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은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 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당부한 내용이다. 이후 수능 이슈는 대한민국을 집어삼켰다. 여의도 정치권에도 때아닌 교육 이슈가 전면에 부상했다. 후폭풍은 극심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대국민사과와 더불어 이규민 전 교육과정평가원장마저 사퇴했다. 수능과 대학입시로 상징되는 교육 분야는 우리 사회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이 사라질 만큼 교육불평등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예외없이 창과 방패의 싸움을 벌였다.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인 고3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모두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사실상 악의 축으로 지목받은 사교육업계 또한 거센 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의 파장에 내년 총선에 미칠 파장을 집중 해부했다.

국무회의 주재중인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국무회의 주재중인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대통령 수능 발언 후폭풍 일파만파여야, 정치적 공방 극심
- 문제는 수능 논란이 내년 총선 최대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
- 사교육비 해소·공교육 정상화 열쇠 풀 경우 집권2·총선 청신호

교육은 부동산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오죽하면 대선 때마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만 해결하면 차기 대통령은 사실상 따놓은 당상이라는 우스개마저 등장할 정도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누적된 갈등의 해결은 쉽지 않았다. 좌고우면보다는 정면돌파 스타일의 윤 대통령은 과감하게 수술용 메스를 꺼내들었다. 공교육 정상화와 과도한 사교육비 해소는 역대 정부 모두 실패한 사안이다. 윤 대통령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내년 422대 총선에서 미칠 영향이다. 2024학년도 수능은 오는 11월에 치러지고 내년 초에는 국내 주요 대학의 입시가 대부분 마무리된다. 단순하게 불수능·물수능 논란을 넘어서 22대 총선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쏘아올린 공이 내년 총선의 승부수일지 자충수일지 아직은 미지수다. 분명한 건 성공할 경우 국정운영은 그야말로 장밋빛 탄탄대로다.

킬러문항?5개월 앞둔 수능 대혼란 속 찬반 팽팽

수십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다.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격노를 쏟아냈다. 교육당국과 사교육업체를 정조준하면서 수능에서 초고난도의 문제를 뜻하는 킬러문항의 배제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교육개혁 관련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은 비문학 국어 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 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며 조속한 개선을 지시했다.

킬러 문항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거나 학교에서 가르치기 힘든 과목 융합형 문제다. 교과서밖 출제 비율이 높은데다 해석이 워낙 까다로워서 대학교수조차 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린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예술의 위상을 설명하는 지문이 출제된 게 대표적이다. 역대 수능을 돌이켜 봐도 불수능 논란의 이면에는 늘 과학이나 철학을 융합한 난해한 지문의 킬러문항이 있었다. 다시 말해 불안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고액의 사교육으로 내모는 주요 요인이다.

교육당국은 대책마련을 서둘렀다. 이주호 장관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에 학원만 배 불리는 작금의 상황을 대통령께서 여러 차례 지적했음에도, 신속하게 대책을 내놓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규민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역시 윤 대통령이 킬러문항 배제 지시를 내린 뒤 지난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오랜 시간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다만 수능 시험을 불과 5개월 앞둔 윤 대통령의 깜짝 발언에 후폭풍이 엄청났다. 수험생, 교사, 학부모 모두 멘붕이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특히 국내 최고의 교육전문가들조차 올해 수능시험 난이도 예측을 꺼렸다. 다만 킬러문항 배제로 물수능이 될 경우 최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 확보의 어려움과 재수생 급증에 대한 우려는 쏟아졌다.

학원가 킬러문항 안내 문구. 뉴시스
학원가 킬러문항 안내 문구. 뉴시스

사교육계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윤 대통령이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을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연봉 수백억원으로 유명한 일타강사들은 애들만 불쌍하다”, “학교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인데라며 반발했다. 수능은 단순 암기가 아닌 종합 사고력을 측정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지적은 교육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사교육계 일각에서는 킬러문항 배제시 준킬러 문항이 등장하기 때문에 사교육비 감소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여야 격돌민주 교육참사”vs국힘 내로남불직격탄

