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90년대 초반, 한국 가톨릭교회는 내 탓이오운동을 벌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추기경부터 일반 신도들까지 하나같이 자동차 뒷유리에 내 탓이오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시민들은 가톨릭의 이런 회개운동에 큰 지지를 보냈다. 가톨릭의 내 탓이오라는 반성과 각성은 단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한국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세상의 문제에 대해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반성을 앞세우는 행위는 국민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가톨릭의 이런 자책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 심판이 기각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책임을 묻겠다며 행안부 장관을 탄핵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159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깔려 죽은 이태원 참사에 책임질 사람이 사라졌다. 역사는 159명의 죽음에 대해 그들의 죽음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기술할 것이다.

이상민 장관 탄핵 심판에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못지않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은 애초에 쉽지 않은 법적인 문제였다. 국정을 책임진 자들의 뻔뻔한 책임회피에 맞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절규하는 유가족들을 외면할 수 없는 외통수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어쨌든, 탄핵은 정치적 도박에 가까웠다.

예상된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정교한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민주당의 누군가, 이 결과에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면, 어땠을까? “탄핵 심판이 기각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제 탓입니다. 제게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누군가, 국민 앞에서, 유족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민주당에서 자기 책임을 말하길 기대했다. 유족들에겐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국민은 책임질 줄 아는 정치세력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낭만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민주당은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 판결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어렵다. 양심 불량이거나, 사이코패스여서가 아니다. 권력자는 잘못을 인정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질 일이 두려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위적인 정부일수록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에 인색하다. 검사였지만 만년 공무원에 법률가 정체성을 가진 윤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정치세력도 자기 책임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책임을 묻는 데 더 유능하다. 그렇다 보니, 자주 반성하고 자책할 순간을 놓친다. 이상민 장관 탄핵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결과는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항의성 기자회견에 앞서, 유족 앞에 자책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메시지를 냈다면 어땠을까? 네 탓이 아닌 내 탓을 하는 민주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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