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떨고 있다. 사실상 다수 의석을 앞세운 거대 야당의 무리한 탄핵 추진이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헌정 사상 첫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심판은 기각으로 마무리됐다.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 탄핵 인용 이후 국정주도권을 장악한 뒤 윤석열정부를 거세게 몰아부칠 방침이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제 남은 건 정치적 후폭풍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입법권력 남용이 내년 422대 총선에서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참사라는 국가적 불행과 관련해 지나치게 정치공세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좌충우돌이 17대 총선 당시 탄핵역풍의 데자뷔가 될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온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17대 총선에서 몰락하면서 열린우리당의 과반 승리를 헌납한 바 있다. 민주당의 다소 무모해보이는 도박이 내년 총선에서 어떠한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뉴시스
헌법재판소 재판관. 뉴시스

헌정 사상 첫 국무위원 탄핵심판,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
정치적 완패민주당, 강력 반발 속 반성보다 오히려 정치공세
17대 총선 탄핵 역풍 데자뷔? 여야 설왕설래 속 아전인수

사실상 민주당의 정치적 완패다.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 기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 뼈아프다. 헌법재판관 9명 중에는 문재인정부 시절 임명된 재판관들도 적지 않다. 보수·진보 예외 없이 이태원참사 당시 이상민 장관의 대응이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일부 부절적한 언행에도 불구하고 장관 직무를 정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실제 대형 재난재해 때마다 유사한 정치공세가 이어진다면 매번 주무 장관을 교체해야 하는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민주당의 적반하장격 태도다. 사법부 판결에 대한 존중은커녕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기각이 면죄부는 아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장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등 윤석열정부 고위공직자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하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사실상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헌재 전원일치로 탄핵 기각체면 구긴 민주당

지난달 25일 오후 2시 여야 정치권과 모든 언론의 관심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쏠렸다. 10·29 이태원 참사의 부실대응을 이유로 탄핵소추된 이상민 장관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이상민 장관이 이태원참사를 전후해 재난 예방조치 준수 의무 사후 재난대응 조치의 적절성 장관으로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 준수 여부 등이었다.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정국은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했다. 민주당은 내심 탄핵 인용과 더불어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기대했다.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269일 만에, 민주당 주도로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한 지 167일 만에 나온 결정치고는 오히려 싱거운 게임이었다. 헌법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장관 탄핵안이 기각됐다. 한마디로 유례없는 대형 인명참사의 책임을 어느 한 정부 관료에게 지우기는 헌법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것이 아니다면서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청구인의 참사 원인 등에 대한 발언은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어 부적절하다면서도 발언으로 인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안전관리 행정 기능이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이상민 장관에게 이태원참사 책임을 법적으로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헌재 결정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재명 대표는 “159명의 목숨을 빼앗은 책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탄핵 기각이 (정부가) 잘했다는 상장도 아니고 면죄부도 아니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이상민 장관 해임·사임해야고 주장했다. 박광온 원내대표 역시 많은 국민이 생명을 잃은 국가적 참사 앞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부끄럽다대통령,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다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어차피 탄핵인용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국힘 입법권 남용맹공세대통령실, 거야(巨野)심판론

고위당정협의회 참석한 이상민 장관, 뉴시스
고위당정협의회 참석한 이상민 장관, 뉴시스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과 관련해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민주당을 정조준했다. 거대 야당의 무리한 탄핵 추진은 국가적 혼란과 행정공백을 야기한 만큼 반()헌법적 행태라는 비판이다. 특히 탄핵심판에 따른 행안부 장관의 장기공백 사태로 최근 집중호우 피해 방지와 재해·재난 예방에도 걸림돌이 컸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상민 장관 역시 탄핵소추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면서도 이번 기각결정을 계기로 10·29 참사와 관련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헌법적 탄핵소추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를 해체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또한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대표는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논의단계부터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거대 야당이 오로지 당리당략을 위한 수단으로 국민적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은 악행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탄핵소추 같은 마약에 중독된 채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뒷골목 정치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참사를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처사를 근절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실은 헌재 결정을 앞두고 초긴장 모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만일 탄핵이 인용됐다면 이태원참사에 대한 윤석열정부 책임론이 또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중했던 대통령실도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에 공세모드로 전환했다. 대통령실은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결정이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의 지나친 국정발목 잡기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에 대한 울분이었다. 야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탄핵소추권을 남용하면서 국정운영 지장을 물론 불필요한 정쟁과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끝까지 책임묻겠다민주, 내년 총선 후폭풍 우려

문제는 반성없는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은 무리한 탄핵추진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탄핵은 헌법에 보장된 제도다. 탄핵이 기각됐다고 해서 탄핵 추진한 것을 반헌법적이라고 하면 헌법에 규정된 행위를 국회가 해선 안 된다는 무리한 이야기라고 강변했다. 특히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민주당은 헌재 판결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다. 애초 기대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헌재 판결을 앞두고 정치권, 법조계, 언론에서는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이 인용될 것이라는 보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이상민 탄핵심판은 애초부터 무리한 정치적 탄핵이었다는 설명이다.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기각결정을 내린 게 이를 반증한다.

내년 422대 총선까지 민주당은 여전히 국회 다수당이다. 168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힘으로 못할 게 없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이태원참사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의지를 내비쳤다. 사실상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도 희생자와 유가족이 편히 쉬도록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이태원참사 책임론 공세와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현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한 민주당의 해임건의 또는 탄핵 공세가 재현될 수 있다. 민주당이 임명에 강력 반발해온 김영호 통일부장관, 방송장악 시도라며 맹성토해온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서울-앙평 고속도로 특혜의혹과 관련해 원희룡 국토부장관 등이 민주당의 저격 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다. 실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과 관련해 외교참사라고 맹비난하면서 박진 외교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다수 힘으로 통과시킨 바 있다.

헌재에 걸린 노무현.박근혜 탄핵 사건 설명. 뉴시스
헌재에 걸린 노무현.박근혜 탄핵 사건 설명. 뉴시스

여권은 민주당의 강공에 대해 겉으로는 반발하지만 속내는 느긋하게 즐기는 분위기다. 200417대 총선 당시 탄핵역풍의 데자뷔와 마찬가지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2004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이후 거센 국민적 반발과 동정론으로 노 전 대통령은 기사회생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압승을 거뒀고 헌재에서도 탄핵심판이 기각됐다. 대통령실도 일전불사를 각오하겠는 태도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13개월 가량이 지났지만 여소야대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 3대 개혁과제의 성과도 지지부진했다. 절대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승인 없이는 입법부의 문턱을 넘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내년 422대 총선은 윤석열 vs 이재명대격돌이었던 지난 20대 대선의 연장전 성격이라면서 민주당은 탄핵기각에도 아랑곳없이 총선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에 보다 강한 자세로 나올 것이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등 여권 또한 탄핵기각을 거대 야당의 무리한 국정발목잡기로 부각시키면서 민심 공략과 부동층 흡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20대 대선 패배 이후 위장탈당 등 온갖 꼼수를 동원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를 거칠게 주도했다. 이는 대선패배에도 반성없는 오만한 민주당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지방선거 대참패의 주요 원인이 됐다현 민주당의 태도는 대선 패배 이후 검수완박 국면과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의 무리한 승부수가 통할지는 의문이다. 탄핵기각 사태의 교훈을 보다 심도있게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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