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0<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80~89세 고령자는 1684,711명에 이르고, 90~99세 고령자가 234,175, 100세 이상이 5,624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80세이상 고령자가 2백만 명에 이른다는 의미다. 이들이 모두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서비스 이용현황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요양병원 입원 환자 수가 393,989, 요양원 입소자가 15만여 명으로 나타났다. 매년 55만 명 이상이 요양시설에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60.2%는 가정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76.2%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한 기사를 접했다. 요양원에 부모 면회를 갔다가 누워계신 아버지 입안에 살아있는 구더기들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는 내용(구강 구더기증)이었다. 환자 가족은 요양원 측의 방치 때문으로 보고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귀나 코, 입으로 파리가 들어가서 알을 까면 입이나 귀, 심지어 뇌에까지 구더기가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이런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차마 상상하기도 역겹고 끔찍한 일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장수가 오히려 재앙인 세상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재앙적 연명치료를 줄이기 위해 지난 2017<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치료결정법)>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하고 호스피스에 관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인원이 201810529건이던 것이 20236월말현재 1841,795건으로 크게 늘었다. 말기환자 등의 의사(意思)에 따라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한 연명의료계획서등록 건수도 201814,593건이던 것이 20236월말기준 116,353건으로 늘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한 이행 건수도 201831,765건이던 것이 금년 6월말기준 291,82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과정은 여전히 까다롭다. 의사 2인의 임종과정 판단이 있어야 하고, 환자의 의사(意思) 확인(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가족 2인 진술)도 있어야 한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가족 전원의 합의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임종 직전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법 없이 허용하고 있다. OECD 회원국(38개국) 중 의사(醫師) 조력자살을 허용한 국가는 13개국에 이른다. 아시아권 중 대만은 안녕완화의료조례, 일본은 후생노동청 가이드라인으로 제도화 되어 있다.

나아가 미국 및 유럽국가들은 연명의료 중단 대상환자 확대 수준을 넘어 의사 조력자살까지도 법률 등으로 허용하고 있다. 특히 네델란드, 룩셈부르크, 캐나다, 호주의 2개 주(빅토리아주 등)1단계 임종기, 2단계 말기, 3단계 식물상태, 치매 과정에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며, 4단계 의사 조력자살, 5단계 안락사까지 모두 허용되고 있다. 스위스, 뉴질랜드, 스페인, 미국 11개 주, 호주 4개 주는 안락사를 제외한 나머지 4단계까지 모두 허용된다. 우리나라는 1단계 임종기 연명의료 중단만 가능하고, 나머지 단계의 모든 행위가 불법인 상황이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순 없지만, 삶을 종결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마땅하고, 그것이 우리 헌법정신이다. ‘노년 유니온’,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등 노인단체들도 적극적 안락사법 도입으로 자기 결정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9, 2021, 2022년 등 세 번의 여론조사에서 의사 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80%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적이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80대 아버지와 그를 간병하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앙드레 뒤솔리에와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2022년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 브래드 프레이저(Brad Fraser)2013년 캐나다에서 발표한 연극 <Kill Me Now>를 원작으로 한 장현성, 안승균 주연의 영화 <나를 죽여줘>는 각각 조력자살, 안락사를 다룬 영화다. 원치 않는 연명은 가장 먼저 환자 자신 그리고 가족과 미래세대 모두에게 고통이고 부담이다. 태어나는 것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지만, 죽음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존엄한 존재,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제도의 장벽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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