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호남 부침’에 보수정당 ‘동서통합’ 숙원 물꼬 트이나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우)와 윤상옥 원내대표가 광주를 찾아 현장 최고위에서 발언 중이다. [뉴시스]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우)와 윤상옥 원내대표가 광주를 찾아 현장 최고위에서 발언 중이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당인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부침을 틈 타 서진(西進) 행보에 당력을 쏟고 있다. 민주당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 등 겹악재에 노출되면서, 고유 텃밭인 호남마저 지지를 보류하는 등 총선 적신호가 들어왔다. 이에 여당은 틈새전략의 일환으로 민주정당의 본산인 호남을 향한 구애를 지속하고 있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반대’ 발언으로 흉흉해진 호남 민심을 수습하고, 최고위 논란으로 흐트러진 내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호남 총 28석 중 27석을 민주당에게 내어준 처참한 성적표를 내년 선거에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도 읽힌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당에서는 원내‧외 호남계 인사들이 재조명되는 모양새다.

“약무호남 시무(若無湖南 是無) 국민의힘이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호남 시민과 함께 하겠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달 18일 오전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고 ‘호남이 없으면 국민의힘도 없다’라는 취지로 한 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18 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일을 맞아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 대부분이 광주를 찾는 등 ‘호남 끌어안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진영에서 상징성이 큰 각종 행사나 기념일을 적극 챙기는 한편, 지역 숙원사업 추진과 현안 해소를 약속하며 ‘이준석 체제’ 이후 주춤했던 서진 정책에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

국민의힘은 현재 전북 남원·임실·순창에 지역구를 둔 재선 이용호 의원을 제외하면 호남 의석이 제로다. 그나마 이 한 석도 무소속이었던 이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로 합류함과 동시에 국민의힘으로 입당하면서 생긴 유일한 호남계 의석이다. 이에 여당은 내년 총선에서는 반드시 ‘호남 전패’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각오로 각별한 공을 쏟고 있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전북도‧전남도당 등 지방당 출처의 소식을 전하며 “최근 호남 지역민심 기류가 바뀌고 있다”라며 “민주당의 ‘호남 싹쓸이’는 역설적으로 지역 낙후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광주만 해도 광역시임에도 지역총생산(GRDP) 기준 전국적으로 가장 뒤처진 수준이지 않나. 현지에서 민주당이 선거철이면 호남을 ‘깔고 가는’ 지역 정도로 여기는 안일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내년 총선은 지난 21대와는 판도가 다를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 ‘호남민심 이탈’에 호남향 보폭 넓히는 與 

최근 민주당의 ‘호남 부침’이 가시화되자, 여당은 태영호 의원(전 최고위원)의 자진 사퇴로 궐위 상태에 놓인 최고위 1석에 호남계 인사인 김가람 전 청년대변인을 적극 안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호남향 보폭을 더욱 넓혀가는 모양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패배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최후 보루’인 호남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빠지면서다. 통상 어느 정당의 텃밭 지지율이 큰 폭으로 빠진다는 것은, 당 차원의 중대 위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적신호로 여겨진다.  

한국갤럽의 5월 4주차(23~25일) 조사에 따르면 호남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무려 14%P 떨어진 41%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달 30일부터 31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조사에서도 민주당의 광주·전라 지지율이 전주 대비 7.3%포인트 줄은 61.2%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연달아 터진 각종 의혹‧논란과 당내 계파 갈등에 대한 반감과 167석 거대야당이 당정 견제에 제대로 화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세부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호남의 한 민주당 의원은 “광주와 호남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윤석열정부와 왜 시원하게 싸우지 못하고 있느냐는 불만이 상당하다”며 “더 세게 싸우고, 더 시원하게 비판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강경 일변도의 대여 공세가 자칫 중도층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민주당에 딜레마다.

김가람 전 국민의힘 청년대변인 [뉴시스]
김가람 전 국민의힘 청년대변인 [뉴시스]

與 호남계 인사들, '당정-호남 가교 역할' 기대

김기현호 국민의힘은 현재 서남부로의 외연 확장을 최우선 정강정책으로 설정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주의라는 거대장벽을 타파하며 호남계 의석을 자력으로 가져온다면 당정으로선 상당한 국정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동서(東西) 통합’ 국정 코드와도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집권당의 친호남 행보는 내년 총선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이에 여권 호남계 인사들을 향한 국민의힘의 시선도 남다르다. 이들은 영남 기반인 보수정당에서 희소성이 높은 데다, 그 어느 때보다 ‘호남 성적표’에 민감한 당‧대 기조로 인해 총선 공천 등에서 전략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여당에서 유일한 전북 지역구 인사인 이용호 의원의 경우 태영호 전 최고의 빈자리를 메울 적임자 0순위로 지목된 바 있다. 

당초 당 지도부와 당내 유력 인사들은 호남계인 이 의원을 최고위 후임으로 단일 추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의원이 중앙당무를 겸임해야 하는 등의 격무 부담감과 내년 총선 준비 등을 이유로 이를 고사하면서 ‘이용호 추대론’은 무산됐다. 

이후 이른바 ‘신(新)핵관’으로 불리며 여당 신흥 실세로 떠오른 박성민 의원 등이 또 다른 호남계 원외 인사인 김가람 전 청년대변인을 전폭 지원하면서, 국민의힘 최고위 공석은 사실상 김 전 대변인에게 ‘따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다. 광주·전남 출신인 김 전 대변인은 1983년생으로, ‘보수 불모지’인 광주에서만 10여 년 동안 정당활동을 해 왔다.  

김기현 지도부의 구성원인 조수진 최고위원도 전북 익산 출신으로 당 내부에선 ‘호남의 딸’로 불리며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의 각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게 내부 중평이다. 조 최고는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 현재 서울 양천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평소 ‘호남 포용론’을 강조하는 등 호남에 대한 애착을 과시해 왔다. 특히 윤 대통령 부부가 최근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찾은 것도 조 최고가 적극 건의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호남에서 무려 재선까지 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지난 3.8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 등도 호남 험지에서 보수정치인으로서 이색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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