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혹은 때늦은 논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간의 그림자로 본다면, 새로운 시작의 기준점은 대부분 시간의 가운데에 드리워져 있다. 반복되는 선거의 시간영역에서 변화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도변화를 확정 짓는 우리 정치 시스템의 후진성을 생각하면, 현행 지방자치법 제108(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임기)의 제한 규정을 지금쯤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3기 내에서만 계속 재임(在任)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에겐 이 제한을 두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국민이 이것을 지방자치 개혁 차원에서 요구한 적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권(더불어민주당)에서 다시 거론되는 것이 국회의원 동일지역구 4선연임 금지다. 자꾸 딴 생각을 하니 계속해서 정치개혁의 본질을 흐리는 무리수가 나오는 것이다.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194410월 음독자살한 사막의 여우에르빈 롬멜 원수에게는 만프레드 롬멜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만프레드는 독일 공군의 일반병으로 입대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고, 그때 그의 나이 16세였다. 탈영 후 프랑스군에 항복한 만프레드는 전쟁이 끝나자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고향인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와 튀빙겐대학에서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변호사로 잠시 일하다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부르크 주정부의 공무원이 됐다. 그는 1974년 슈투트가르트 시장에 당선되었고, 이후 무려 22년간(1974~1996) 시장직에 헌신했다. 우리 상황에 비유하면 6선연임 민선시장이었던 셈이다. 2013년 그가 84세로 사망하자, 슈투트가르트시는 2014년에 그를 기념하여 슈투트가르트 공항을 만프레드 롬멜 공항으로 명명했다. 우리 국회에도 박병석, 천정배, 김무성, 정세균, 이상득, 박희태, 박관용, 김종호, 이한동, 정석모, 채문식, 김은하, 구태회, 현오봉, 정성태, 윤제술 전의원이 각각 6선연임을 했고, 정몽준 전의원이 7선연임을 했으며, 정일형 전의원이 8선연임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유독 지방자치단체장만 3선초과 연임제한 규정을 만든 이유란 것이 군색하다. 현직 단체장이 다른 후보자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이를 견제할 수단이 없고, 연임을 제한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과 지역 토착비리 근절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단체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면 정당의 공천을 통해서도 일정 부분 제어할 수 있다. 시민운동을 통해 압박하는 방법도 있다. 더구나 그런 논리라면 국회의원, 지방의원도 자치단체장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존경받고 신망받는 유능한 사람이라면 5, 10선 연임을 하건 상관없어야 한다. 오히려 그런 분들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자치단체와 주민의 입장에서도 필요하다. 실제로 경북 안동시 이재갑 시의원은 현재 9선연임을 하고 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장 3선이상 연임제한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63 의견으로 합헌 판단을 한 적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다른 후보에 비해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지만 견제수단은 미흡하다.”, “3기 연속 선출됐더라도 한번 걸러 다시 입후보할 수 있으므로 지나친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만 다른 후보에 비해 선거에서 유리하고,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지만 견제 수단은 미흡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연임제한에 걸린 3선 자치단체장이라면 빠르면 1~2년 안에 레임덕이 올 것이다. 연이어 도전할 가능성이 사라진 단체장 아래서 일하는 공무원 역시 열정을 쏟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자치단체장 자신도 굳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주민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체장도 사람인데 무슨 열정과 의욕이 생길 수 있을까. 차라리 정당에서 재임기간 동안의 활동을 평가해 공천을 안 주면 되는데,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굳이 자치단체장만 구분해 3선까지만 하도록 강제할 이유가 없다. 시민사회의 역량과 정당의 공천시스템 등 환경과 제도의 감시기능을 신뢰하고, 자치단체장에게 가해진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판단된다. 다음 지방선거까지 3년이나 남았지만, 제도를 마련하고 현실에 적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정치적 환경을 고려할 때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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