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타락’ 野 586그룹, 22대 총선 ‘현역 물갈이’ 우선순위 지목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뉴시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도덕성 회복’이라는 난제를 두고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년 22대 총선까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개인 사법리스크는 물론,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등 야권발 부정‧비리 이슈가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 전면 쇄신이 시급한 지경이다. 하지만 167석 거대정당은 야심차게 띄운 혁신위원회의 1호 쇄신안에서부터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며 혁신 진정성을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골수 주류인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인사 상당수가 이에 침묵하고 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기치를 내걸었던 86그룹의 본질은 단연 ‘도덕성’과 ‘기득권에 대한 저항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상당부분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끌며 순도 높은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했던 386그룹과 거대야당의 골수 엘리트 정치집단으로 거듭난 586그룹의 면면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86그룹의 기득권화와 도덕적 해이는 곧 민주정당의 ‘자기부정’으로 귀결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22대 총선은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민주당과 그 뿌리세력인 86그룹에 대한 심판론이 관통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2대 총선, ‘586 물갈이’ 여부도 주요 변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들은 저마다 여야 유불리와 이에 영향을 끼칠 변수 등에 대한 다양한 관측들을 쏟아내고 있다. 당정 지지율, 이재명 사법리스크, 친윤(친윤석열) 공천, 제3지대 신당 출범, 중도층 민심 향배 등을 주요 지표로 총선 판세를 가늠하는 시각이 많다. 

또 일각에선 22대 국회의원선거의 핵심 변수로 여의도 정치판의 시대적 흐름을 주목하는 관점이 엄존한다. 여의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약 15년 동안 이른바 ‘3김(金) 전성시대’를 맞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2003년부터 문재인 집권기인 2022년까지 20년가량을 민주화 주역인 86 운동권이 386→486→586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여의도 정치를 주도했다.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합창단이 '바위섬' 노래 합창을 하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합창단이 '바위섬' 노래 합창을 하고 있다. [뉴시스]

크게 NL‧PD 계열로 분류되는 운동권은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계열 소수정당으로 흩어져 현 야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과거 운동권 출신이지만 우파로 전향한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은 MB(이명박) 정권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보수진영에서 일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원조 윤핵관’ 장제원‧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이 대표적 뉴라이트계 현역 정치인으로 꼽힌다. 다만 탈(脫)운동권 우파집단인 뉴라이트계는 엄밀히 따지면 86 운동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중평이다.  

이처럼 86 운동권 출신들이 여의도 정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세대교체’와 ‘정치혁신’이 여야 정치권 새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민주당의 원류인 86 운동권이 진보진영에서 갖는 상징성과 입지가 크게 희석된 상황이다. 

선거철이면 민주당 안팎에서 분출하는 ‘586 용퇴론’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과거 민주화 정착과 민주정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86 운동권이 어느덧 ‘586’으로 불리며 기득권과 적폐를 상징하는 ‘고인물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내부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민주당 주도로 민주유공자 예우법이 강행 처리되면서 불거진 ‘586 셀프특혜’ 논란도 운동권의 기득권 논리와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안티 586’을 자처하며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586그룹의 재선을 반드시 저지한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공언했다. DJ(김대중)‧노무현 시절 민주당과 달리 이재명호 민주당은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와 도덕성이 망실됐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저의 정체성, 그리고 다음 총선의 제1차 전선은 너무 명확하다. 586 운동권 퇴진”이라며 “다음 총선에서 586 선배들이 국회에서 떠나서 최대한 많은 분들이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총선에서도 586 운동권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을 해야 될 이유를 저는 찾지 못하겠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2차 자진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2차 자진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野 586 운동권의 현 주소

지난 4월 정치권을 강타한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은 당내 586그룹에게 사실상 사형선고에 가까운 치명상이 됐다. 민주당을 탈당한 ‘586 맏형’ 송영길 전 대표가 논란의 중심에 있고, 그런 그를 적극 옹호하고 나선 것도 민주당 현역 586을 대표하는 우상호 의원과 김민석 정책위의장이었다. 이들 3인방은 지난 2000년 5.18 민주화운동 전야제 당일 망월동 참배 후 단란주점에서 술판을 벌인 사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민주당 586그룹의 흑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현직 의원들의 경우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과거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고, 김의겸 의원은 재개발 부동산 투기로 ‘흑석 선생’이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달았다. ‘보좌관 성추행’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박완주 의원도 운동권 주축 인사로 꼽힌다.

비현역 운동권 인사들의 어두운 면면도 재조명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녀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며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논외로 일명 ‘조국 키즈’로 불렸던 무소속 김남국 의원은 거액의 가상화폐 거래 논란으로 현재 국회 제명 중징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민주 운동권의 ‘위선 DNA’를 계승했다는 혹평도 나온다. 이 밖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추문, 은수미 전 성남시장의 수사기밀 부당거래 등도 한 때 ‘민주투사’로 추앙받았던 586 운동권에 대한 정계 퇴진 여론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4.27판문점선언 5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4.27판문점선언 5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586 대표주자’ 임종석, ‘총선 출마’ 띄운 까닭  

이에 지난 20여 년간 민주당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한 586그룹의 정치적 입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풍전등화 처지에 놓였다는 정계 분석이 파다하다. 기존 586 용퇴론에서 더 나아가 여야를 넘나드는 ‘586 총선 손절론’으로 확장됨에 따라, 내년 총선을 기해 586 운동권이 사실상 폐족(廢族)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세대교체 차원에서 97(90년대 학번‧70년대생)세대가 차기 국회의원선거에서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당내 ‘젊은피 수혈론’도 적지않다. 

이런 가운데, 과거 DJ정권 시절 86 운동권의 정계 진출 물꼬를 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최근 행보가 주목된다. 그는 최근 민주당 강서을 지역위원회 명사 특강에서 현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며 “다시 국민과 손잡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총선 출사표를 낸 셈이다.

이는 단순 현실정치 복귀 암시를 넘어 구 야권 지지층의 감성을 자극하며 운동권을 향한 지지와 결집을 호소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를 통해 최근 야권에서 급격하게 입지가 쪼그라든 586 운동권의 재활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

임 전 실장에 정통한 한 야권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은 586 운동권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라며 “그런 그가 침묵을 깨고 총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현실정치 복귀보다 과거 민주화 운동에 동참한 86그룹의 위상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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