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지도부 구성 두고 장혜영·류호정 갈등 표출

(왼쪽부터)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왼쪽부터) 강은미 정의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21대 국회의 원내 정당 중 가장 맏형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2013년부터 지금의 당명을 사용했으니 곧 10주년을 맞는다. 정의당은 10년 동안 당을 둘러싼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언제나 생존했다. 이는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의 수요를 방증한다. 정의당은 기득권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최근 진보정당 터줏대감 정의당의 당직 인선은 조금 다르다. 보수적이다. 

보수적 당직 개편 

정의당의 원내대표 선출 방식은 다른 정당들과는 조금 다르다. 거대 양당이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것과 달리 정의당은 소속 의원들이 차례대로 원내대표직을 수행한다. 21대 국회 들어 정의당의 원내대표는 배진교·강은미·배진교·이은주 의원 순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당의 일선에서 물러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제외하면 장혜영·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남는다. 이 중 류 의원은 장 의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이므로 장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될 차례다. 

하지만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급작스러운 출마 의사를 밝히며,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 이렇다 보니 정의당은 신임 원내대표 선출이 이뤄질 예정이었던 지난 5월 2일 의원총회를 연기했다. 그 사이 장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밝혔으며, 이에 따라 지난 5월 9일 의총에서 배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정의당은 이 과정에서 세부적인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장 의원과 류 의원이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 불만을 표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여파는 원내지도부 구성으로 이어진다. 

정의당은 배 원내대표의 선출 후 2주 만인 지난 5월 23일 당직 인선을 마무리한다. 이날 배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신임 원내대변인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 신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임명됐다고 발표했다. 

근래 정의당의 당직 개편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차례대로 원내대표를 맡는다는 관행을 뒤로 하고 배 원내대표에게 3번이나 원내 사령탑 자리를 맡겼다. 또 직전 원내대표가 원내수석부대표의 임무를 수행한다. 

노선·세대·세계관 충돌 

배 원내대표가 선출된 당일 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저는 오늘 정의당 의원단이 '비겁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원내대표 선출 다섯 번 중 세 번이 오늘과 같았다. 당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이라는 선택이 두렵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못미더워 현실에 안주하는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그 뒤 류 의원은 원내대변인 겸 원내수석부대표직을 내려놓았다. 

현재 외부에 표출된 정의당 내부의 갈등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당의 혁신 노선과 30대 의원들에 대한 불신이다. 현재 정의당은 당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재창당 전국 대장정'을 진행 중이다.

이 대표의 혁신은 정의당의 틀 안에서 역량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반면 장 의원과 류 의원은 지난 4월 15일 정치 유니온 '세 번째 권력'을 출범시키며 새로운 정당을 창당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의당의 혁신을 두고 갈리는 방법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보 정치를 대표하는 정의당의 의제가 늙어간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정의당은 노동자가 중심이 된 정당이다.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세 번째 권력 소속의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은 과거부터 당의 내부에서 운동권 세계관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했다.

조 부의장은 2015년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때도 2세대 진보 정치를 표방했다. 아울러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때는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6411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6411 버스는 노 전 의원이 우리 사회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청소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한 말이다. 당시 조 부의장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것을 넘어 경제 권력의 전장에서 싸워야 한다고 강변했다. 

당의 명운이 걸린 쇄신, 성공할까? 

조 부의장은 한 번도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숱한 이유가 있겠으나, 정의당의 기존 노선이 견고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반대로 정의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파격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장 의원과 류 의원을 비례대표 1번과 2번에 배치했다. 소수정당으로서 비례대표 후보 선택이 중요한 정의당의 입장에서는 큰 모험이었다. 

이를 두고 지난 5월 9일 정의당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정의당이 두 의원을 선택한 것을 두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는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라며 "두 의원은 정의당의 기존 당원들과는 살아온 세대가 다르다.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왔다는 말이 맞겠다"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원외 인사인 조 부의장의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예 세계관이 다른 젊은 세대의 두 의원을 원내로 입성시켰다. 그에 따른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앞서 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배 원내대표 선출의 소회를 밝히며 "당내 최대 정파 소속의 배 원내대표 체제는 성패를 평가받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번 결정에 동의한 의원 누구도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의원이 말한 성패는 21대 국회에서 장 의원과 류 의원이 보여준 정체성 정치에 대한 평가로 분석된다. 지난해 8월경 정의당은 당의 노선을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현직 비례대표 5명의 사퇴 권고 여부를 두고 당원 총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페미니즘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장 의원과 류 의원에 대한 비토가 포함된 것이란 해석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배 원내대표의 선출 당시 본지가 취재한 복수의 정의당 관계자 중 일부는 두 의원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반면 과연 당에서 두 의원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는지에 대한 반박을 제시한 경우도 존재했다. 

확실한 것은 정의당이 두 의원을 둘러싼 갈등 수습에 원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정의당은 장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할 경우 다른 의원 전원이 원내수석부대표를 맡는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한다는 제안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화된 제안은 아니지만, 제안 자체만으로 부적절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장 의원에 대한 불신임과 동시에 당시 원내수석부대표직을 맡고 있던 류 의원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아울러 원내에서 정의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다른 정당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제안이다. 

정의당은 현재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명운이 걸린 쇄신을 추진하는 한편, 최초 발의 후 20년 만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문턱을 넘은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앞서 장 의원과 류 의원은 어떤 당직도 맡지 않기로 한 만큼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터진 갈등은 향후 노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정의당 한 관계자는 지난 5월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 의원이 발의한 공직자 윤리법은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코인 논란으로 인해 당이 정한 당론에 입각한 법안이다. 당의 직책을 맡지 않는 것은 맞지만. 두 의원은 앞으로도 당과 함께 의정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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