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필요한 지지율이 40% 이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25% 미만이면 국정 운영 동력을 거의 상실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돼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19348월 바이마르 공화국 제2대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사망했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나치스) 히틀러는 총리와 총통 직책을 걸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유권자의 95.7%가 투표에 참여해 88.1%가 찬성표를 던졌다. 히틀러는 이로써 총통자리에 올랐다. 그 뒤 독일의 재앙적 파멸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무자비한 갱단 몰살의 대가로 한때 지지율 91%를 달성했다. 명확한 증거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허락했고, 체포된 지 72시간 안에 재판을 받게 했다. 2022년 체포된 이들은 65,000명에 달했다. 그래서 과연 엘살바도르 국민의 치안과 살림살이가 나아졌을까?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법 전격 실시 등으로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은 최고 83%까지 치솟았었다. 그러나 결국 국가부도를 초래했고, 국민은 참혹한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에 천문학적 현금을 퍼주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해 최고 71%의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최저 24%를 기록했다. 진보 진영이 지금까지도 추앙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최고지지율 60%, 최저 12%를 기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고지지율 52%, 최저 21%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지지율 60%, 최저 5%로 마감했다. 탄핵 된 정권 이후 사실상 무임승차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7~80%를 기록하다가 40%대로 마감했다. 그런데 도리어 국가부채는 문재인 정부 때 가장 많이 폭증했고, 적폐 청산한다며 정치는 파괴되고, 편 가르기로 국민은 분열됐다. 높은 지지율이 도리어 해악으로 작용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을 높이는 방법도 단순하다. 국가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인 노동, 연금, 교육개혁은 미루거나 포기하고, ‘퍼주기위주로 정부를 운용하면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나라는 중남미 꼴이 된다. 포퓰리즘 정권이 장악한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등등의 꼴을 보면 족히 짐작할 수 있는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부채 1천 조 이상의 시대를 열었다. 재정적자를 정상화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작 이렇게 대책 없이 광을 팔며 빚을 늘린 장본인은 한가롭게 책이나 팔며 놀고 있다. 게다가 압도적 다수당인 제1야당은 여전히 국민을 갈라 대립하게 만드는 포퓰리즘적 법안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들을 포장하던 도덕의 위장막도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았다.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포퓰리즘에 경도된 지난 정부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정치 지형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지난 정부 탓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저질러 놓은 잘못된 점들을 깨부수고 청소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당분간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하려면 고약한 냄새는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동안 치외법권 지대이던 노조의 횡포에 공권력이 손을 대기 시작함으로써, 민주노총을 비롯해 한국노총까지 정권에 대한 적대적 세력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 그렇다고 노동개혁을 방치할 수도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등을 빙자하여 경쟁적으로 마구 현금을 뿌렸다. 빚이 1천조를 넘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동안 공짜 돈맛을 본 그만큼의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혈세에 빨대를 꽂고 연명하거나 치부(致富)하던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개인 등은 또 어떤가. 그동안 북한을 맹종하며 반일팔이로 재미를 보던 자들의 밥벌이 영역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다수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특정 진영의 돌격대 노릇으로 호가호위 해온 그들의,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이 거세다. 그렇다고 한일관계를 방치할 수도, 북한에 대한 대책 없는 평화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

문재인 정권이 폐기하려던 원전산업 재육성, 4대강 보 철거의 사실상 무효화, 김정은 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의 상실감 등등 오만가지 사안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개입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꾸라고 한다든지,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은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지율이 과연 무슨 소용인가. 전임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을 방치함으로써 높은 지지율을 훈장처럼 달았지만, 그게 북한 장성들 군복에 줄줄이 달린 병뚜껑 같은 훈장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올바른 일은 대부분 지지율과 연동되지 않는다. 현금이나 풀어서 연명하는 정권이 아무리 지지율이 높은들 그게 나라와 국민에게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지지율의 허상을 똑바로 인식하지 않으면, 나라가 포퓰리즘이라는 세이렌(Siren)의 유혹에 정신을 잃게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사심(私心)이 개입되는 들쭉날쭉한 여론조사 결과에 휘둘리지 말고, 가야 할 길로만 묵묵히 전진하는 것만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의 진정한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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