여야는 정면충돌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며 연일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소를 위한 진정성이라며 지원사격에 났다. 특히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둔 최대 호재라고 여기면서 윤 대통령을 맹공했다. 불안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해서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었다. 국민의힘은 킬러문항 배제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당시 공약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내로남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에 당의 모든 화력을 총동원했다. 수능대혼란, 교육참사 등 자극적 용어로 맹공을 가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이어서 최악의 교육 참사라면서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대통령은 수험생과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사교육계에 몸을 담았던 정청래 최고위원은 변별력이 없게 되면 무슨 기준으로 입학생을 뽑나며 땜질식 처방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했다. 김기현 대표는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에서 대학입시를 공정하게 운영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겠다고 하면서 초고난도 문항, 즉 킬러 문항의 출제 금지를 공약했다라고 강조한 뒤 민주당 공약은 참사 공약이었나라고 꼬집었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공교육 정성화는 문재인정부와 친민주당 성향의 교육감들이 줄곧 외쳐온 것이라면서 내로남불, 뻔뻔한 말 바꾸기가 일상이 됐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사교육 때리기에도 나서며 연봉 수백원을 받은 일타강사를 정조준했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교육시장 공급자인 일부 강사들 연수입이 100억원, 200억원 가는 것이 공정한 시장가격인가라고 질타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특정 일타 강사들이 1년에 수십억도 아니고 수백억을 버는 현재 구조, 현재의 교육 체계가 과연 정당하고 제대로 된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은 교육부와의 당정협의를 통해 윤 대통령의 교육개혁을 뒷받침했다. 당정은 특히 킬러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수능시험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기법을 고도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수능입시와 관련해 대형학원의 거짓·과장 광고 등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다만 국민의힘 비주류에서는 신중론도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이 수능에 대해 뭘 안다고 앞뒤가 맞지도 않는 모순적인 얘기를 함부로 해서 교육현장을 대혼란에 빠트리나라면서 대통령은 무오류의 신적 존재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준석 전 대표 역시 지문을 교과서 내에서 출제하라고 하면 수능이 아닌 암기시험이라고 일침을 가했따.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학입시 수능 혼선 초래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6.22. 뉴시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학입시 수능 혼선 초래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6.22. 뉴시스

통 발언 여파에 내년 22대 총선 성적표 엇갈린다?!

여야의 격렬한 공방은 수능 이슈가 내년 총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수능으로 대변되는 교육문제는 아파트값으로 상징되는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최대 난제다. 극심한 찬반 논란 속에서 온국민이 교육전문가이면서 부동산전문가인 이유다. 게다가 올해 고3 수험생은 내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지난해 재수생을 포함한 수능 1교시 응시자 수가 45만여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40만표 이상이다. 여기에 수험생 본인의 부모는 물론 친인척까지 고려하면 수능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할 유권자 집단은 최대 수백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 국민의힘 강세지역인 서울 강남3, 양천 목동, 경기도 성남 분당 지역의 민심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맘카페를 비롯한 주요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대치동이 뒤숭숭해졌다”, “대통령이 뒤통수를 때렸다는 항의섞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강남과 목동과 분당도 격전지가 되었다고 한다. 잘하면 (대구) 수성구도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 강세지역이 킬러문항 배제 논란으로 총선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야는 총선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민주당 호재, 국민의힘 악재라는 분석은 엇나갔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메가톤급 이슈에 출렁이지 않은 약보합 상태이기 때문이다. 애초 윤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 이후 예민한 교육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건드렸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와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교육개혁의 일환이라는 반론이 공감대를 얻으며 찬반양론이 오히려 팽팽해졌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수능 논란이 여권발 호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2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64주차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6%, 부정 평가는 57%로 각각 나타났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긍정·부정 평가 이유로 교육정책이 언급된 것과 관련, “최근 촉발된 수능 킬러문항 논란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2일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사의 전국지표조사(NBS,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도 예상과 달리 20·30대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대에서 국민의힘 27%, 민주당 17%(직전 조사 국민의힘 20%, 민주당 19%) 30대에서 국민의힘 30%, 민주당 27%(직전 조사 국민의힘 20%, 민주당 23%)으로 국민의힘이 앞섰다. 이는 여권발 악재로 여겨졌던 수능 논란이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공교육 정상화 이슈를 윤 대통령이 발빠르게 선점한 효과로 풀이된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교육 문제는 잘하면 본전, 잘못하면 벌집을 건드렸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예민한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대처했다윤석열 대통령은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은 본인의 스타일대로 수능과 사교육비 문제에 대한 승부수를 띄웠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대통령의 과감한 승부수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아직 예측불허라면서 내년 총선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소의 첫걸음으로 인식되면서 민심의 지지를 얻을 경우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보다 탄력을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수능 후폭풍이 총선 국면까지 이어진다면 상황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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