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그늘’ 컸나...‘투톱 공격수’ 빠지자 김기현 사단 존재감 침체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가 지난 15일부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김 대표의 지난 100일은 그야말로 ‘험지 여정’이었다. 소위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후보로 부각되며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과반 득표로 당 대표에 올랐으나, 지도부 출범 초기부터 ‘김재원‧태영호 사태’ 등 잇따른 최고위 논란을 수습하는 데 골몰해야 했다. 이러한 내홍 사태는 결국 당 윤리위원회 중징계와 태영호 의원의 지도부 자진 하차로 일단락됐다. 다만 이에 따른 반대급부도 만만찮다는 분석이다. 거야(巨野) 대항마로 여론전에서 활약상을 보였던 최고위 ‘투톱 공격수’가 장외로 물러나면서, 김기현 지도부가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 이에 여권을 중심으로 집권당 지도부가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리스크 방탄, 일본 원전수 괴담화, 입법 독주 등 경주마 행보를 강력하게 저지할 화력이나 뚜렷한 당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분출한다.

“당과 원팀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건강한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 관계’가 자리를 잡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은 지난 1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렇듯 김 대표는 취임 100일을 맞아 ‘당정 원팀’과 여당 안정화를 최대 성과로 꼽았다. 다만 이는 역설적으로 사실상 집권여당이 용산 대통령실의 그늘에 종속돼 있음을 자인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만큼, 여당의 ‘무채색화’를 더욱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당 내부에서도 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5선 서병수 의원은 최근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를 잘한다’라며 물개 박수만 친다고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니다”라며 “당은 민심을 모으고 전달하는 곳이며, 집권 여당이 민생을 돌보고 윤석열 정부를 받쳐줘야 국정도 제대로 돌아간다”고 당 지도부에 쓴소리를 낸 바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7회국회(임시회) 5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07회국회(임시회) 5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與 ‘맹탕 지도부’ 오명,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문제?

김기현호 국민의힘은 출범 4개월여가 지난 현 시점에도 윤석열 정부의 어젠다를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있다는 게 정치권 중평이다. 구 보수정당 출신의 한 여권 원로는 “김 대표는 당권을 잡은 뒤 내홍 수습이라는 1차 허들을 넘었지만 용산 대통령실과 합을 맞추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고유 색채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정책 의제나 야당과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서 핵심 키워드를 선(先)장악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짚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 대표로서 야당과의 현안 주도권에서 우위를 확보함은 물론, 사안에 따라 대통령실에 민심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제언이다.

이러한 원론적 역할론과 더불어 최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드러난 여야 대표의 존재감 격차도 김 대표가 극복해야 할 문제로 지목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9일 대표연설에서 급기야 ‘불체포특권 포기’를 천명하며 정치권에 파장을 불렀다. 앞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체포영장이 민주당의 집단 반대로 무력화된 상황에서 나온 이같은 주장은 ‘황당 궤변’에 가깝다는 여당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적어도 ‘국회의원 특권 포기’ 의제 선점이라는 부분에서 만큼은 여당에 판정승했다는 평가다.

여당 대표 연설이 그 이튿날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김 대표가 지난 20일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 감축 ▲일하지 않는 의원에 대한 무임금제 도입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등 3대 국회개혁안은 큰 파급력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의원 정수 10% 감축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 의제와 이해충돌 소지가 크고,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의 경우도 앞서 지난 3월 말 국민의힘 의원 51명이 참여한 불체포특권 포기 서명란에 김 대표의 이름이 빠졌던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특히 불체포특권 포기는 당초 야당 인사들에 대한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국면에서 여당이 야당을 압박하기 위해 먼저 꺼내든 공세 소재였다. 그러나 ‘방탄 정당’으로 도마에 오른 야당의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으로 주목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여당 지도부가 ‘메신저’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한 여당 의원은 본지에 “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쉽게 말해 민주당과의 기세싸움 성격이 강한 자리였다”라며 “(김 대표의) 연설은 내용상 별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다만 메시지의 강도보다 메신저가 발산하는 에너지에서 차이가 있지 않았나”라고 봤다. 또 그는 “이는 김 대표 개인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며 “김 대표를 뒤에서 받치는 최고위가 태영호‧김재원 두 인사의 이탈로 힘이 많이 빠진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신임 대표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2023.03.10. [뉴시스]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신임 대표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재원, 김병민, 조수진, 태영호 최고위원,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2023.03.10. [뉴시스]

김기현 체제 핵심 ‘최고위’, 무력감 지속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과 태영호 의원은 각각 당원권 정지 1년‧3개월 중징계를 받고 현재 당 지도부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이들은 야권 성역으로 지목되는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 등과 관련해 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김기현 여당 체제 초기 ‘투톱 공격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이들이 대야(對野) 수위 조절에 실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실책이자 과오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로선 야당의 부정‧비리 이슈를 타격감 있게 꼬집을 수 있는 주요 ‘전략 자산’을 잃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는 게 주된 내부 평이다. 

이는 “지금은 민생이나 정책에서 야당과 변별력을 가져가기 보다는 공격적 대응으로 야당을 압박하는 것이 우선인데, 최고위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인사가 없다”라는 여당 중진 의원의 푸념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현 여당 최고위에서 주목도가 높은 인물은 전무하다. 장예찬 청년최고 정도가 야당의 후쿠시마 원전수 괴담화와 장경태 민주당 의원의 ‘무릎보호대 기절쇼’ 논란 등으로 대야 여론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최고위 중진 멤버들의 활동은 좀처럼 가시권에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당초 여당 지도부에서 김재원‧태영호 최고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뤘던 조수진 최고도 최근 보좌진 부당 해고 의혹으로 당 윤리위에 제소되면서 몸을 잔뜩 움츠린 상태다.  

여기에 소위 ‘야당 저격수’로 불렸던 여당 원내 강경파 인사들도 당무보다 총선 전 지역구 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보니 여당 내 스피커 기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맞물려 당 안팎에서 최근 ‘지도부 약체론’이 점차 확산하면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분출한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최근 당정 지지율이 동반 상승세에 있다고는 해도 당이 자체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여당) 무용론이라는 고질적 딜레마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당 지지율은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당장은 야당과의 화력전을 주도할 수 있는 대체재 물색이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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