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공명 느끼고 싶어 경기소리 배우기 시작”

전지연 
전지연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미래 전망이 밝은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경기소리가’를 꿈꾸는 10·20대 청소년들의 멘토로 전지연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수 전지연은 어릴 때 경기민요의 특징적인 소리 속에 반했다. 그러나 방송이나 라디오 매체에서 울리는 가사는 정확하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자신이 제대로 알고 불러서 사람들에게 소리의 공명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경기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경기소리 공부에 심취하게 됐고,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소리를 이수해 지금은 유명한 경기소리가로 우뚝 서게 됐다.

어릴 때부터 우리의 전통이나 가락, 이런 것들을 막연히 동경하던 전지연은 결국 경기소리에 자신의 청춘을 다 바치고 이제는 그의 인생 모든 이야기의 화두가 경기소리인 셈이 됐다.

현재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노래지도사과정 강사로 출강 중인 전지연은 장안대학교 연기영상학과 전임교수로 시작해서 실용음악과와 뮤지컬과의 전임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전지연
전지연

- 이은주 선생에게 경기민요를 이수할 때 경기민요란 어떤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말 그대로 과거 ‘우리 조상님들의 대중가요’라고 생각했어요. ‘백성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에요. 좀 더 이론적·예술적 가치로 표현하자면, 세계 나라마다 각각 노래의 리듬 즉 멜로디나 가사에 환경 문화적인 게 녹아 있거든요. 사설에 얹은 요들송 형태의 발성이 특징인 경기민요는 그중 가장 역사나 자연경관, 서민들의 희노애락 등등의 것들로 스토리가 탄탄하고, 음악적 완성도 및 예술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가 세계 유네스코에 지정됐듯이 우리 경기민요도 좀 더 조명을 받고 그에 따라 위치도 바로 섰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 지난해 향토음악을 발굴,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로 개최된 제20회 대한민국 창작향토가요제에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으셨는데요, 수상하게 된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좀 자화자찬인 것 같은데, 저는 한 30여 년 경기민요를 했어요. 그래서 우리 소리로 다져진 발성과 경기민요의 창법 등이 가요와 맞닿았을 때 가창력으로 분출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와 함께 음의 완급 조절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일단 저뿐만 아니라 국악 전공자들은 국악 전공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소리를 듣는 만큼 저도 국악 전공한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지연
전지연

- 장안대 연기영상학과 전임 교수였다가 2017년 가수로 데뷔하셨는데 진로를 바꾸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도 사람들이 ‘왜 철밥통을 유지하지 않고 가수로 전향했냐’고 걱정 어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바꾼 게 아니라, 경기소리를 하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국악인을 천대하며 기생, 광대라고 부르면서 예술인으로서의 대접도 안 하고 실기자들은 ‘무식하다’, ‘배움이 없다’는 등의 선입견을 보여 무척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소리를 하기 위한 경제적인 부분까지 감안해서 국악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 임용시험을 치른 거예요. 실기자들도 이론적 학습 면 또한 탁월할 수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운 좋게 그런 시도가 제 생활에 안정을 주었고 제가 경기소리를 하는 데 하나의 완장처럼 힘이 돼줬어요. 그리고 가수로 전환한 것은 그러한 제 역량들을 국악 무대에서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가수도 그런 역할의 또 하나의 과정으로서 우리가 흔히 즐긴다고 말하잖아요. 즐기려면 사람의 타이틀과 위치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도 있어야 하는데, 소리만 해서는 상업적으로 풀어서 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 성인 가요와 경기민요를 비교했을 때 경기민요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기민요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국악이나 성악적인 면에서 바라봤을 때도 가요는 악보를 기반으로 충실하게 부른단 말이죠. 그러니까 노래가 획일적이에요. 그리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요. 근데 민요는 소리를 하는 가창자 즉 노래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노래의 시김새의 붙임에 따라서 같은 사설, 가사를 노래하더라도 멋과 흥이 달라지는 것이 장점이에요. 근데 이것을 반대로 보면 가요는 악보를 보면서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지만, 민요는 오랜 시간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숙련돼야 하기 때문에 긴 시간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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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전승자들이 잘못된 문화재청의 행정으로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됐죠. 문화재청은 실기자들의 활동 환경을 확보하고 기록하며 홍보 및 후원하고 응원하면서 협력을 도모하는 기관이어야 하잖아요. 근데 ‘간섭하고 월권하는 행위로 변모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심사 자격이 의심스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번 사태에서 모 교수의 용역 보고서가 있는데, 거기에 서술된 것들을 보면 굉장히 오류투성이였어요. 오류투성이로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론을 참조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을 위배하고 있어요. 경기소리계는 국악계 혈통으로 위계로써 질서를 지키고 순응하고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작품 발표 활동이 많아야 한다는 거예요. 국악은 실적의 많고 적고가 예술의 정점에 다다르게 하는 게 아닌 만큼 실적이 많다고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국악은 계승을 실적으로 이루는 게 아니에요. 유전자가 있듯이 김 씨, 이 씨, 박 씨가 있고 어떤 물건에도 성향이 있듯이 소리에는 째가 있는 거예요. 소리 속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걸 통폐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이은주, 묵계월, 안비취 세 분의 문화재가 그동안 다 존중되면서 계승되었는데 통폐합이라는 허울 좋은 굴레로 지금 뭔가 기울어지고 몰아주기가 되는 상황이거든요. 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전문적인 예능인들이 윤색해서 창작한 소리로서 지금 잘 진행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런데 전혀 관계없는 문화재청 행정요원이 관리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물줄기 다 막아버리고 어떻게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룰 수 있겠어요. 마치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 발견 후 인디언 내쫓은 상황과 같은 거죠. 내쫓고 나서 나중에서야 보존한다, 어쩐다 하는데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인 거죠. 외양간만 있으면 뭐합니까? 소가 없는데…

- 경기민요를 잘하려면 어떤 자질과 역량, 소양이 필요한가요.

