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내년 422대 총선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의 고차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 과연 이재명 대표를 간판으로 내세워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내부 기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다. 주로 이 대표 퇴진을 외쳐왔던 비명계의 주장이다. 사법리스크 논란과 리더십 위기로 만신창이가 된 이대표를 내세울 경우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는 물론 중도층 외연확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이 대표가 2선 후퇴할 경우 뚜렷한 대안이 있느냐에 대한 반박도 쏟아진다. 이른바 대안부재론이다. 이 대표를 엄호해왔던 친명계의 주장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재명 없이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대표 체제로 총선 승리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 대표를 완전히 배제할 수만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다. 이 대표로서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민주당 역시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이 대표의 활용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측근 윤영찬 의원과 대화나누는 이낙연 전 대표. 뉴시스
측근 윤영찬 의원과 대화나누는 이낙연 전 대표. 뉴시스

이재명 애물단지 전락에 이낙연 새 선택지 등장
- 민주, 오염수 괴담 공세에도 지지율 하락 자충수
-못다 한 제 책임 다하겠다확 달라진 이낙연

최근 민주당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계기는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이다. 지난해 6월 대선에 이은 지방선거 참패 이후 1년여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확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주요 이슈에 대해 매사 진지한 태도로 일관해 엄중낙연이라고 불리던 과거와 딴 판이었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제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 대표를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국내 정치무대 복귀 첫 일성으로 과감낙연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정치적 이해득실보다는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십자가를 지겠다는 의지다. 친낙계를 비롯한 비명계는 탄탄한 구심점을 얻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의 역할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 대표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는 변수다. 이 대표의 리더십과 이 전 대표의 역할론은 비례가 아닌 반비례 관계에 가깝다.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확 달라진 이낙연

지난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한동안 국내 정치와는 거리를 뒀던 거물 정치인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주인공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다. 1년 만의 귀환이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유학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내공을 다져왔다. 순간 1500여명에 이르는 지지자들이 이낙연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쏟아냈다. 공항 주변에는 보고 싶었습니다 NY 너만 믿어 등의 응원구호와 팻말로 도배됐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맹공과 더불어 이재명 대표의 대안을 자처했다. 워딩은 신중했지만 이 전 대표의 결연한 권력의지가 돋보였다. 우선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됐다며 윤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수출이 위축되고 경제가 휘청거린다. 민주주의와 복지도 뒷걸음질 치고 국민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가 언급한 책임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대선패배와 정권교체에 대한 본인의 책임감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대선경선에서 패배한 것에 대한 성찰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 대표 체제 하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한 민주당의 부활을 위해 본인이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각오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 생존전략-이낙연의 구상을 바탕으로 대학강연과 북콘서트를 통해 광폭행보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이를 통해 본인만의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의지다. 앞서 이 전 대표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와 독일 베를린자유대 특강에서 현 정부의 미일 편중외교 노선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친낙계는 환호했다. 친낙계 의원들 상당수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최측근을 역임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친명 성향의 강성 팬덤으로부터 난도질을 당해온 친낙계 의원들은 적극적인 지원사격 의지를 내비쳤다. 대선 이후 주군이 없는 상황에서 당한 설움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조심스럽게 이낙연 역할론을 본격 제기했다.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암시(윤영찬 의원) 당이 위기에 처하면 몸을 던져 당을 구해내겠다는 취지(설훈 의원) 총선에서 역할을 해주시는 것이 민주당에서 받은 혜택의 보답(김철민 의원)

이 전 대표의 귀국에 여권에서는 경계령도 떨어졌다. 여권 전략가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 같은 중도 합리적 인사가 민주당을 맡게 되면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170석이 아니라 130, 120석도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규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누더기 부동산 정책과 망국적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정권의 무능·실정에 이낙연 전 총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잘못에 반성문부터 쓰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물마시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물마시는 이재명 대표. 뉴시스

