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내년 422대 총선을 둘러싼 미묘한 파워게임이 한창이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친명계 비례대표 의원들 상당수가 공세적으로 지역구 사냥에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선택한 곳이 비명계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라는 점이다. 이는 그동안 여야의 정치관행과는 180도 배치되는 일이다. 과거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이 재선에 나설 경우 상대당 현역 의원이 버티는 험지 출마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민주당 강성 친명계 의원들이 이른바 이재명 대표의 의중, 이른바 이심(李心)’을 앞세워 지역구 점령에 나서면서 내부 파열음은 점차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친명 비례대표 의원과 비명 지역구 의원 사이에서 크고작은 신경전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 강성 팬덤을 상징하는 개딸(개혁의딸)’들이 친명·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 쟁탈전에 가세하면서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다. 해법없이 꼬여가는 민주당의 지역구 쟁탈전과 공천 주도권 다툼을 짚어봤다.

이재명 대표와 양이원영 의원. 뉴시스
이재명 대표와 양이원영 의원. 뉴시스

김의겸·양이원영·김병주, 친명 비례의 지역구 사냥에 잡음 만발
이심(李心) 논란에 개딸 비토까지 가세비명계 지역구 사수 위태

여의도정가에서는 친명·비명간 지역구 쟁탈전이 향후 공천학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도 되풀이됐던 여야 정당의 주류·비주류간의 파워게임이라는 설명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도권 다툼을 상징했던 친이·친박의 대혈투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200818대 총선과 201219대 총선에서 각각 친박학살과 친이학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공천혈투를 벌였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201620대 총선을 앞두고 계파갈등을 넘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아예 분당을 선택했다. 민주당 공천갈등은 내년 4월 총선국면으로 본격 진입할수록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만일 주류인 친명계가 대거 승리할 경우 비명계 공천학살이라는 주홍글씨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21대 총선 180석 대승 역효과비례대표, 재선 도전

비례대표 국회의원 제도는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받기 힘든 소수자의 원내 입성을 위한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총 300명 중 253명은 지역구 의원, 47명은 비례대표 의원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등 거대 양당의 경우 비례대표 상위 15번 이내면 당선 안정권이다. 문제는 두 번 연속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서 재선 의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지역구 도전이 필수적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도전은 난제다. 상당수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택한다. 다만 뛰어난 의정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구를 선택, 재선 도전에 나서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보통 같은당 소속 현역 의원이 없는 지역구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마저 여의치 않다면 당선이 어려운 험지 출마를 선택한다. 다만 생존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통계 역시 이를 증명한다. 과거 18대 총선에서 20대 총선까지 당선된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 49명 중 지역구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13명에 불과했다. 대략 4명 중 1명꼴로 25% 수준이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의 공천갈등은 역설적으로 21대 총선의 나비효과다. 지역구와 비례를 합쳐서 180석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은 셈범이 매우 복잡하다. 국민의힘 강세지역인 영남지역과 정치적 텃밭인 호남지역을 제외하면 출마 예정지는 대부분 수도권이다. 특히 전체 지역구 의석 절반에 해당하는 수도권 현역 의원은 대부분 민주당이다. 서울 49석 중 41, 인천 13석 중 11, 경기 59석 중 51석이다. 서울을 예로 들면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41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현역 의원이다. 인천과 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대표적 험지인 영남 출마를 고려해볼 수 있지만 출마가 곧 낙선일 정도로 위험하다. 반대로 민주당의 강세지역이자 정치적 텃밭인 호남지역의 경우 지역구 터주대감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뛰어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지역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통과는 더욱 어렵다. 게다가 지역구에 출마하는 비례대표는 단수공천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내년 총선 공천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민주당 고위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워낙 대승을 거둔 탓에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과 경쟁력을 갖춘 원외인사들이 수도권에서 빈 땅을 찾기는 너무 어렵다어쩔 수 없이 민주당 현역 의원의 텃밭을 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의겸·양이원영·김병주·현근택 친명 4인방 선봉에

