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진실은 정치와 선전선동 앞에 힘이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의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루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보면 눈뜨고 코 베였던광우병사태처럼 제2의 괴담 사태로 확전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과학'을 내세워 민주당과 좌파진영의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 주장을 '2의 광우병 괴담', '가짜뉴스'로 몰아가면 국민들이 속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 광우병괴담, 가짜뉴스에서 혼이 난, 큰 교훈을 배운 국민들은 야권의 '후쿠시마 방사능 테러'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 반대' 등 현수막과 범국민서명운동, 연이은 주말 도심집회 등 대공세에도 쉽게 호응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광우병괴담 당시와는 달리 확실히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권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전략을 살펴보면, '과학'을 내세워 안전성을 강조하고 민주당 등 좌파진영의 공세를 '괴담' '가짜뉴스'로 몰아간 뒤 북한의 우라늄 채굴 폐수, 중국 삼중수소 배출 문제를 삼지 않는 야당의 친북·친중행태 공세로 덮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only 과학 전략''후쿠시마 오염수, 마셔도 된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15일 방사선 학자 웨이드 앨리슨(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제 앞에 희석되지 않은 후쿠시마 물 1리터(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가 있다면 마실 수 있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여권 관계자들이 너도나도 '마실 수 있다'는 과학 릴레이를 하고 있다.

19일에는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검증TF'의 위원장을 맡은 성일종(서산) 의원이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는 정치나 외교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과학적 문제일 뿐"이라며 앨리슨 교수를 초청해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주최해 힘을 실었다.

성일종 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항만에서 18000베크렐의 방사성 세슘 검출 우럭 보도 다음날인 7일에는 세슘은 분자 수가 많아서 물보다 무거워 가라앉는다고 주장했고 특히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완전히 과학적으로 처리된 것이라면,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인 1만 베크렐(Bq)에 맞다면 마실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공동 시행한 원전 오염수 확산 시뮬레이션을 보면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를 거친 오염수를 일본 측 실시계획상 연간 최대 방류해도 우리 해역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무해론'을 주장했다.

여당은 민주당의 친중·친북 성향을 거론하며 반박에 나선다. 성일종 의원은 북한의 평산 광산에서 나오는 오염수 및 핵물질이 예성강을 통해 서해로 유입되는 것을 한 번이라도 지적했느냐고 따졌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중국) 연변 원자로에서 나오는 원자로에서 나오는 고체와 액상의 핵폐기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느냐. 삼중수소가 문제 된다면 서해로 들어오고 있는 중국 원전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문제 제기를 지금까지 안 했느냐고 민주당을 질타했다.

여기서 없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부도 국민의힘의 주장에 과학만 있지 '정치'가 없다. 정치의 본령인 국민의 마음을 잡는 설득, 소통이 없다.반면 민주당의 후쿠시마 공세에는 '과학'은 없고 과도한 '정치전략'만 있다.

이미 제주도와 부산 일대의 횟집들이 문을 닫고 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 "대통령실부터 후쿠시마 오염 생수 주문해 마시라"(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하기 이전에 시찰단부터 한번 먹어보고, 그 전에 대통령 내외부터 먹어보시고"(안민석 민주당 의원), "총리의 직계가족과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성 의원 직계가족과 서산·태안 지역구 주민들하고 같이 드시라"(윤재갑 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에는 과학이 빠진 정략적 정치공세만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민주당은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을 소비자로 하는, 정치가 본업인 국민의힘과 여권의 주장에는 과학에 더해 정치가 있어야 한다.

과학과 정치는 근본이 다르다. 데이터로 대표되는 과학은 명쾌한 듯 하지만 현실의 인식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민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반면 정서와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즉 국민은 정치전략과 선전선동에 쉽게 속기도, 농락당하기도 한다. 이는 국민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어느 시대, 국가를 막론하고 국민대중은 지도자의 말 몇 마디에, 근거없는 소문에 우왕좌왕 부화뇌동한다. 뜬소문과 오해, 실수, 거짓으로 전쟁이 일어난 게 한 두 번인가.

국민이란 대중은 지금 광우병 교훈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처럼 비교적 긴 시간과 뼈아픈 대가를 치른 후에 각성하고 성숙하는 단계로 나아가곤 한다. 그러나 야당과 좌파세력의 지능적인 선동과 전국적인 조직적 책동은 집요하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나치의 괴벨스의 명언(?)처럼 국민 의식 바닥에 깔려있는 '반일 정서'를 집요하게 자극하면 국민은 분노하고 괴담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총리가 'WHO 음용수 기준인 1만 베크렐(Bq)에 맞다면'이라는 '과학'을 전제로 "마실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마실 수 있으면 일본이 왜 바다에 내다 버리겠느냐.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일본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마실 수 있다면 왜 버리냐'는 상식에 '일본의 대변인'이라는 '반일 정서'를 갖다 붙여 선동하는 식이다.

"배출된 방사성 물질은 쿠로시오 해류와 북적도해류를 통해 태평양을 크게 우회한 뒤 우리 바다에 유입되어 이 모든 과정이 한 4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해양조사원의 '과학'에 대해서도 '물고기가 일본해에만 머무냐'는 한마디에 힘을 잃는다.

20214월 정의용 외교장관이 "IAEA 기준에 따른다면 오염수 방류에 굳이 반대 안 한다"는 발언을 들어 한 총리가 "윤석열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전임 정부와)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자 문재인 정부 핵심관계자들이 만든 '포럼 사의재'"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는 기본 원칙에서부터 세부 대응조치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사의재는 문재인 정권의 진심은 '방류 반대'이고 정 전 장관 발언은 단지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에 불과한 반면 문재인 정부처럼 방류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 절차에 따른 안전성을 요구하고 수산물 수입해제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의 진심은 '방류 허용'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학과 팩트(사실)는 선동과 정치 앞에 약하다. ‘광우병 괴담이 모든 문제를, 국민의 오해를 풀어주는 전가의 보도(傳家寶刀)가 아니다.

"아무리 닭의 모가지를 비틀지라도 새벽은 온다"(김영삼 전 대통령)고 하지만 닭은 새벽이 오기 전에 모가지가 비틀어져 죽는 고통을 당한다.

현명한 지도자와 정당은 닭(국민) 모가지가 비틀려 죽기 전에 도살자와 음모자들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방법을 찾고 제시해야 한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과학이 정치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국민이 광우병 괴담으로부터 교훈을 배운 것처럼 이제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배워야 할 때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 해결에 나선 이명박 정부가 야권과 방송, 좌파진영의 '뇌 숭숭' 광우병 공세를 그저 과학을 내세워 안이하게 '광우뻥'이라며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구상했던 국정개혁 드라이브 한 번을 제대로 못 걸고 임기 내내 무기력한 산송장 정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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