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인선을 둘러싼 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한 이후 차기 방통위원장에 MB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를 사실상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동관 특보 자녀의 과거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지면서부터다. 앞서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이 자녀 학폭 논란으로 낙마한 데 이어 이동관 특보마저 비슷한 논란으로 낙마한다면 이는 정권 차원의 엄청난 트라우마다. 그대로 밀어붙이자니 여론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여권 내부에서조차 방통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신중론이 적지 않다. 다만 이동관 특보 카드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동관 특보가 무책임한 가짜뉴스라며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강력 반발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다. 최악의 경우 정순신 사태 시즌2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차기 방통위원장 인선 논란을 둘러싼 막전막후를 짚어봤다.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관 특보. 뉴시스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관 특보. 뉴시스

학폭 트라우마에 전전긍긍2의 정순신 사태 우려
- 이동관, 장문의 입장문 발표 가짜뉴스강력 반발
대통령, 차관 인사 이후 이동관 지명 나설 전망

방통위원장 인선을 둘러싼 민주당의 총공세도 부담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왔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가 연루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거액의 가상자산 보유 의혹 혁신위원장 부실 검증 및 낙마사태 등 4대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통위원장 인선을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격미달·수준미달의 인사라는 점이다. 특히 이 특보가 MB정부 시절 언론장악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말을 아끼며 여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지명발표를 늦추면서 속도조절에 나섰다. 두 번의 인사청문회도 부담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고심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 특보의 방통위원장 인선을 강행할지 철회할지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2의 정순신사태? 민주당 위기탈출 위해 총공세

이동관 특보 아들의 학폭 의혹은 지난 2012년 불거졌다. 서울의 유명 자립형 사립고인 하나고에 재학 중이던 이 특보의 아들이 동급생 친구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피해 학생이 작성한 진술서에는 복싱과 헬스를 배운 후 연습을 한다며 팔과 옆구리 부분을 수차례 강타했다. 다른 친구의 머리도 책상에 300번 부딪히게 했다. 친구와 싸우라고 시켜서 거부했더니, '둘다 맞아야겠네'라면서 주먹으로 팔뚝과 골반을 때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후 MB정권 실세였던 이 특보의 정치적 역향력으로 학폭위가 열리지 않고 이 특보의 아들이 전학조치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는 게 골자다.

이 특보는 지난달 30일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면직안 재가 이후 차기 방통위원장 지명이 확실시됐다. 뜻밖의 복병은 자녀의 학폭 연루 의혹이다. 학폭 문제는 현 단계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과거 인사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위장전입, 음주운전 등이 고위공직자의 결격사유였지만 최근에는 학폭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이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낙마사태에서 잘 드러난다. 정 전 국수본부장은 내정 발표 이후 아들의 학폭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자진사퇴한 바 있다.

여론은 다소 부정적이다. 9일 뉴스토마토가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실시한 정기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동관 특보의 차기 방통위원장 지명 논란과 관련해 전체 응답자의 55.4%윤석열 대통령의 언론장악 의도가 있는 잘못된 인사’, 31.1%언론인 출신으로 공정한 방통위원장 역할이 기대되는 인사라고 대답했다.

크고작은 악재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서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동관 특보의 자녀가 당시 하나고의 학교폭력에 최고 가해자였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정순신 사태'와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심각한 학폭이었는데 학교 폭력위원회는 열리지도 않았고 가해자는 전학 후에 유유히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참으로 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비판했다. 강선우 대변인도 자녀 학교폭력 가해 이력이 윤석열 정권에선 공직 임명의 가산점인가라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아울러 MB정부 시절 이 특보의 과거 경력도 문제삼았다. 공영방송 사장 해임, 낙하산 선임, 언론인 해직사태를 주도하면서 언론장악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대표는 이동관 특보는 MB정권의 언론 탄압 선봉장이었다언론 탄압 기술자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하는 순간에 인사 참사로 시작한 윤석열 정권은 그 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문 확산에 국민의힘도 방어에 나섰다. 국민의힘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진흥특별위원회는 민주당이 이동관 전 수석의 차기 방통위원장 내정설에 발끈하고 나선 것은 신기루를 좇는 언어도단이고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민주노총 언론노조와 결탁해 이룬 노영방송 체제를 바로잡는 것은 국민이 바라는 방송 정상화라면서 결정도 안 된 인사를 가지고 미리 부적절 운운하며 좌표 찍기에 나서기 전에 민주당 혁신위원장 선임 검증이나 잘하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자충수로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맞은 가운데 학폭 논란으로 2030세대는 물론 학부모 세대인 4050세대가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학폭에 대한 국민적 눈높이가 매우 엄격해졌다만약 (이동관 특보가)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해명이나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허은아 의원 역시 개인적으로 연좌제에 반대한다면서도 학폭이 요즘 너무나 민감한 이슈라서 개인적으로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순신 검사특권 진상조사단 의원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를 항의 방문, 유홍림 서울대학교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면담을 위해 자료제출 요구서를 들고 교내로 들어서고 있다. 2023.03.08.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정순신 검사특권 진상조사단 의원들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를 항의 방문, 유홍림 서울대학교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면담을 위해 자료제출 요구서를 들고 교내로 들어서고 있다. 2023.03.08. 뉴시스

