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서 사대(事大)의 예를 다했고, 베이징대 강연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와 ‘대국’으로, 한국을 ‘작은 나라’로 지칭한 문 대통령의 연설은 중국에 대한 ‘신(新)사대주의 선언’이었다.

한중 정상회담 8개월 전인 2017년 4월. 시진핑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망언을 했다. 그러나 진보적이라던 강단사학계는 시진핑의 문제 발언에 대해 일제히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강단 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작한 ‘식민사학’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친중 사대주의 선언’과 ‘친일 식민사학 카르텔’를 지하에 계신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단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요, 사학자요, 언론인이다.

1880년 대전광역시에서 신광식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고령, 범옹(泛翁) 신숙주의 후손이다. 8세에 한시를 지었고, 14세에 <사서삼경>을 마친 신동이었다. 1897년 성균관에 들어가 1905년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출셋길을 내던지고 재야의 길을 걸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황성신문> 논설기자,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며 <이태리건국삼걸전>을 번역 출간한 후 한국 역사의 3걸(三傑)로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의 전기>를 집필하여 민족적 위기를 타개할 영웅의 출현을 대망하는 ‘영웅사관(英雄史觀)’을 폈다.

경술국치(1910년)로 나라를 빼앗기자 30세에 <동사강목>을 몸에 지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 만주와 백두산 일대 부여, 고구려, 발해 유적지 등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했다.

1919년에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나, 곧 탈퇴하여 베이징으로 근거지를 옮겨 고궁도서관의 비장도서(秘藏圖書)를 섭렵하고 만몽지방(滿蒙地方)의 고적(古蹟)을 답사하며 우리 고대사의 새로운 체계화를 시도했다.

1923년에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을 제시한 <조선혁명선언>을 썼다. 1927년에 신간회와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한 이후 자강론→민족주의→아나키즘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변천 과정을 보여줬다.

단재는 1928년 5월 독립운동자금 조달차 대만 기륭항(基隆港)에 갔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旅順)감옥에 복역 중 1936년 2월 뇌일혈로 순국했다.

단재는 지인들에게 “생전에 광복을 못 볼진대 왜놈들의 발끝에 차이지 않게 유골을 화장해 바다에 띄워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서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독사신론>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단재는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정립했다.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 역사관’은 물론 일제의 왜곡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는 우리의 고대사를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체계적인 사실로 정리했다.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중심으로 보았으며, 우리 역사의 무대를 한반도에서 중국의 동북지역과 요서지역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적으로 과소평가하는 등의 역사 서술을 하여 객관성을 잃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일제 침략에 필봉(筆鋒)으로 맞서며 우리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한 단재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風前燈火顯神童(풍전등화현신동) 나라가 기울어가는 구한말에 나타난 신동이었고

捨舊圖新在野雄(사구도신재야웅) 성리학을 탈피 근대사상 정립한 재야의 영웅 되었네

三傑戡難求族更(삼걸감난구족갱) 세 영웅의 전기를 써 한민족을 한결같이 단결시켰고

一心抱願復權衷(일심포원복권충) 한마음으로 국권회복의 소원을 품어 정성을 쏟았네

植民打破文章力(식민타파문장력) 식민 타파를 위해 뛰어난 문장으로 힘을 썼고

事大除根竹帛功(사대제근죽백공) 사대주의 뿌리를 제거하는 민족사관의 공을 세웠네

死也古園生死劇(사야고원생사극) 죽어서 고국에 돌아오니 생사(인간세상)가 비극이고

哀哀苦節萬秋崇(애애고절만추숭) 슬프구나! 변하지 않은 굳은 절개 만세토록 존숭받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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