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이름보다도 토정비결의 작가로 더 잘 알려진 토정(土亭) 이지함은 신비로운 발자취를 남긴 기인(奇人)으로 알려졌다.

‘재물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재앙이 따르는 법’이라고 한평생 청빈하게 여생을 마친 분으로도 유명하다.

이지함은 유학자임은 말 할 것도 없고 천문, 지리 , 역술, 관상 등 다방면에서 박학다식한 사람이다. 본관은 한산이다. 토정선생이 지금의 선영(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을 찾을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토정선생이 부모님을 명당에 안장하기 위해 충남 보령 성주산에 ‘목단형’이란 대 명당을 찾아나서 며칠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목단형의 명당을 찾아놓고 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그곳에 한 그루의 모가주 나무를 심어놓고 하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몇 해가 지나 부모님을 안장하려고 다시 성주목단을 찾아가보니 찾아놓았던 성주목단 주변이 온통 모가주 나무로 뒤덮여 성주목단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낙심을 하고 성주산을 내려와 지금의 선영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한 마디를 던졌다. “이 토정이 보다도 미련한 놈의 소야”하며 그 옆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던 토정선생이 하도 이상히 여겨 소를 몰고 가던 농부를 보려고 뒤돌아보니 소를 몰고 가던 농부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의 선영이 보이더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금의 선영은 성주산 산신령이 잡아 주었다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토정 이지함의 부모와 형 지번, 토정 이지함 등 후손들이 안장되어 있는 이곳을 풍수지리학적으로 풀어보면, 자좌오향(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했고)에 정미수구(남남서쪽으로 물어 소수함)로 일대 명혈 대작이다. 안산(바로 앞에 보이는 산)은 풍수지리학에서 제일로 꼽는 면궁안(활의 모양)으로 이미 복지가 되었다.

<전항수 원장>
한국풍수지리 연구원 www.poongsoo.net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