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 및 근로기준법의 이념과 취지에 더욱 부합하도록 유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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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근로기준법 제93조에서는 상시근로자 10인 이상인 사업장은 “취업규칙”을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취업규칙’은 사업(장)에서 전체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근로조건에 대한 기준을 정한 규범을 의미하며, 구체적인 근로조건(징계, 인사발령, 평가, 경조 휴가, 급여계산 등)을 정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에서 취업규칙과 관련한 중요한 판결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종전까지 인정해오던 취업규칙 변경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사건이다.

이 판결이 중요한 점은 기존까지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절차(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 규정)를 거치지 않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취업규칙 변경이 효력이 있다고 보았으나,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해당 법리가 폐기되어 향후 유사한 분쟁에 대한 판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5.11. 선고 2017다35588, 35595 병합)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  집단적 동의권 남용한 경우 예외적으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 효력 인정 

피고(회사,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제정해 전체 근로자에게 적용해 왔는데, 2003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해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04년 7월부터 피고의 사업장에 시행되자, 피고는 그 무렵 과장급 이상의 간부 사원에게만 적용되는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했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종전 취업규칙과는 달리 월 개근자에게 1일씩 부여하던 월차휴가제도를 폐기하고, 총 인정일수에 상한이 없던 연차휴가에 25일의 상한을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원고들(근로자)은 과장급 이상의 직위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로서 제1심에서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이 무효라는 주장을 하면서, 2004년부터 지급받지 못한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부당이득 반환으로 청구했다가, 제1심 패소 후 원심에서 2011년부터의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의 지급을 직접 구하는 청구를 추가했다. 

제1심(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종전 취업규칙에 따른 미지급 연월차휴가 수당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 원고가 패소했으나, 원심(서울고등법원)에서는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관련 부분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해, 미지급 연월차휴가수당 지급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사건의 쟁점 및 배경지식]
 
기존에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가 요구하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판단해 왔고, 이러한 종래 판례를 유지할 것인지가 이번 판결에서 있어서 쟁점이 됐다. 

취업규칙의 작성이나 변경이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해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하는 내용일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종래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작성이나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해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고, 이를 소위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라 했다.

결국, 종래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판례를 변경해 사회통념상 합리성 유무와 관계없이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을 무효로 볼 것인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의 판단 :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 폐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23.5.11. 선고 2017다35588, 35595 병합)의 다수 의견은 종래의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폐기하고,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기도 판단했다.

즉,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첫째,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대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은 헌법 제32조제3항(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에 근거하고, 근로기준법 제4조가 명시한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중요한 절차적 권리로, 변경되는 취업규칙 내용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이를 대체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둘째,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의 명문규정에 반하고, 헌법 정신과 근로기준법의 근본 취지, 근로조건의 노사대응결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셋째, 종전 판례가 들고 있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우며, 이로 인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되어 법적 불안정성이 크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넷째, 근로조건의 유연한 조정은 사용자에게 의한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로자의 동의를 구하는 사용자의 설득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 항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보면서,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동의가 없는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도 유효하다고 인정될 수 있다고 보면서 예외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한편,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를 제시했다. 법원이 제시한 “집단적 동의권 남용“이란 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이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측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다만, 법원은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의 입법 취지와 절차적 권리로서 집단적 동의권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집단적 동의권의 남용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번 판결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시, 근로자의 절차적 권리(집단적 동의권)가 침해됐다면 내용의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규칙이 정당화될 수 없어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했고, 이를 통해 근로기준법에 강행규정으로 정한 집단적 동의를 사회통념상 합리성으로 대체할 수 없음을 명시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유효요건을 법문대로 정립했다.

또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이 갖는 절차적 중요성을 강조해 사용자로서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근로조건 기준 결정에 관한 헌법 및 근로기준법의 이념과 취지에 더욱 부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근로자 측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 두어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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