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1일은 ‘의병의 날’이고 6일은 ‘현충일’이다. 양 기념일의 기원은 이렇다. 1592년(조선 선조 25) 6월 1일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정암진 전투’에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거둔 날이고, 1014년(고려 현종 5) 6월 6일은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한 날이다.

1949년 6월 26일. 민족의 큰 별이 떨어졌다.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이 경교장(京橋莊)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졌다. 향년 74세였다. 꼭 1년 뒤인 이듬해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다.

김구는 독립 영웅이자 민족 지도자이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김순영과 곽낙원 사이의 독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본명은 김창수(金昌洙), 호는 백범(白凡)이다. 미천한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을 따서 호를 삼았다. 김자점(金自點)의 11대 방계 후손으로 선조들은 멸문지화를 당해 신분을 감춘 채 숨어 지낸 잔반(殘班)이다. 17세에 과거에 실패하고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백범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광복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통일 정부를 세우려는 노력은 끝내 실패했다. 백범이 꿈꾸던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나 군사 강국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고백한다. K팝과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지금, 백범의 통찰력에 더욱 고개가 숙어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우 이념의 틀에 갇힌 ‘역사전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우남(雩南, 이승만)과 백범이 ‘단골 주인공’이 된 지 오래다. 모든 역사적 인물의 평가에는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포폄(褒貶)’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성역화 된 인물은 백범이다. 필자는 백범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하고 싶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교육계몽운동에 참여했고, 을사조약 반대 상소를 올렸다. 3.1 운동 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했고, 1931년에 한인애국단을 만든 뒤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이끌어냈으며, 1940년 임시정부 주석에 선출되어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선전포고까지 했다. 이러한 독립을 위한 평생의 헌신은 ‘공칠(功七)’이라 하겠다.

그러나 백범은 1948년 7월 자신을 방문한 유어만(劉馭萬, 주한 대만 총영사)에게 “내가 북한에서 보니 북한군이 확장을 앞으로 3년간 중단하고 그사이 남한이 무슨 노력을 다해도 현재 공산군에 맞설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하다. 향후 북한군이 남진하면 여기서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세 판단하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과삼(過三)’이라 하겠다.

<이승만과 김구>(나남, 2008)를 저술한 손세일은 “두 사람은 민족주의 안에서 이승만은 건국을, 김구는 민족을 강조했을 뿐 차이가 없다.”라고 했다. 백범은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한민국 독립 역사에 불멸의 이정표를 남겼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발걸음을 어지럽게 말라(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라는 자신이 좌우명으로 삼은 서산대사의 선시(禪詩)와 함께.

백범은 벼랑에서 잡은 손을 놓은 가히 ‘대장부의 삶’을 살았다.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라는 본인의 어록처럼 민족의 제단에 영육(靈肉)을 바친 백범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金城忽變島夷城(금성홀변도이성) 서울(조선)이 갑자기 섬나라 오랑캐(일본) 땅이 되어

露宿風餐海上行(노숙풍찬해상행) 풍찬노숙하며 망명(국권회복)의 길을 나섰네

稟氣無雙千萬敵(품기무쌍천만적) 타고난 정기는 견줄 이 없어 천만 적을 상대했고

忠誠勇猛數三英(충성용맹수삼영) 충성과 용맹으로 여러 명의 영웅과 뜻을 함께 했네

艱難辛苦分朝避(간난신고분조피) 갖은 고초를 다 겪고 분조(임시정부)를 옮겨다녔고

粉骨碎身光復成(분골쇄신광복성) 분골쇄신 헌신하여 조국의 광복을 이루었네

虎逝龍亡終失怙(호서용망종실호) 백범(호)과 우남(용)은 갔고 마침내 국부를 잃었지만

懸崖撤手丈夫生(현애철수장부생) (백범은)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장부 삶을 살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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