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뒷북 보안점검‧공직 세습’, 부정선거 논란으로 확산되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부정선거와의 전쟁선포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1.11. [뉴시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부정선거와의 전쟁선포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1.11.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헌법 독립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다. 독립성이라는 헌법상 권력의 이면에 공직 세습이라는 카르텔형 비리가 판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국민적 공분이 거세다. 여기에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이 선관위에 대한 북한발 해킹 시도를 우려하며 보안컨설팅을 제의했으나 선관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나 국가 선거 담당기관의 매너리즘과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처럼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들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21대 총선 이후 수년간 ‘4.15 부정선거 의혹’을 추적해 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나홀로 투쟁’ 궤적이 재조명된다. 선관위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된 상황에서, 황 전 총리가 집요하게 추궁해 왔던 부정선거 의혹의 조각 실체라도 드러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

헌법 독립기관인 선관위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를 방불케하는 자녀특혜 채용에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북한의 해킹 시도를 사실상 방기했다고도 볼 수 있는 보안의식 결여까지. 명색이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등 국운이 걸린 국민투표를 관리하는 헌법기관의 보안망과 조직기강에 싱크홀이 뚫려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정가와 관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외부 감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란 장막 아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깊어진 데 따른 부작용으로 보고 있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송봉섭 선관위 사무차장이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사퇴를 발표한 가운데 26일 오전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안으로 직원이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송봉섭 선관위 사무차장이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사퇴를 발표한 가운데 26일 오전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안으로 직원이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줄의혹에 발뺌하기 바빴던 선관위의 어두운 실체

지난 5월 25일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연루된 선관위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결국 공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선관위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고 “자녀 특혜의혹 대상이 되어 온 박 사무총장과 송 사무차장은 사무처 수장으로서 그 동안 제기돼 온 국민적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현재 진행 중인 특별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현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앞서 논란이 확산하는 와중에도 시종일관 여당의 수사 요구에 “문제 없다”며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던 선관위는 결국 사건이 규명되자 의혹 당사자들을 퇴출시키고 허리를 숙이는 등 망신살을 샀다.

현재까지 드러난 선관위의 자녀특혜 채용 비리는 총 6건이다. 박 사무총장의 자녀는 광주 남구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다 경력직으로 지난해 1월 선관위에 들어갔다. 당시 최종 인사 결정권자는 다름아닌 박 사무총장이었다. 송 사무차장의 자녀는 충남 보령시에서 8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2018년 선관위 경력직 공모를 거쳐 8급 직원으로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의 자녀는 강화군청 공무원에서 인천 선관위로 이직한 뒤로도 쾌속 승진에 해외 출장 혜택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 선관위 신우용 상임위원도 자녀를 사실상 경력직 특채로 입사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4건의 해당 특혜채용 부정사례에서 ‘친족 채용 시 보고’ 규정조차 무시된 것은 선관위의 해이해진 공직기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선관위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선관위 보안망이 해킹에 뚫리면 투개표 조작, 시스템 마비 등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국정원과 중앙정부의 보안점검 요청을 거부한 선관위의 반응에 숱한 물음표가 달린다.

실제로 선관위에 따르면 선관위에 대한 해킹 시도 횟수는 ▲2020년 2만5187건 ▲2021년 3만1887건 ▲2022년 3만9896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이 중국 등을 경유한 북한의 소행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국정원은 북한의 대남(공공분야) 사이버 공격 시도가 일평균 162만 건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인 명부 유출, 투개표 조작, 시스템 마비 등 치명적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며 선관위의 안보의식 결여를 강력 비판했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최근 드러난 선관위 행태들을 매개로 북한의 ‘선거인 명부 조작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관위 저격수’로도 불리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그 전면에 있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4·15부정선거 증거공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9.27. [뉴시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4·15부정선거 증거공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9.27. [뉴시스]

黃‧閔 고독한 투쟁 4년, ‘4.15 부정선거 의혹’ 새 국면 맞나     

헌법 독립기관인 선관위의 ‘공정’ 가치가 무너지면서, 지난 2020년 총선 이후 줄곧 ‘4.15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 온 황 전 총리와 대(對)선관위 투쟁전선의 또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의 주장이 재조명되는 모양새다. 4.15 부정선거는 과거 1960년 3월 15일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에 의해 초유의 부정선거 행위가 이뤄진 정·부통령선거를 일컫는 ‘3.15 부정선거’에 빗댄 표현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4.15 부정선거 의혹은 ▲사전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 득표율이 본투표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점 ▲고령층 참여율이 높은 사전투표에서 보수정당이 패했다는 점 ▲관외 사전투표와 관내 사전투표 득표율이 대동소이하다는 점 ▲투표지분류기를 이용한 전산조작, 실물표 바꿔치기 정황 등이 드러난 만큼 개표조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 골자를 이룬다. 

다만 해당 의혹은 당초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미래통합당의 참패로 끝났을 당시 우파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제기, 확산된 음모론 정도로 치부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전면 계승한 황 전 총리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민 전 의원의 주장도 세간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민 전 의원의 경우 지난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줄곧 ‘4.15 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를 이끌며 황 전 총리와 함께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지금도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민 대표와 황교안 전 총리가 지난 4.15총선이 부정선거로 치뤄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며 앞서 선관위가 두 사람을 상대로 낸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달 황 전 총리와 민 전 의원에 대해 4.15총선 부정투표 주장과 관련 공무선거법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로 고소했지만 이를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지난해 대법원의 최종 기각 판결 이후 사법부가 부정선거 주장 측 손을 들어준 첫 사례라는 점에서 기류가 바뀌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중앙선관위의 부정사례가 낱낱이 드러난 상황에서 당정과 수사당국이 국가 독립기관의 기강확립 차원에서 4.15 부정선거 의혹까지 면밀히 들여다 볼 개연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선관위의 자녀 취업특혜, 보안 문제가 4.15 부정선거로 충분히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힘) 행안위에서도 선관위 부정행위의 수위가 이 정도라면 부정선거 가능성까지 총체적으로 점검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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