백지장도 맞들어야이재명 환영 친명계 복잡

이재명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을 반겼다.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의 귀국 다음날인 안부 차원의 전화통화에서 백지장도 맞들어야 할 어려운 시국이어서 모두가 힘을 함께 합쳐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정부의 실정에 맞서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도 거들었다. 정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가 어떻게 움직이든 다 정치적인 행보라고 해석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데에 100% 공감하는 입장이라면 당의 분열이 아니라 당의 통합, 민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단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친명계 일각에서는 또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회동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 전 대표가 문재인정부 국무총리, 민주당 대표까지 역임한 만큼 이 대표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민주당의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안민석 의원은 지지자들 이야기가 친명, 비명 갈라져서 싸울 때냐, 똘똘 뭉쳐서 검찰 정권과 맞서라는 것이라면서 이낙연 전 대표께서 귀국하셔서 큰 통합의 길을 이재명 대표와 함께 가시면 총선도 이길 것이다. 이재명 대표부터 만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표면적인 환영과 달리 친명계 내부사정은 복잡하다. 이 전 대표의 등장으로 지난해 대선 이후 위태롭게 이어져왔던 친명계의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대장동 이슈에 대한 친명계의 감정적 앙금 또한 여전하다. 이 대표를 정치적 곤경에 빠트린 대표적인 사법리스크인 대장동 이슈는 20대 대선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이 전 대표 측인 친낙계에서 공세적으로 제기한 사안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 대표의 정치적 보폭이 커질수록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질수록 새로운 대안찾기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당 안팎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면 유일한 대안은 사실 이 전 대표를 제외하고는 찾기 힘들다. 실제 이 전 대표는 귀국 이후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데 이어 주말에는 23일 일정으로 정치적 고향인 호남을 방문했다. 이어 7월 초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양산 평산마을로 이동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도 전해졌다.

게다가 친명계의 정국 주도 능력에도 꼬리표가 붙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크고작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반사이익을 전혀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공세다. 민주당은 이재명 사법리스크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투기 의혹 등 3대 악재를 뛰어넘을 호재로 후쿠시마 오염수 이슈를 꺼내들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이 80%에 육박한 만큼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올 계기로 생각하고 총력투쟁에 나섰다. 마치 이명박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광우병 공세에 버금가는 총공세였다. 이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물론 최고위원회의, 장외집회 등에서 핵폐수나 방사능 테러 등의 극단적 용어를 사용했지만 민심은 오히려 요지부동이다. 민주당은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에 오히려 뒤처지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오염수 공포 마케팅은 지지율 상승은커녕 하락을 앞당기는 자충수가 된 것이다.

공존 불투명총선 주도권 두고 진검승부

민주당 의총에 참석한 이 대표. 뉴시스
민주당 의총에 참석한 이 대표. 뉴시스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는 없다여의도 정치권의 오래된 격언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정치적 사심 없이 민주당의 총선승리를 위해 손을 맞잡는 것이다. 이른바 윈윈 시나리오다. 다만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고려할 때 민주당 전·현직 대표의 상호공존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총선 공천 주도권을 놓고 피비린내나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표와 이 전 대표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인 셈이다.

최대 관심사는 이 전 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다. 총선 출마설이 흘러나오지만 기류는 부정적이다. 이 전 대표는 귀국 전인 지난 12일 독일 베를린자유대 특강에서 내년 총선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을 비판하는 한편 이재명 대안론을 부각시키는 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윤석열정부 비판, () 이재명 대안론 모색의 단계별 전략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낙계를 포함한 비명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이 대표와 정치적 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을 당분간 자제하면서 때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과도한 이재명 흔들기로 여겨지면서 친명 vs 비명간 계파갈등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이 전 대표로서는 칼을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게 당 안팎의 광범위한 인식이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의 역할론이 자연스레 커지면서 정국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총선 국면으로 갈수록 비대위원장 수도권 선대위원장 서울 종로 출마 공동 선대위원장 등 역할론에 대한 갑론을박도 커질 전망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이낙연 전 대표는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정치인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유명한 대변인 출신으로 4선 중진에 당 대표는 물론 전남지사, 국무총리를 거치며 행정능력까지 겸비했다. 정치인으로서는 장관과 대선후보 빼고는 모든 것을 다했다. 남은 건 대통령 한 자리라면서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차기 대선의 전망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신중하고 꼼꼼한 성향의 이 전 대표가 현직인 이 대표와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에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싸울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아울러 호남 정치인이라는 꼬리표 또한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재명·이낙연 두 민주당 전현직 대표의 시선은 차기 대선에 고정돼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며 십자가를 질 수 있을 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정치적 능력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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