이동관 가짜뉴스정면 돌파 이재명에 가해자논리

침묵하던 이동관 특보는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대통령실 기자단에 A4용지 8페이지 분량의 장문의 입장문을 배포했다. 방통위원장 공식 지명 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민주당의 전방위 공세에 시달린 이동관 특보는 아들의 학폭 논란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무책임한 폭로와 가짜뉴스 생산을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거대 야당 대표까지 무차별한 카더라식 폭로를 지속하면서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보기 어려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입장문의 핵심은 당사자간 사과와 화해도 이뤄졌고 고교 졸업 이후에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인 만큼 학폭논란은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폭로라는 점이다.

특히 아들이 학생 A 머리를 책상에 300번 부딪히게 했다거나 깎은 손톱을 침대에 뿌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20111학년 당시 상호간 물리적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일방적 가해 상황은 아니었다“A가 당시 주변 친구들과 취재기자에게 '사실관계가 과장됐고 당시에도 학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본인의 압력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지 못했다는 의혹에는 당시 학교폭력사안대응기본지침에 따르면 가해 학생이 즉시 잘못을 인정해 피해 학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피해 학생이 화해에 응하는 경우' 담임 교사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2019년 학폭 논란을 보도했던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방송과 관련, 특정교사의 일방적 주장을 보도했다고 반발했다. 이 특보는 본인 징계를 피하고자 학교비리 의혹을 제기한 전경원 교사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한 악의적 프레임의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라고 반박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은폐와 축소로 점철된 이동관 특보의 입장문이 입증한 것은 어떻게든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겠다는 욕망과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뿐이라면서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은커녕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좌관도 물러나야 한다. 그게 민심이라고 경고했다.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도 임명을 강행쪽으로 간다면 공감능력 제로의 정부라면서 무조건 밀어붙여식으로 가는데 윤석열정부가 몰락의 길을 자초하고 있다며 비꼬았다.

청문회 두번 부담여론보며 속도조절 나선

방통위원장에 면직된 한상혁 전 위원장. 뉴시스
방통위원장에 면직된 한상혁 전 위원장. 뉴시스

선택은 윤석열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실은 인사실패가 반복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집권 중반 이후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극도로 예민하다. 여론동향을 예민하게 살피면서 정중동의 행보다. 다만 야당의 공세수위에도 대통령실 내부의 핵심 기류는 이동관 특보를 차기 방통위원장에 공식 지명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 대통령실 자체 검증에서도 향후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해도 심각한 추가 의혹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순신 전 본부장의 경우 법적조치를 활용해 아들에 대한 불이익을 미루고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점이 여론의 분노를 샀지만 이동관 특보의 경우 아들이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한 만큼 크게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명발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가 두 번 열려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 탓이다.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잔여 임기가 7월말까지라는 점에서 방통위원장이 보궐로 임명될 경우 7월에 인사청문회를 개최한 뒤 후임 임기에 맞춰서 8월에 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민주당이 무분별한 정치공세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특보의 방통위원장 공식 지명은 조만간 단행될 차관인사 이후 윤곽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는 지난 5월 국정쇄신 차원에서 소폭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일 정상회담, G7정상회의, 한미일 정상회담 등 메가톤급 외교일정이 지속된 것은 물론 후임자 선정 및 인사청문회 부담으로 사실상 연기됐다. 이에 윤 대통령은 전체 19개 정부 부처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개 부처의 차관 인사를 통해 개각에 준하는 국정쇄신 효과를 낼 것으로 풀이된다. 이 특보의 차기 방통위원장 지명 역시 차관인사 이후 적절한 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역대 대통령들의 회고를 돌이켜보면 재임 시절 가장 어렵고 힘든 게 인사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도 이 때문이라면서 학교폭력이라는 예민한 이슈와 엮여 있다는 점에서 이동관 특보의 차기 방통위원장 내정 카드는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고심 끝에 결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원칙주의자 스타일에 가깝다이동관 특보가 차기 방통위원장에 최적임자라는 판단이 선다면, 야당의 반대와는 관계없이 적절한 시점에 정면돌파를 선언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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