▲먼저 모방, 연습, 예의 이렇게 나눠볼게요. 모방으로 자질을 이끌어내고 연습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예의가 소양을 갖추게 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전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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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민요가이면서 현재는 국악인이자 대중가요 가수로서도 활동 중이신데,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경기민요가 모태죠. 가끔 사람들이 ‘너는 이것저것 하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아리랑을 예로 들면 과거 조선 이전에는 중국의 당하고로 시작돼서 템포가 굉장히 느렸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빨라져 지금은 월드컵 이후 윤도현의 아리랑, 즉 비트가 있는 아리랑으로 바뀌었잖아요. 이렇게 환경에 따라서 노래가 바뀌다 보니까, 저도 그런 시대 흐름에 맞춰가는 거죠. 그래서 가수라는 매개를 통해 경기민요를 대중에게 편안하고 익숙하게 거부감 없는 요소로 알릴 수 있도록 가수라는 직업을 활용하는 거예요. 요즘 각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국악 전공자들이 많이 나옴으로써 국악에 대한 게 조명되고, 이제는 ‘우리 것이 정말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며 팬들이 많이 찾아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하나의 가교역할로서 가수라는 직업을 선택한 거죠.

- 본인의 음악 세계와 음악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또한, 그것이 형성하게 된 계기나 배경도 곁들여주세요.

▲저는 음악이 모든 사물이나 생각의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감정과 사고의 표현이고 치료요소라는 게 제 가치관이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유년 시절부터 간단한 동작의 춤을 춘다거나 움직임, 흥얼거림 등 일상 속 모든 상황에서 리듬을 타는 걸 좋아했어요. 근거 없는 노래로 작사 작곡을 남발하고 혼자 꽤 만족하면서 음악에 대한 것들을 생활화했던 거 같아요. 울고 떼쓰다가도 음악 소리 나면 울면서 춤을 출 정도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정말 오랫동안 음악이 삶이고 삶이 음악인 게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경기민요가이자 대중가수로 활동하시면서 언제가 가장 뿌듯하고 행복하시나요.

▲사람들이 저보고 “국악 했지요?”라고 얼른 알아봤을 때 ‘국악이 참 확실하고 명확하게 인지되고 있구나’라고 생각돼 기쁘고요. “목소리가 특이하다. 가창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해줄 때 제가 경기민요를 했던 사람이고 소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아 전공자로서 자부심과 뿌듯함이 확 몰려와요.

- 경기민요를 대중들이 즐길 수 있도록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 무엇이든 낯설면 지루하고 거부감이 들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대중들에게 익숙한 악기 편성으로 리듬 비트 등을 편곡해서 경기민요에 얹으면 사람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카메라 앞에 자주 서지 않는 사람이 자주 서다 보면, 처음에 낯설어 어색해하다가도 나중에는 유연해지잖아요. 노래도 그런 노출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주 들을 수 있도록 시도하는 활동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전문 창악인들의 악기들이 많이 뒷받침해줘야 하고, 동아리 같은 모임도 활성화하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 과거로부터 현재 우리나라 대중의 음악 소비패턴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과거에는 주로 듣는 감상 위주의 소비패턴이었다면 요즘은 ‘전국민의 가수화’라고 할 정도로 부르는 것을 즐기고 오디션, 노래자랑, 가요제 등의 소비패턴을 좋아하고 있어요. 제가 미래 비전으로 보자면 앞으로는 대중음악은 이제 말 그대로 대중음악이에요. 그래서 아티스트의 전유물이 아닌 음악의 대중화가 이뤄져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랑해’라는 단어조차도 그냥 말할 것 같지 않아요. 무미건조함에서 벗어나 사랑의 음률로 높이를 내주고 거기에 리듬을 넣어서 멜로디로 엮어 노래로 만들고 음악이 될 수 있게 할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경기소리가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경기민요는 전통이라는 맥락을 중요시하는 만큼 전통 악기를 좀 다뤘으면 좋겠어요. 장구, 가야금, 해금 등 우리 전통 악기를 배워서 경기민요와 밀접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죠. 경기민요를 흡수하는 데 악기가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경기민요는 되게 매력 있는 소리예요. 트로트에서 주현미 씨와 김용림 씨 창법이 경기민요 소리예요. 달달 굴러가는 소리가 경기소리이고 이은하 씨처럼 힘 있고 굵직한 목소리의 노래는 판소리, 그리고 나훈아 씨는 노래 부를 때 꺾잖아요. 유난히 꺾는소리는 서도 창법으로 분류되니 비교해 보는 것도 노래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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