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주면 영구적으로 줘야 한다는 신앙적 확신은 누가 심어준 것일까.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표에 눈이 멀어 약속을 남발했다가 뒷감당을 버거워하는 복지 이야기다.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3년 예산안 총지출 639조원 중 무려 53.5%(3418,000억원)가 의무지출이다.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되어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도 없는 예산이다. 이중 복지분야 법정지출은 1546,000억 원으로 의무지출의 45.2%에 달한다. 기초연금에만 2023년기준 225,492억원이 들어간다. 생계급여를 비롯한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출도 20조에 이른다. 여기다 각종 장려금, 지원금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우리는 전국민의 공무원화가 진작에 만들어진 셈이다. 다만 공무(公務)를 보지 않고도 사실상의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앞으로 의무지출 비중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심각한 상황이다. 2026년까지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최악 시나리오2060년 의무지출 비중이 80%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제도를 개선해나가야만 한다. 기초연금 문제만 한번 살펴보자.

노인을 위한 연금제도의 당초 목적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65세이상 현세대 노인을 위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65세이상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해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게 된 것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온 어르신들에 대한 현세대의 보답목적이었다. 결국 기초연금은, 어려운 시기에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지만 국민연금 가입도 못한 노인들을 위한 한시적 제도로 설계된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제도가 국민 의무가입으로 바뀐 1998년을 기점으로 20년 전이 되는 1978년생(2023년기준 만 나이 45)이후 출생자부터는 기초연금제도를 적용할 이유가 없다. 그게 제도 도입 취지에도 맞다. 그렇지 않고 계속 방치하다 나중에 통일되면 북한 노인들까지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 2023년기준 북한 총인구 2,5709천명 중 65세이상 노인이 2745천여 명에 이른다. 때 이른 걱정일지 모르겠지만, 북한 노인들에게 30만원씩만 줘도 연간 10조 원 이상이 새로 들어간다. 게다가 2021년기준 북한주민 1인당 GNI가 고작 142만 원이다. 결국 북한주민 대부분이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된다는 의미다. 굳이 북한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현재와 같은 기초연금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11년 전인 201275일자 한 중앙일간지 사설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사실 현재의 우리 노인들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은, 한창 일해 벌어들인 소득의 대부분을 자식교육 뒷바라지, 결혼비용 마련에 쏟아부어 온 비정상적 세태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식 대학 보내기까지 학원비, 과외비를 대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비와 용돈에, 어학연수를 비롯한 취업 준비 비용까지 대야 한다. 그 다음엔 혼사(婚事)가 기다린다. 아들 가진 부모는 자식 신혼집 마련해주느라 자기 집을 팔고, 딸 가진 부모 역시 예단 비용 대느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까지 한다. 자식들을 이렇게까지 돌봐야 한다는 강박(强迫)관념에 쫓기는 부모는 한국 부모밖에 없고, 부모가 노후에 길거리에 나앉아도 부모 돈으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집을 마련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는 자식들은 한국 젊은이밖에 없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세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부모가 자신들의 미래까지 저당 잡혀 자식들의 뒤를 봐줘야 하고, 자식들은 부모의 그런 희생을 당연시하는 잘못된 풍조는 반드시 깨부숴야만 한다.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준비하고, 자식들에게 퍼주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독립적 문화를 확고히 하는 일이야말로,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가장 현실적이고 부담이 적은 방법이다. 그때를 마냥 기다리기 전에, 기초연금 제도부터 당초의 취지에 맞게 뜯어고쳐야만 한다.

데이터 전문가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자신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더 큰 위협은 우리가 어떤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위험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폭증하는 복지비용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현세대도 힘이 들고 미래세대도 고통받게 된다. 그 뻔한 길을 왜 변함없이 걸어가야 한단 말인가. 시대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때그때 지출해야 할 재정의 변동폭도 그만큼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의무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재량지출은 거꾸로 쪼그라드는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국가적, 국민적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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