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직 걸고 총·대선 받고? 원희룡·박민식 '배팅' 속 정치적 손익 계산  '분주'
직 걸기 원조? '검수완박' 저지에 검찰총장직 건 尹 대통령

(왼쪽부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일국의 장관이 되는 길은 녹록지 않다. 후보자 개인과 직계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렇다 보니 인사청문회 과정은 항상 좋은 공직자를 선별하기 위한 목적을 상기시키면서도 마녀사냥에 가까운 인신공격이 벌어지는 방법에 대한 회의감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만큼 장관직이 갖는 무게감은 묵직하다. 그럴수록 최근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 장관들이 연이어 직(職)을 거는 풍경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의 말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한 수사로써 장관직을 소비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취임 한 달 만에 장관직 내건 朴 장관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시켰다. 그 뒤 국가보훈부의 초대 수장으로 지명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인사청문회를 거친 끝에 정식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박 장관은 임명 한 달 만에 두 가지 사안에 장관직을 걸었다. 

우선 고(故) 백선엽 장군의 친일파 논란이다. 백 장군은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에서 1사단장을 맡아 북한군 3개 사단을 격파해 국군의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지킨 영웅이다. 하지만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시절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이와 관련 2019년경 당시 보훈처는 친일반민족행위진사유명위회가 정한 명단에 따라 백 장군의 보훈처와 현충원 홈페이지의 안장자 기록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삽입했다. 현재 박 장관은 해당 기록의 삭제를 추진하는 중이다. 

이에 박 장관은 지난 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그런데 저는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백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가 제 직을 걸고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백 장군의 독립군 토벌의 진위 여부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 표기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는 정치적 환경에 의한 조치라는 의심을 표출했다. 

현재 박 장관은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 삭제와 관련해 검토 중이며 곧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박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의 추진을 반대하는 것에도 장관직을 내걸었다. 

민주유공자법은 이미 관련 법령을 통해 예우를 받고 있는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들 이외의 유신 반대투쟁, 6월 민주항쟁 및 부마 민주항쟁 등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및 유가족들에 대한 예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사 중인 민주유공자법을 두고 민주당은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인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을 합당하게 예우해야 한다며 법안을 추진하는 중이다.  반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일부 민주화운동은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민주당 내 주류 세력인 586 운동권이 스스로 혜택을 입는 '셀프 특혜'라고 지적하며 대치하는 상황이다. 

이에 박 장관은 앞서 출연한 CBS 라디오에서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유공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지금 상태로라면 저는 제가 국가보훈부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당연히 저는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양평 고속道 백지화하며 장관직·정치생명 내건 元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더 큰 한 수를 던졌다. 원 장관은 지난 6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유는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를 악마화 하려는 목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해 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정쟁화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은 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종점이 양평군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된 것을 두고 김건희 여사 일가의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사업은 이미 2년 전 양서면 종점안으로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지만, 지난 5월 김 여사 일가 소유의 땅이 위치한 강성면으로 사업의 종점이 변경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원 장관은 지난 6일 당정협의회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선동 프레임이 작동하는 동안 국력을 낭비할 수 없다"며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업 추진 자체를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원 장관은 이날 "전적으로 제가 책임진다. 정치생명, 장관직을 걸었다"며 "민주당은 간판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을 원 장관의 폭탄 발언에 발칵 뒤집혔다. "국책사업이 장난이냐"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현재도 여·야의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반면 여권은 원 장관의 주장에 기조를 맞췄다. 민주당이 선동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재추진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초강수를 둔 원 장관의 득실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상태다. 원 장관은 정치에 입문한 한나라당 시절부터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며 합리적인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지금의 백지화 발언은 국무위원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여권의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원 장관은 백지화 발언 이후 지지자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았다.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는 '원희룡 장관님 힘내세요', '굳세어라 원희룡','원희룡 장관님 항상 응원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이 60개가량 놓였으며, 그 행렬은 50M까지 이어졌다. 보수 지지층의 입장에서 원 장관은 자신의 직을 걸고 민주당의 선동을 단칼에 끊어낸 결단력 있는 장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야권 한 관계자는 지난 10일 본지와의 취재에서 "원 장관은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백지화 발언 이후 양평 고속도로 사업 무산의 책임이 민주당을 향하게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일 전진선 양평군수와 양평군민들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민주당사를 방문해 양평 고속도로 사업 추진을 가로막는 민주당의 모든 행위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尹 대통령 스타일대로? 총선 출구전략?

(왼쪽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뉴시스]

박 장관과 원 장관이 연이어 직을 건다는 말을 이어가자 세간의 이목은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의 정부 들어 벌써 세 명의 장관이 자신의 직을 건 현상에 대한 해석이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장관이 직을 건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임명권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정치인으로서의 삶보다 검사로서의 삶이 더 길었던 윤 대통령이 직을 거는 결단력 있는 모습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 관련 영화에서 확신에 찬 검사가 자신의 직을 거는 모습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검찰 클리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검찰총장 시절의 윤 대통령은 2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먼저 직을 건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안을 추진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장관들의 직 걸기의 선두주자가 윤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인 점도 그렇다. 한 장관은 지난해 10월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장관직을 걸었다.

당시 김 의원은 지난해 7월경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들과 청담동의 고급 바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한 장관은 "저는 다 걸겠다. 의원님 무엇을 걸 것이냐. 구체적으로 얘기하겠다. 저는 법무부 장관직 포함해가지고 제가 앞으로 어떤 종류의 공직이든 다 걸겠다. 의원님 무엇을 걸 것이냐. 거는 것 좋아하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그 뒤 한 장관은 김 의원과 유튜브 매체 '더탐사' 관계자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김 의원의 의혹 제기를) 적정 수준에서 무마할 수가 없었던 것이 한 장관이 굉장히 세게 얘기했기 때문"이라며 "한 장관이 그렇게까지 나가니까 김 의원이 머뭇머뭇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 일에 대한 진실규명을 따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장관들의 직 걸기를 두고 나오는 또 다른 해석은 총선을 위한 출구전략이란 평가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요즘 보면 국회로 나가려고 하는 현직 장관들이 직을 걸고 뭘 하겠다고 한다"며 "선거운동하려고 빨리 나가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앞서 인사청문회 시기부터 박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 여부는 핵심적인 질의 사항이었다. 정치인 출신 박 장관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다면 장관직을 수행할 시간은 6개월에 불과하다. 당시 박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직접적인 불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아울러 박 장관은 지난 4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들이 당신은 무슨 자리에 가는 게 역할을 참 잘한다 그러면 거기에 따르는 것이 정치인, 또 공직자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박 장관은 본인이 "국민이 원할 정도의 정치인은 아니다"면서도 "그런 필요가 사람들이 있다라고 하면 또 그때 생각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반면 원 장관의 경우 여권의 '잠룡'으로 불리는 만큼 백지화라는 초강수가 총선을 넘어 대선을 위한 노림수라는 시각도 나온다. 합리적 정치인 이미지에는 타격이 올 수 있으나, 대선주자 원희룡의 약점으로 분류되는 보수층의 지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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