김의겸 의원. 뉴시스
김의겸 의원. 뉴시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중 지역구 도전에 나선 이는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김의겸 의원, 시민단체 출신의 환경운동가 출신의 양이원영 의원, 4성장군 출신의 김병주 의원이 대표적이다. 묘하게도 이들은 대체로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친명계 의원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비명계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뚜렷한 지역연고 없이 당선 가능성만을 바라본 지역구 사냥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실상 친명 비례대표 의원들과 비명계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 불꽃튀는 경쟁의 막이 오른 셈이다. 22대 총선과 관련해 양보할 수 없는 공천갈등의 신호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역구를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최근 해당 지역구에 사무실을 내고 얼굴 알리기에 분주하다. 공천 경쟁에서 경선이 이뤄질 경우를 대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대변인과 당 대변인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김의겸 의원은 전북 군산 출마를 노리고 있다. 현역 의원은 비명계인 신영대 의원이다. 김 의원은 바쁜 의정활동 속에서 틈만 나면 군산을 다녀와 당 안팎의 화제를 모았다. 친명 강경파 초선모임인 처럼회 소속의 양이원영 의원은 경기도 광명을 노리고 있다. 현역 의원은 광명시장 출신의 양기대 의원이다. 양기대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측근 인사다. 양이 의원은 이재명 대표 재신임받아야 한다고요? 오히려 본인이 당원들에게 재신임받아야 하는 상황 아닌가요라며 최근 페이스북에 양기대 의원을 저격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윤석열정부를 매섭게 비판해온 김병주 의원은 경기도 남양주을을 노리고 있다. 현역 의원인 김한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계파색이 엷은 편이다. 김병주 의원은 지역구 선정과 관련,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행군했고 지금도 바로 옆 동네라며 남양주을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이 때문에 크고작은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친명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사냥에 대한 반발 여론이다. 민주당 경기 남양주을 지역위원회 소속 시·도의원들은 김병주 의원의 남양주을 출마에 반발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21대 비례 국회의원 3년간 남양주와 연관 있는 활동을 단 한 차례도 떠올릴 수 없는 생소한 인물이라며 명분 없는 출마 선언을 재고할 것을 엄중히 권고한다고 반대했다. 군 출신 경력을 살려서 경기 북부나 강원도 등 열세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병주 의원만이 아니다. 양이 의원은 울산 출신으로 환경전문가였던 만큼 울산을 비롯한 영남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의겸 의원의 경우 전북 군산 출신으로 지역 연고가 있지만 처럼회 소속 친명 강경파인데다가 현역인 신영대 의원이 비명계라는 점에서 양측의 지역구 쟁탈전을 둘러싼 갈등을 전국적인 관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역 의원만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원외 인사들도 비명계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를 노리고 있다.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진 윤영찬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 중원에 도전장을 냈다.

총선 국면으로 갈수록 친명계 비례대표나 원외 인사들의 비명 지역구 사냥은 보다 가시화될 수 있다. 실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을 비판해온 비명계 의원들을 향한 개딸들의 성토는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공천논란이 친명 vs 비명 의원간 다툼이 아니라 강성 팬덤과 비명계 의원들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용진(서울 강북을), 설훈(경기 부천을), 윤영찬(경기 성남중원),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이원욱(경기도 화성), 이상민(대전 유성을) 의원은 개딸의 집중 타깃이다.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을 뜻하는 사실상 배신자와 같은, 이른바 수박으로 불릴 정도다. 내년 22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만일 경선이 진행된다면 50%에 달하는 권리당원 투표의 중대 변수다. 20대 대선과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타난 당원 표심은 친명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딸과 설전을 이어왔던 이원욱 의원은 최근 수박놈들은 이번에 완전 박멸시켜야 한다는 비난 문자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재명 대표에게 강성 팬덤과의 단절을 촉구하기도 했다.

날로 커지는 공천파열음최악으로 치닫나?

김병주 의원. 뉴시스
김병주 의원. 뉴시스

노심초사한 비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친명계 비례대표 의원들이 공세적으로 지역구 사냥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이 없는 데다가 기존 정치적 상도의에도 어긋난다는 게 요지다. 특히 비명계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가 왜 교통정리 없이 내부총질 상황을 만드느냐며 당 지도부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재명 대표 역시 지역에서 내 이름을 팔고 다니지 말라며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이심(李心)을 앞세운 지역구 깃발 꽂기를 좌시하지 않겠는 것이다. 다만 이 대표의 공개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지역구에서는 공천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비명계 현역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내년 총선에서 친명계의 다수 지위 확보를 위해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억측마저 내놓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내년 총선이 불과 1년도 남지 않는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선정에 대한 교통정리에 나서야 하는데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거액의 코인 투자보유 의혹으로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둘러싼 MZ세대 이탈 등 메가톤급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도부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현안 대응에만 좌충우돌하면서 총선 승리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친명계 비례대표와 비명계 지역구 현역 의원의 갈등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민주당 분열을 둘러싼 파열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역대 총선에서 되풀이됐던 공천학살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낙천자의 거센 반발이 불거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낙천 의원들의 무소속 출마가 이어지면서 5% 안팎의 박빙으로 당락이 엇갈리는 수도권 선거에서 국민의힘에 어부지리 승리를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비례대표 의원들은 선거없이 국회의원 임기 4년라는 특혜를 누렸기 때문에 보통 험지 출마나 상대당 지역구 탈환을 위해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하는 게 정치권의 관행라면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 탈환보다는 오히려 당선이 손쉬운 텃밭 도전에 나설 경우 제살깎아먹기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역구 사냥에 나선 친명계 의원들과 결사적인 방어에 나선 비명계 의원들의 전투가 거칠어질수록 민주당의 공천 파열음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면서 총선 승리의 제1 원칙이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 지도부의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와 장기 전략 부재는 엄청한 역풍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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