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정치권에 등장해 주류를 이뤘던 586세대(50,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4대정권을 걸쳐 권력을 누리려 하고 있다. 이재명 당 대표가 이들을 주요 당직에 기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바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됐던 ‘586 용퇴론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 586그룹이 여의도에 등장한 건 DJ 때 치러진 2000년 총선을 통해서였다. 젊은피 수혈이 명분이었다. 물론 그보다 4년 전인 199615대 총선에서 김민석 의원이 31세 나이에 원내 진출에 성공했지만, 일반적으로 이를 586의 등장 시기로 보지 않는다.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 복권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86세대들이 그해 말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에 대거 등용됐기 때문이다. 임종석(한양대 총학생회장), 송영길(연세대 총학생회장), 이인영(고려대 총학생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기점으로 청와대나 국회에 본격적으로 입성했다. 진보정당의 주류 세력으로 DJ-노무현-문재인 정권까지 3대에 걸쳐 권력을 20년동안 누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첫 내각 참모진에는 운동권 경력이 있는 30~40대 젊은층이 다수 포진됐는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진보정권의 핵심적인 동반자 역할을 해온 여의도의 정치인들도 이때 대거 입성했다. 노 전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치러진 200417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에서 초선 의원은 108명에 달했는데 그중 31명이 386세대였다. 우상호 의원, 이 후보 측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조정식 의원, 특임본부장을 맡은 김태년 의원 등이 이때 합류했다.여의도 정치의 주류로 세력화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선거(국회의원 선거 5, 인천시장 선거 1)에 나와 모두 당선한 송영길 전 대표는 국회의원 5(인천시장 미포함)에 이른다. 정치 경력으로 586은 이미 중진그룹에서도 최고참급 세대가 된 셈이다. 정세균(6), 이해찬(7)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당내 중진은 대부분 86세대들이다.

그런데 우상호 의원이 2021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총선 불출마 선언해 586세대들의 용퇴가 가시화되는 줄 알았다. 이후 같은당 이상민 의원이 용퇴론을 꺼내면서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서 멈췄다. 하지만 송영길 전 대표는 돈봉투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빠지면서 출마할 수 없게 됐다. 반면 문정권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이인영 의원은 출마 의지가 강하다는 후문이다.

그런 586 운동권들이 이제 간판만 바꿔 민주당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대표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내년 공천을 다시 노리고 있다. 원조 친명이자 중앙대 86학번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진 의원은 정진상 후임으로 정무실장에 내정됐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의장을 지낸 송갑석 의원은 지명직 최고에 올랐다. 586으로 처음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김민석 의원은 정책위의장이 됐다. 당내 서열 4위다. 이밖에 수석 대변인을 맡은 한병도 의원은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간부출신이다.

임종석-우상호-송영길이 빠진 자리를 김민석-송갑석-한병도가 바통을 이어받아 4대에 걸쳐 권력을 탐하는 모습이다. 특히나 이재명 대표는 이들 운동권 세대와는 결이 달라 당초 공천 후순위에 머물렀던 인사들이다. 그립형 리더십을 소유한 이 대표에게 이들은 무릎꿇고 충성맹세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이런 권력 지상주의는 동년배 운동권 세대들에게 결코 아름답게 보이질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장강의 앞물은 뒷물에 쓸려갈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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