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최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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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신화남나눔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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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부산 최은아 기자] 40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주변 소외계층에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 온 봉사꾼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

신화남 명장은 미용학 박사로 대한민국 명장의 칭호를 얻은 화제의 인물이다.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와 함께 부산교도소 교정협의회 부회장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현재 많은 청소년을 지도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은 특별나다.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칭호 외에도 대통령 표창장과 석탄산업훈장을 수여받은 사실이 바로 그러한 이유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신화남 나눔 봉사단'에서의 행보인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기여하고자 하는 신 명장의 아낌없는 재능기부를 엿볼 수 있다.

불우 청소년부터 외로운 노인까지 그 대상은 다양한 연령층을 망라해 펼쳐지고 있다. 청소년에게는 실습 지도를, 경력단절 여성에게는 기술을 전수해 주고 있으며 노인과 그 외 소외계층에게는 이·미용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부에서 받은 거액의 계속종사장려금 마저 전액 사회에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단돈 몇 만 원이라도 선뜻 기부에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꽤 괜찮은 재력을 소유한 자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신 명장의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헌신은 무엇일까?

또 그녀의 선행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신화남 명장의 아름다운 삶, 그 발자취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청소년 지도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 2015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로 특성화고교에서 강의를 할 때 일입니다. 솜씨는 특출한데 출전료 3만 원이 없어 미용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학생이 있다고 들었어요. 안타까운 상황에 저는 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학교의 추천을 받아 직접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장학 재단을 통해 학생들을 지원해왔습니다.

이후 2017, 우수 숙련기술자로 중학생들의 직업진로체험 실습 지도를 하면서 청소년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에 매료되었어요. 그리곤 작은 힘이나마 이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92, 사비를 털어 '청소년직업진로체험관'을 오픈하게 됐어요.

부산시 교육청 산하 11개 부설기관과 청소년 진로지도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능력과 소질을 개발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고요.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이 산업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진학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전문 숙련기술을 보유하게 된다면, 평생 동안 취업 걱정 없이 미래에 꿈을 이루게 된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소년원에도 관심을 기울이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학생들이 찰나의 실수로 세상을 미워하고, 더 힘들어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였어요. 그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주고 싶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너희들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요.

신화남 명장님의 봉사정신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항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 베풀며 생활하시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아마 그때부터 나도 이다음엔 부모님처럼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지하는 마음을 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서야 차츰 실천에 옮기게 되었네요. 사실 남을 돕는 게 꼭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것을 아껴서 어려운 분들에게 보태는 것 같아요.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도 활발하시던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유독 보일러 교체 후원에 열정을 쏟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또한 저희 어머니가 노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시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끔 미용 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면, “추운 겨울나기가 가장 힘들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봉사의 왕 박진관 명장님이 보일러 봉사를 하신 모습이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고, 동참 의사를 전한 것이 보일러 후원의 시작입니다.

그 후 20188월에 본격적으로 '신화남나눔봉사단'을 창단하여 부산광역시와 박진관 명장님의 보냉가설봉사단, 신화남나눔봉사단이 함께 MOU를 맺으면서 현재까지 계속 진행 중입니다.

많은 직업 중 미용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상업학교를 졸업한 저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습니다. 당시 은행은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고 정년퇴직이란 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른들은 자식들이 평생직장에 다니길 원했죠. 저희 어머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늘 평생직장을 은근히 기대하셨죠.

그렇게 평생 직업을 찾다가 미용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어요. 저희 집안사람 중에 미용에 종사하는 분들이 계셔서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무엇보다 미용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 매력적이었어요. 다행히 지금도 미용이란 직업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미용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가장 뿌듯했던 일이 있다면?

- 미용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요. 갓난아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집안일로 활동 범위가 좁았던 경력단절 여성들을 교육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수업받던 주부가 미용실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앞으로도 경력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술 전수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입니다.

결심하기가 힘들었을텐데, 계속종사장려금 전액을 기부하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 대한민국 명장이 되면서 받은 계속종사장려금 2000만 원 기부에 대한 얘기 같은데요. 계속종사장려금은 국가가 숙련 기술자에게 주는 격려금입니다. 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앞으로도 이보다 더 큰 선행을 베푸는 것이 대한민국 명장으로써 제가 해나가야 할 소임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명장님이 봉사와 기부를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에너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저한테는 큰 기쁨이며 행복한 일입니다. 저는 봉사는 열정적이어야 하고,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사심이 없어야 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죠.

저의 삶의 철학은 은광연세(은혜로움이 세상에 넘친다)입니다. 봉사를 생의 마지막 소임으로 생각하고 있고,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것을 아껴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이웃들을 위해 '신화남나눔봉사단'을 확대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참하는 봉사단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취약계층을 위한 봉사꾼으로서, 또 미용인으로서 앞으로도 제 소임을 다해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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