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사회단체 "삼성 합병이 원인, 이재용 책임론" 주장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 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소송을 제기하기로 하면서 재판이 새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노총, 재벌개혁경제민주화네트워크, 참여연대, 한국노총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이 이번 소송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놔 귀추가 주목된다.

- "국민연금은 사실상 국가기관"…엘리엇 중재 판정문에 다툴 여지
- 엘리엇 "부패에 관용 잘못된 메시지…소송제기는 혈세 낭비"


법무부는 지난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엘리엇 '일부 승소' 취지의 판정을 내린 지 28일 만이다. 정부는 판정 불복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의'관할 위반'을 들었다. 중재판정부의 '재판 대상'이 아닌데도 판정을 내렸다는 취지다.

재판 대상 아닌데도 판정 내려…불복 신청

법무부에 따르면 국가기관이 아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정부가 채택한 조치가 아닐뿐더러, 그 책임이 한국 정부에 귀속되지도 않으므로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낸 합병무효 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위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재판정부가 국정농단 사건의 형사 판결을 상당 부분 인용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심판받은 형사판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당시 정부가 엘리엇의 삼성물산 투자와 '관련성'이 있다는 중재판정부의 판단도 문제 삼았다.

법무부는 "소수 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게 상법상 대원칙"이라며 "소수 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다른 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처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러한 판정을 인정할 경우 해외 투자자들의 악의적인 ISDS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소송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임론이 불거져 이목이 쏠린다.

노동시민단체들은 최근 '엘리엇 1300억원 손해배상, 이재용·박근혜에게 삼성 불법 합병 책임 추궁하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배포한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패소함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손실 5358만 달러(약 690억 원)에 더해 지연이자와 분쟁 비용 등 약 1300억원에 이르는 손해액을, 국고를 들여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이번 엘리엇 ISDS 결정 외에도 메이슨캐피탈이 제기한 ISDS도 결정일 다가오고 있어 대한민국 정부가 초국적 헤지펀드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당시 뇌물공여, 횡령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이재용은 1년 6개월 만에 가석방됐고, 지난해 8월 사면돼 완전히 복권돼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선출됐고 당시 뇌물을 받았던 박 전 대통령 역시 사면 복권됐다"며 "그러나 이들의 정경유착으로 인해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를 보유했던 국민연금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의 손실보다도 훨씬 큰 손실을 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외국자본의 손해배상청구를 들어주기 위해 국민의 복리를 위해 쓰여야 할 국고까지 낭비하게 됐으니 그 경제적 책임은 정경유착과 국정농단 자행한 이들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라며 "엘리엇 등이 제기한 ISDS 결과 때문에 향후 막대한 국고 지출이 진행된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이러한 사태를 야기했던 이재용 삼성 회장과 삼성물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관련자들에 대해 구상권 청구나 손해배상청구 등 피해를 회수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엘리엇 “한국의 취소소송, 헛된 노력”

엘리엇 측은 이번 법무부의 항소 방침에 대해 "헛된 노력으로 끝날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엘리엇 측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중재판정부는 5년간의 긴 소송 끝에 만장일치로 모든 실질적 쟁점에서 대한민국의 주장을 기각한바, 이에 대한 불복은 대한민국이 부패에 관용적인 나라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공정하고 책임 있는 시장으로 비치기 위한 목표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엘리엇 측은 "삼성과 지난 정부의 행위로 인해 기관 투자자들과 연금 가입자 등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피해를 보았다"며 "이 사건의 핵심이 된 엘리엇에 대한 불법적 견제가 아니었다면 이들 한국 투자자는 모두 상당한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불복은 엘리엇에 대한 반대라는 명목으로 삼성과 지난 정부가 합심해 소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국내외 주주들을 꼭두각시로 이용하고 그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엘리엇 측은 "대한민국이 개시한 법적 절차는 결국 헛된 노력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된다"며 "대한민국은 중재 절차에서 이미 전개했던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주장들은 중재판정부가 이미 검토하고 기각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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