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빨간불에는 멈추고 파란불에는 걷는다는 일련의 사회적 메커니즘은 커다란 의식 없이 내가 문제로 여기고 있는 일들에 대해 과감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여름의, 그 날도 그랬다. 늘 그래왔듯, 다른 문제에 골똘히 생각하며 어느 골목길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는데 하늘에서 물방울이 쏟아지더니, 몇 초 만에 엄청난 소나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놀라, 허둥지둥 눈을 들어 잠시나마 비를 피할 곳을 찾아봤다. 횡단보도를 건너 20m 정도 앞에 보이는 상가.

순간 그 상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횡단보도, 그리고 우두커니 서있는 신호등을 봤다. 아직 빨간불. 대각선 신호등과 좌측 신호등, 그리고 우측에서 띄엄띄엄 오는 차들의 속도와 방향을 따져보며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뛸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우측에서 내 쪽으로 돌진하고 있는 승용차로 인해 나의 시도는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서 허둥지둥 대던 두 소녀가 비를 피해야겠단 일념으로 횡단보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고,(엄청난 폭우로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마주 오던 승용차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소녀를 피해보행자 도로로 급커브를 시도하였으며 보행하고 있던 또 다른 이들을 덮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단횡단을 하던 두 소녀는 갑작스러운 승용차의 출현에 깜짝 놀라 도로중앙에서 주저앉았다.

이후 소녀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화가 난 운전자를 피해 도망가듯 내달리던 두 소녀는 또 한번 돌진해 오던 승용차의 급커브를 유도했고, 순식간에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소녀들은 빗속으로 사라졌다. 도로는 불과 몇 초 만에 다시 원활하게 소통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먹구름 속으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지만, 그때 그 상황 속에 있었던 우리 모두는 예전과 달라졌을 것이다. 소녀들은 짧은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운전자들은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를 피해 신호를 위반할 사례가 늘어나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운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난 한 가지를 배웠다. 그 소녀들처럼,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시시때때로 가지각색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유연성과 신중함, 그리고 정당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계획했던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철학자 에머슨은 ‘꼭대기의 높이는 기초의 넓이에 달려있다’ 고 말하며, 꼭대기가 위태롭지 않으려면, 기초를 넓히며 탄탄하게 만드는 자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물론,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일게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졌다고 쉽게 무단횡단을 하고,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는 신중함이 없다면, 위태로운 돌탑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안용성 자기경영컨설팅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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