춰냈다. 미술사 학자의 개인사가 미술사라는 큰 파동 속에서 세운 이정표를 따라가면서 한국예술이 불교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되짚어 보고, 이면의 감춰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했다. 책의 내용 중에는 경주 황룡사 터의 거대한 심초석을 들어 올리는 현장, 일본의 국보 ‘코지마 만다라’가 한 개인에게 자태를 공개한 사건을 비롯해 접하기 어려웠던 ‘석굴암 부처’ 문화유산 사진이 게재돼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15TB에 달하는 예술품 사진 중 엄선한 사진과 이를 일일이 채색해 분석한 도판들은 하나의 작품처럼 페이지를 장식했다.

우리나라 미술사학계를 대표하는 원로이자 현역으로 활동해 온 저자 일향 강우방은 1941년 만주 안동에서 태어나 1967년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0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초빙대 후학을 양성해 왔다. 퇴임 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개원해 현재까지 2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운영 중이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로는 ‘원융과 조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법공과 장엄’,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민화 미의 순례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등이 있다. 

이 책과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는 저자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 세이노의 ‘세이노의 가르침’ 등이 있다. 

[편집=김정아 기자]
[편집=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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